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소설
2009/12/20   연을 쫓는 아이 / 할레드 호세이니. [3]
2009/11/05   삶은 해피한거야.^^ [6]
2009/10/20   광란의 도가니. [4]
연을 쫓는 아이 / 할레드 호세이니.


양심이나 선이 없는 사람은 고통스러워하지도 않는다.


본문 中



'할레드 호세이니'가 쓴 장편소설(영문으로 최초로 아프가니스탄을 알린)인 '연을 쫓는 아이'란 이 책은
제법 읽기 부담스러운 두께이긴 하지만, 일단 첫 장을 넘겼더니 빠른 속도감으로 연이은 줄거리의 궁금증에
일상이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그정도로 소설 속으로 빠져들었다.
영화로도 개봉되었다는데 매번 나는 영화쪽은 시간상 보질 못하는 아쉬움을 갖을 것 같다.

일전에 읽었던 '천 개의 찬란한 태양'에 이은 '할레드 호세이니'의 두번째 독서였는데,
이번 작품 역시 신뢰를 져버리지 않았다. 소설은 어린시절을 거쳐 어른이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주인공 '아미르'가 겪는 내면적 갈등이 책장을 덮을 때까지 과연 어떻게 고민과 죄책감에서 해방될지
사뭇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을 이해하려면 자연스럽게 줄거리가 요약하게 된다.
특히 주인공 '아미르'가 어른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겪는 한 편의 인생 드라마겪인 성장소설은 더욱 그러하다.

아프가니스탄의 유복한 상인의 집에서 태어난 주인공 '아미르'와 아프가니스탄 내에서도 소수 이슬람교도인
하자리안(핍박받는 인종으로 나온다)의 하인 아들 '하산'은 신분을 떠나 절친한 친구처럼 지낸다.
그것은 아미르의 아버지 '바바'와 하인인 '알리'와의 우정이 형제와 같은 믿음으로 이어져 그의 자식들,
바바의 아들 - <아미르>와 알리의 아들- <하산>의 우정으로 이어진다.
그만큼 아미르와 하산은 신분과 인종을 떠나 절대로 땔 수 없는 관계로 유년시절을 보낸다.

바바의 교육방침은 인용되는 본문에서도 짐작하듯이 단순하지만 단호했다.

"자, 율법 선생이 뭐라고 가르치건 세상에 죄는 딱 한 가지밖에 없다. 딱 한가지 뿐이야.
다른 모든 죄는 도둑질의 변형일 뿐이다. 알겠니?"

"네가 사람을 죽이면 그것은 한 생명을 훔치는 것이다. 그것은 그의 아내에게서 남편에 대한
권리를 훔치는 것이고 그의 자식들에게서 아버지를 훔치는 것이다. 네가 거짓말을 하면 그것은
진실을 알아야 할 다른 사람의 권리를 훔치는 것이다. 네가 속임수를 쓰면 그것은 공정함에 대한
권리를 훔치는 것이다. 알겠니?"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의 고유 풍습중의 하나인 '연싸움'시합이 있던 아미르가 12살때 운명의 사건이 벌여진다.
연싸움에서 우승해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었던 그는(바바는 아미르와 하산을 아들처럼 사랑했다)
마침내 우승을 한다. 아프가니스탄의 풍습 중 우승에서 진 끊긴 연을 가져오는 것은 큰 명예에 속했기 때문에
연을 쫓아 뛰는 아이들의 모습은 장관 그 자체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연의 주인공은 늘 하산이었다.
-하산은 기후와 바람의 방향을 정확히 예측했다- 하지만 연을 찾은 하산에게 불량배 '아세프'일당이
연을 뺏기지 않으려는 하산의 고집을 꺾지 않는 대신 굴욕적인 성폭행을 하고야 만다.
돌아오지 않는 하산을 찾던 '아미르'는 우연히 그 광경을 보지만 하산을 구하지 못하고 숨어 보며 주먹만 깨문다.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천만번이라도 그렇게 할께요' 를 외치던 하산이 당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 대목을 읽을때 나도 참 가슴이 아팠다. 숨어서 지켜본 아미르는 당시 12살이었으니까..
아무튼 그 충격적인 사건은 하산과 아미르에게 유년시절 큰 상처와 배신, 그리고 죄책감을 안겨준다.
하산은 신분의 벽을 참으며 아미르를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그 역시 뒤에서 지켜본 '아미르'를 눈치채고 있었기에
두 아이의 우정은 위기에 봉착한다. 아미르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 하산을 도둑놈으로 몰아 하산과 그의 아버지를
집에서 쫓아내고야 만다. (바바의 도둑질에 대한 비판적인 훈육이야말로 그들에게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라 판단)

그 뒤 아프가니스탄의 전쟁과 텔레반의 정권장악등으로 소수의 시아파 이슬람교도인 하자라인의 인종문제가
대두되고 인종청소라는 명분하에 하자라인 대량학살이 야기되고야 만다. 미국으로 도피한 아미르잔과 바바에게
정신적인 친구 '라힘 칸'으로부터 연락이 온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된다.
하산은 바로 이복형제라는 것.
그 대목을 읽는 순간 나 역시 충격을 받았다.
정말 대단한 반전이었다. 게다가 소랍을 찾으러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가 텔레반 조직원 수장을 만났을때
그가 다름아닌 '아세프'였다는 사실도 기가막힌 소설의 구성에 감탄을 마지 않았다.

