태그 : 신경숙
2008/12/09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9]
2008/10/26   잊혀진 여자의 이야기..리진. [11]
2004/07/31   신경숙/ 아름다운 그늘. [10]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아들을 잃은 슬픈 성모상을 조각한 로마 성베드로성당내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



세상의 대부분의 일들은 생각을 깊이 해보면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뜻밖이라고 말하는 일들도 곰곰 생각해보면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다.
뜻밖의 일과 자주 마주치는 것은 그 일의 앞뒤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는 증거일 뿐.



형철엄마를 잃어버리고 당신은 형철 엄마가 아니라 아내를 실감하기 시작했다.
오십년 전부터 지금까지 대체로 잊고 지낸 아내가 당신의 마음에서 생생하게 떠올랐다.
사라지고 난 뒤에야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처럼 육감적으로 다가왔다.



엄마는 엄마가 할수 없는 일까지도 다 해내며 살았던 것 같아. 그러느라 엄마는 텅텅 비어갔던 거야.
종내엔 자식들의 집 하나도 찾을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된 거야.



본문 中


길을 걷다 삐끗하다 실수로 넘어지는 내 입에서 '엄마야~'소리가 나온다.
피식 창피한 마음이 들다가도 내 가슴 속에 늘 살아있는 엄마의 존재감에 든든한 지팡이인양
보도블럭위를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는다.
엄마는 내게 그런 존재다. 아니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지킴목일 것이라 생각한다.

신경숙씨의 '엄마를 부탁해'이 책은 갑자기 사라진 엄마의 행방을 찾는 가족들간의 걱정으로 시작된다.
엄마를 잃어버리다니.. 다들 큰 충격이겠군. 걱정스런 눈길로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곧 칠순을 앞둔 엄마가 자식들 편하게 해준다고 남편생일상을 받으러
서울로 올라오다 그만 남편 손을 놓친 것이 실종의 시작이다.
너무 하찮고 너무 어이없는 잃어버림이라 쉽게 엄마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지만
엄마는 종내 자식들 곁에, 며느리 곁에, 남편 곁에, 고모 곁에 나타나지 않는다.

지하철 서울역 구내에서 매번 천천히 좀 가라고 평생을 요청했던 아내의 말을 번번히 무시한
벌을 받는 것인가.. 남편은 엉뚱하게도 지하철 역에서 아내를 잃어버린다. 아내의 가방을 든 채.
즉, 아내는 빈 손에, 글도 모르고, 뇌졸증까지 있는데(나중에서야 전말이 서서히 드러난 증세)..
그렇게 길을 잃고 사라져버린 아내는, 엄마는 끝네 그들 곁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전단지를 돌리고 간간히 들리는 인상착의에는 허름한 거지꼴을 한 파란 엄지가 구멍난 슬리퍼를 끈
송아지 눈망을 닮은 할머니가 보였다는 말뿐..
텅 빈 고향집에서 아내를 기다리는 무력한 아빠와 큰딸이 전화로 통화하는 내용에선 책 속의
인물들과 함께 나도 모르게 소처럼 '어어어..'하고 울고야 말았다.

존재감이 없었던 엄마가 잃어버림으로써 그들에게 하나씩 부각되고 퍼즐처럼 맞춰지고 새롭게
태어난다. 서로가 잘 몰랐거나 무심코 무시했던 엄마의 인생이 그들의 성장속에 얼마나 큰 기둥처럼
자리하고 있었는가를 깨닫게 되면서 다들 인생의 가장 큰 낙담을 하게 된다.

참 슬픈 소설이었다.
2장을 넘어갈때 꺼이꺼이 울다가 지쳤고,
종반부를 읽었을즈음에도 어머니의 행방이 나타나지 않자 나는 큰 슬픔에 휩싸이기까지 했다.
어머니란 존재는 과연 이렇게 헌신적인 삶으로 너덜너덜 끝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억울함까지
스며들어 저자의 의도에 분괴마져 들었다.

