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지 않은 자는 모두 유죄.



-노희경.



나는 한 때
나 자신에 대한 지독한 보호본능에 시달렸다.
사랑을 할 땐 더욱이 그랬다.

가령, 죽도록 사랑한다거나,
영원히 사랑한다거나,
미치도록 그립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게 사랑은
쉽게 변질되는 방부제를 넣지 않은 빵과 같고,
계절처럼 반드시 퇴색하며,
늙은 노인의 하루처럼 지루했다.

보고는 싶지. 라고 말하고,
지금은 사랑해라고 말하고,
변할 수도 있다고
끊임없이 상대와 내게 주입시키자.
그래서 헤어질 땐 울고불고 말고 깔끔하게, 안녕.
나는 그게 옳은 줄 알았다.

그것이 상처받지 않고
상처 주지 않는 일이라고 진정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드는 생각.
너, 그리 살어 정말 행복 하느냐?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죽도록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만큼만 사랑했고,
영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당장 끝이 났다.

내가 미치도록 그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미치게 보고싶어 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사랑은 내가 먼저 다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버리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 물잔과 같았다.

내가 아는 한 여자,
그 여잔 매번 사랑할 때마다 목숨을 걸었다.

처음엔 자신의 시간을 온통 그에게 내어주고,
그 다음엔 웃음을 미래를 몸을 정신을 주었다.

나는 무모하다 생각했다.
그녀가 그렇게 모든 걸 내어주고 어찌 버틸까, 염려스러웠다.
그런데, 그렇게 저를 다 주고도 그녀는 쓰러지지 않고,
오늘도 해맑게 웃으며 연애를 한다. 나보다 충만하게.
그리고 내게 하는 말.
나를 버리니, 그가 오더라.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사랑을 얻었는데,
나는 나를 지키느라 나이만 먹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다.
자신에게 사랑 받을 대상하나를 유기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속죄하는 기분으로 이번 겨울도 난 감옥 같은 방에 갇혀,
반성문 같은 글이나 쓰련다.


by 김정수 | 2005/05/06 12:24 | 엄마의 산책길 | 트랙백(1)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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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불가능한 꿈을 가진 리.. at 2005/05/07 00:17

제목 : 사랑을 시작하는 친구에게...
나는 한때 나 자신에 대한 지독한 보호본능에 시달렸다. 사랑을 할땐 더더욱이 그랬다. 사랑을 하면서도 나자신이 빠져나갈 틈을 여지없이 만들었던 것이다. 가령, 죽도록 사랑한다거나, 영원히 사랑한다거나, 미치도록 그립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게 사랑은 쉽게 변질되는 방부제를 넣지 않은 빵과 같고, 계절처럼 반드시 퇴색하며, 늙은 노인의 하루처럼 지루했다.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지말자. 내가 한 말에 대한 책임 때문에 올가미를 쓸 수도 있다. 가볍게 하자, 가볍게. 보고는 싶지라고 말하고, 지금은 사랑 해라고 ......more

Commented by 은둔자 at 2005/05/06 12:30
노희경님의 글을 읽으면 참... 뭐랄까... 그 말이 주는 절절함이 묻어나는 것만 같아서 수첩 한 귀퉁이에 적지 않을 수가 없는거 같아요. 이 글을 읽으니 오래간만에 '거짓말' 이 보고 싶네요.
Commented by 그라드 at 2005/05/06 13:02
으아...좋다 >_<
Commented by 똥사마 at 2005/05/06 13:33
하지만 저도 미치게 사랑하고 싶지는 않아요,
Commented by MilgaruDol at 2005/05/06 14:00
언제였지..언제였지..하고있네요..
Commented by 나쁜엄마표 at 2005/05/06 14:01
노희경씨 다운 글이네요.
cool 한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기도 하지요. 때로는.
하지만 미치도록 사랑한번 못해보면, 억울할 것도 같아요.
Commented by 넋두리 at 2005/05/06 16:21
이 블로그에서도 이글이 ^^; 전 유죄--;
Commented by ▒夢中人▒ at 2005/05/06 17:21
아아.. 반성하옵니다 orz
Commented by soya at 2005/05/06 20:48
한번쯤 그리 사랑해보는 것도 좋겠지요
하지만 모든 지나친것은 모자람만 못한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김정수 at 2005/05/07 12:08
전 이글을 읽을때마다.. 어쩜 나의 생각을 고스란히 옮겨 놓았을까..하고 가슴이 뜨끔하답니다..
Commented by 거짓말쟁이 at 2005/05/07 21:26
그래도 역시 몸은 아껴야..[덜덜.]
Commented by Bohemian at 2005/05/09 22:42
...나는 나를 지키느라 나이만 먹었다.. 저에게 하는 이야기 같네요..저도 두려움속에서 살지만.. 쉽사리 물리치지는 못하겠는걸요.. 솔직하게 자신의 모든걸 던질 수 있는 것은 제게 큰 부러움이랍니다..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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