그리고 텔레반의 인종청소학살때 하산은 죽고(아.. 정말 많이 가슴이 아팠다.) 아들 소랍을 양자로 받아드리라는
제안을 결정하는데 그 과정도 만만찮았다. 소랍은 외견은 제 2의 하산이었지만 내면은 바로 자기자신인 아미르 였던 것.
소랍의 마음을 열기까지 아미르의 많은 노력들이 하산에 대한 죄의식의 소멸로 느끼져 읽으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용서를 받기란 정말 힘들다. 왜냐하면 순수한 영혼들이기 때문이다.
아미르는 아프가니스탄의 기존세력들의 사고를(하자라인을 양자로 받아드리는 행동) 몸소 타파한 것으로
용서를 받은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해피앤딩으로 끝난건지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용서는 쉽게 받으려고 하면 오산이다.
가슴에 준 상처는 약을 먹어서 쉽게 낫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나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순간들이 존재할 것이라 생각한다.
또 죄의식이나 양심으로 힘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피한다고.. 떠난다고.. 해결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소설은 말한다.
그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 아프지만 받아 드리는 것.
그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용서를 구하는 것.그리고 노력하는 것. 그 과정들이 인간을 성숙하게 만드는 것이라 말한다.
그래야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용서를 받는 과정을 그린 문구가 마음에 와닿아 옮겨본다.

용서란 요란한 깨달음의 팡파르와 함께 싹트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소지품들을 모아서
짐을 꾸린 다음 예고 없이 조용히 빠져나갈 때 함께 싹트는 것이 아닐까?


안 읽어본 사람들이 있다면 추천한다.



by 김정수 | 2009/12/20 20:51 | 엄마 베스트셀러 | 트랙백 | 덧글(3)
삶은 해피한거야.^^




"남자가 말이야, 혼자서 방을 쓸 수 있는 건 가난한 독신 시절까지가 아닐까 싶어.
그런데 진짜 자기 방이 필요한 것은 삼십 대가 지나서잖아.
CD나 DVD는 얼마든지 살 수 있어. 그리고 비싸기는 하지만 오디오 세트도 마음먹으면
살 수 있고. 하지만 그걸 즐길 수 있는 내 공간이 없단 말씀이야..."



- 우리집에 놀러오렴.. 본문 中




'오쿠다 히데오' 의 작품이라는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망설임없이 선택하는 것을 보면
나도 어지간히 그에게 중독이 된 듯 하다. 늘 느끼는 거지만 그의 사고는 기발하고 신선하다.
이번에 나온 '오 해피 데이' 역시 그의 주변에 있는 인물들이거나 혹은 자신의 모습을 즐겁게
터치한 케릭터인 의심이 간다. 그러기에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소설은 다른이의 인생을 또는 살아보지 않고 경험할 수 있는 값진 신뢰다.

역시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흡입되는 감탄과 소름끼치는(?) 그만의 현실 비난들이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소재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랍고 흐믓했다.

우리는 일상이 그저 그런 일들로 첵바퀴 도는 것만 같은데 그가 보면 냉철하고 집요하고.. 한심하고.. 즐겁다.
그건 왜그럴까.
바로 깨어있기 때문이다.
본문에도 나오지만 코믹 소설은 깨어 있는 냉철한 시각이 없으면 쓸 수 없다.
현실주의자가 아니면 인간 세상의 해학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역으로 생각해 보는 것. 관념적인 것에 대한 반항심.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에 대한 거부감..
등등이 그의 발랄한 사고를 발판삼아 활자화 되는 것이다. 정말이지 부럽기 짝이없다.

이번에 여섯 단편으로 묶어 나온 이 책은 다른 어떤 코믹 소설보다 가깝게 느껴진다.
소재가 가족, 부부, 이웃들이 겪는 이야기인데, 케릭터들이 다 살아있는 듯 느껴진다.

특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는 '우리집에 놀러오렴'인데, '집'이란 공간에 대하여 곰곰히 되새겨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남.녀간의 의식차이를 또한 경험할 수 있는데 결혼 후 '집'이라는 공간이
남자에게는 자신만의 공간박탈로 이어지는 점이었다. 여성들의 성역으로 어느 순간 자리매김 되면서
겉도는 남자들의 이야기가 과연 오쿠다 히데오식 감성으로 도면 펼쳐놓듯 자세히 살펴보게 만든다.

또한 마지막장을 장식하는 '아내의 현미밥'을 읽다보면 베스트셀러작가인 '오쿠다 히데오'의 삶이
고스란히 옅볼 수 있는 시간을 경험한다. 어지간히 애처가인 그의 모습이 살짝 느껴져 미소가 퍼진다.

책을 읽고나니 삶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지쳐있는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어지는 책이다.





by 김정수 | 2009/11/05 14:46 | 책읽는 방(국외) | 트랙백 | 덧글(6)
광란의 도가니.