그랬는데, 4장에 이르러서야 어머니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었다.
어머니가 간접적으로 환생해주는 장이 그것이다.
엄마의 숨겨진 모습도 보게 되서 나름 보상을 받았고(끝내 비밀의 연인), 빈둥지우울증에서 벗어난
소망원 기부금도 그랬다. 힘들고 고단한 삶이었지만 엄마는 매사에 긍정적이었고,
상처와 슬픔을 품어안은채로 사랑으로 승화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객사를 했을거라 추정을 하게되어 불쌍할 지경인데도 엄마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슬픔은
한마디도 꺼내지 않고 자식을 키우면서 행복했던 기쁨만을 간직하고 싶어하고
지나왔던 모든 삶의 고달픔들을 이해하고 마무리한다.

엄마는 소설 속 엄마만이 아니라 생각했다.
큰딸이 로마의 성베드로성단내에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을 보면서 '엄마를..엄마를 부탁해'라고
말하면서 끝나는 것을 보면서 깨달았다.
엄마는 세상에 존재하는 아픔과 상처인 원죄에 대한 고해를 들어주는 성스러운 성모 마리아와도 같은 것이었다.

우리는 바쁘다는 핑게로 소중한 것을 잃고.. 잊고 살아가는 것 같다.
그런 우리에게 엄마를 소설로써 복원시켜주었다.

신경숙씨를 이래서 난 좋아할 수 밖에 없다.






by 김정수 | 2008/12/09 22:15 | 엄마 베스트셀러 | 트랙백 | 덧글(9)
잊혀진 여자의 이야기..리진.


'리진'이 추었다는 '춘앵무'


나도 모르게 당신은 프랑스이고 나는 조선이라 여기는 마음이 내 안에 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신이나 나나 우리는 남자와 여자였을 뿐이었는데.
길린.
나, 리진을 내려놓고 모쪼록 자유로우세요.
그래야 나도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당신을 만나지 못해도 이따금 당신의 후두염이 염려되겠지요.
당신도 나를 만나지 못해도 이따금 내 머리를 빗기고 싶겠지요.
이것으로 우리는 충분하다 여깁니다.

본문 中.


리진이 콜랭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를 읽을 즈음에 나는 사랑이란 이렇게도 표현될 수
있다는 것에 가슴아팠다.
그리고 스산한 가을처럼 슬픈 마음이 들었다.
모든 남자들에게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여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리진은 온전한 사랑 하나 챙기지 못한 불행한 여인이었다고 생각이 들자 측은해 콧등이 시큰했다.

<리진李眞>이란 표제는 다름아닌, 리진이 프랑스 초대공사의 아내가 되어 조선을 떠날때 고종이
왕의 성을 따준 이름을 뜻한다. 김탁환씨의 소설 '리심'과는 동일인물이다.
이 소설은, 짧은 시대를 살다 간, 궁의 최고의 총애를 받았던 궁녀의 이야기다.
궁녀의 동선을 따라 소설을 읽다보면 2권인 것도 잊은채 파란만장히 새시대를 맞이했던
우리나라의 처절한 몸부림과 고통을 함께 하는 것을 느낀다.
한마디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리진이란 여인은 한 번 들은 것이나 본 것은 스폰지처럼 빨아들인 총명한 아이로 나온다.
게다가 외모도 출중해 재색을 겸비한 보기드문 인물이었다 하니,
그 여인에게 빠지지 않을 남정네는 없었다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녀의 '춘앵무'를 보고 프랑스 공사인 '콜랭'이 반했고, 궁중악사로 길을 선택한 '강연'이 그랬고,
'고종'이 그랬고, 그녀를 친딸이상으로 아꼈던 '명성왕후'도 그랬다.
그리고 그녀를 마지막까지 철저히 다른 방법으로 악랄히 사랑한 '홍종우'도 그랬을 것이다.

이 소설은 가벼운 감상으로 덮기엔 무거운 소재를 다루고 있어서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을미사변은 한민족이라면 역사적충격으로써 덮기 힘들기 때문이기도하고,
소설 속 '리진'은 명성왕후의 수족처럼 따르던 아이로 나오기 때문이다.
즉, 피와 살이 섞이지 않았지만 어미와 자식의 관계란 뜻.
명성왕후가 배를 긁어 먹이면서 이뻐했고, 리진 역시 프랑스대사관에서 왕비가 부르지 않을때
왕비의 의중을 간과하고 콜랭을 선택할 정도로 대화없이도 통하는 깊은 사이였다.
격동기에 왕비는 프랑스로 왕에게 허락을 받고 딸같은 리진을 보낸다.