누군가 거짓말을 하면 세상이라는 호수에 검은 잉크가 떨어져내린 것처럼 그 주변이 물들어 버린다.
그것이 다시 본래의 맑음을 찾을 때까지 그 거짓말의 만 배쯤의 순결한 에너지가 필요한 것이다.
가진 자가 가진 것을 빼앗길까 두려워하는 에너지는
가지지 못한 자가 그것을 빼앗고 싶어하는 에너지의 두 배라고 한다.
가지자는 가진 것의 쾌락과 가지지 못한 것의 공포를 둘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진 자들이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거짓말의 합창은 그러니까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포함하고
있어서 맑은 하늘에 천둥과 번개를 부를 정도로 힘을 충분히 가진 것이다.


본문 中



이 소설은 안개도시 '무진'에서 벌어진 한 '청각장애인학교-자애학원'에서 벌이진 실제 사건과
소송을 그리고 있다. 지적장애인인 아이들을 상대로 벌어진 성폭행, 성추행, 폭행(린치), 온갖 말로는
차마 읽기도 곤란한 쓰레기같은 이야기들이 학교라는 신성한 장소에서 그것도 교장, 교사, 기숙사교감
할 것없이 똘똘 뭉쳐 힘없는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괴롭힌 이야기다.

그들은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정부자금을 뻔뻔히 자신의 주머니에 챙기면서 정작 아이들에게 돌아갈
몫은 신경도 안썼다.
뿐만 아니라 돌봐줄 곳 없다는 약점을 이용하여 발정난 '개'처럼 아이들을 상대로 성욕을 채우기에 급급했다.
솔직히 말해 그들은 가진자(돈과 권력)로써 손만 벌리면 얼마든지 돈으로 성을 살 수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힘없고 순수한 아이들을 폭행하고 성욕의 대상으로 일삼았다. 그것도 초등학교때부터 지속적으로..
여자, 남자를 구분없이 성적 노리개로 일삼는 글을 읽으면서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감출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외음부에 심한 파열과 손상으로 산부인과에서 치료가 힘들정도로 황폐화된 상태였다.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그들은 뻔뻔스럽게도 외관상으론 할렐루야를 외쳤다.)그럴 수 가 있는지
읽는 내내 흥분의 도가니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인간이 이렇게 타락할 수도 있구나..

맞다.
이 소설은 이 광란의 성적 도가니 속에서 휘둘리는 아이들의 처참한 현실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늘 그렇지만 정의는 외로운 것 같다. 진실과 정의는 당연히 이기기는 커녕 거짓말로 똘똘 뭉친 사람들에게
완패하기도 한다. 그런 처참한 내용이 공지영씨의 글로 표현된 내용을 옮겨본다.


진실이 가지는 유일한 단점은 그것이 몹시 게으르다는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교만 때문에 날것 그대로의 몸뚱이를 내놓고 어떤 치장도
설득도 하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진실은 가끔 생뚱맞고 대개 비논리적이며 자주 불편하다.
진실 아닌 것들이 부단히 노력하며 모순된 점을 가리고 분을 바르며 부지런을 떠는 동안
진실은 그저 누워서 감이 입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 도처에서 진실이라는 것이 외면당하는 데도 실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면 있는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인 기간제 교사, '강인호'의 마지막 행동에는 정말 유감이다. 하지만 그 역시
어쩔 수 없는 현실의 일원이란 사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에 더더욱 씁쓸한 기분이다.

아내의 도움으로 기간제교사로 내려간 '강인호'는 대학시절 선배 서유진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인권운동쎈터'에서 일하는데 아이들 편에 서서 진실을 폭로하려는 데 강인호와 함께
부단한 노력을 하지만 '권력의 힘'앞에 좌절을 거듭한다.
결국 '강인호'는 아내의 설득에 의해 결전의 날 도주하지만 서유진은 그렇지 않았다. 끝까지 그들 곁에서
그들을 변호하고 나약한 존재지만 당당히 남았다.
멋지게 등장하는 '서유진'이란 이 여자가 난 정말 대단해서 감탄을 연발했다.
역시 여자는 남자보다 강하다.
그녀는 결국 빙하앞에 망치 하나 달랑 들고 덤벼들었지만 결코 포기란 것을 모르고 지속적으로
외쳐댔고 그 외침은 여론과 힘없는 장애아들과 가족, 그리고 뜻있는 언론과 합세하여 작지만 진도를 보인다.
마지막까지 진실이 덮혀지는 억울함을 느끼는 독자들에게 한가닥 위로가 되서 기쁜 마음이다.

그녀는 세상을 바꾸기 힘들 거란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렇게 무턱(?)대고 덤볐던 것은 그녀 자신을
바꾸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 대목에서 정말 콧등이 시큰해졌다.

우리는, 나는.. 얼마나 현실에 타협하고 사는가.. 정말 반성이 된다.
공지영씨는 역시 현실에 깊숙히 관여하여 대안을 찾는 몇 안되는 한국의 훌륭한 소설가다.





by 김정수 | 2009/10/20 11:09 | 책읽는 방(국내) | 트랙백(1)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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