현장을 본 사람만큼이나 사실감을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소설이지만 리진을 통해 독자는 명성왕후의 괴로움을 느끼게 만들고, 리진의 아픔을 느끼게 만든다.
저자는 그당시의 기분을 시대적 상황을 아픔을 완벽히는 아니더라도 근접하게 알려줬다고 본다.

시대적 상황을 비춰봤을 때, 리진은 조선을 떠났어도 조선을 대표하는 여인이었다.
아무리 개화가 되었다고 겉으로 떠들어대도, 모파상이 정신병동의 초라한 죽음으로 마감된 것처럼..
명성왕후의 뛰어난 재략과 노력에도 처참한 죽음으로 결국 근대로 끌어내지 못했던 것처럼..
'리진'이란 이 소설은, 그 역사적 흐름은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허망한 결론같은거 였을까.
리진의 죽음은 어쩌면 이렇게 소설 속에서나 존재가치를 인정해 주는 정도..

우리는 근거나 증빙이 없으면 믿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사실이나 근거는 승자만이 남길 수 있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혹은 자신에게 불이익을 감내하고 솔직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 있을까.

사랑했던 콜랭 역시 왕비가 시해당했던 정황을 적은 편지를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찢어버린 것처럼.
모든 역사적 사실이라고 꺼낸 증거들은 어쩌면 완벽히 거짓일 수도 있다..라는 생각이 문득 인다.

우리 시대의 격력하고도 처참했지만 잊어선 안될 시기를 소설로 접근한 신경숙씨는
역시 그녀의 소설들답게 덤덤히 제 3자의 입장처럼 써내려간다.
그녀는 멍들도록 가슴을 뛰게 만드는 사랑 이야기이며,
분괴하게 만드는 만행들을 흥분하지 않고 논리적으로 써내려 가고 있다. 흥분할 필요도 없어요..라고 말하듯이.

읽으면서 이렇게 소설을 멋있게 쓰는 분이 같은 하늘에 산다는 것에 자부심마져 인다.
그리고 첫 역사소설같은데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아니 훌륭했다.






by 김정수 | 2008/10/26 16:31 | 엄마 베스트셀러 | 트랙백 | 덧글(11)
신경숙/ 아름다운 그늘.



그리움과 친해지다 보니 이제 그리움이 사랑 같다.
흘러가게만 되어 있는 삶의 무상함 속에서
인간적인 건 그리움을 갖는 일이고
아무 것도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을
삶에 대한 애정이 없는 사람으로 받아들이며
악인보다 더 곤란한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그리움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게 됐다.
그리움이 있는 한 사람은 메마른 삶 속에서도
제 속의 깊은 물에 얼굴을 비쳐본다고
사랑이 와서 우리들 삶 속으로 사랑이 와서
그리움이 되었다.
사랑이 와서 내 존재의 안쪽을 변화시켰음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사라지고 멀어져버리는데도
사람들은 사랑의 꿈을 버리지 않는다.
사랑이 영원하지 않은 건
사랑의 잘못이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의 위력이다.
시간의 위력 앞에 휘둘리면서도 사람들은 끈질기게
우리들의 내부에 사랑이 숨어살고 있음을 잊지 않고 있다.
아이였을 적이나 사춘기였을 때나 장년이었을 때나
존재의 가장 깊숙한 곳을 관통해 지나간 이름은 사랑이었다는 것을...

- 아름다운 그늘 中 -



소설가 신경숙의 첫 산문집 '아름다운 그늘'(1995)의 개정판이다.
하지만 개정판이라고 해봐야 별로 손댄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니 그녀의 글솜씨는 어찌보면 탁월해다 해야 할것 같다.

신경숙씨의 글을 읽으면 치밀하다 할 정도로 문장 하나하나에
고민의 흔적을 볼 수 있다. 그런 작가가 있다는 사실은 한국에도 이런 작가가
있다라는 자부심마져 느끼기도 한다.

그녀가 소설가로 입문한지 10년만에 산문집을 냈다.
이 산문집은 그녀의 어린시절과 성장과정, 습작시절의 추억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필사로 보낸 여름방학 편) 따라서, 그녀의 일기장과도 같다.
나이를 먹고 인기가 올라도 늘 소녀같이 수줍어하는 그녀의 겸손함이
나는 참 좋다.


by 김정수 | 2004/07/31 17:41 | 책읽는 방(국내)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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