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네 집. 엄마가 뽑은 베스트셀러





주로 수컷이 노래로, 몸짓으로, 깃털로,
암컷의 환심을 사려고 온갖 노력을 다한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니까 그저 그렇고,
가장 흥미 있었던 것은 자기가 지어놓은 집으로
암컷의 환심을 사려는 새였다.

그런 새가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수컷은 청청한 잎이 달린 단단한 가지를 물어다가 견고하고
네모난 집을 짓고, 드나들 수 있는 홍예문도 내고,
빨갛고 노란 꽃가지를 물어다가 실내 장식까지 하는 것이었다.
암놈은 요기조기 집 구경을 하고 나서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집을 골라잡기만 하면 짝짓기가 이루어진다.

그래, 그때 난 새대가리였구나.


그남자와 헤어진 이유를 깨닫는 내용이 있는 본문 중..



박완서 할머니가 현대문학 창간 50주년을 기념하여 완성된
장편소설 '그 남자네 집'은 다분히 그녀의 추억담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 첫사랑의 기억이라고 단정 짓고 싶어졌다.

소설을 읽는 도중엔 그녀만의 특유한 농도 짙은 압축된 단어의 묘사와
팽팽한 고무줄같은 긴장감은 마른 침을 삼키게 할 정도로 리얼하다.
그리고 어쩌면 이리도 자세하고도 세밀한 묘사가 가능한가.
감탄을 마지 않는다. 역시 박완서 할머니란 생각.

보통, 첫사랑을 소재로한 소설들은
추억으로 미화될 소지가 많고 현실의 먼지와는 거리가 먼듯한..
군더더기가 생략된.. 마치 깨끗하게 말린 빨래같은 기분이 드는게 다반사이다.

하지만 그녀의 소설은 여지없이 1950년데 폐허의 서울 거리로
독자들을 인도하고 카바이트 향이 나는 포장마차 속
연애담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그곳에서 그 남자(현보씨)의 그윽한 시낭송을 듣게 만든다.

언제나 구슬같은 처녀로 첫사랑을 간직하는 그 남자에게서 그녀는 나이를
불문하고 구슬같은 처녀일 수 밖에 없기에 사무치게 만드는 이 소설은
아무리 불것 없었던 1950년대라 하더라도 사랑스럽게 보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구슬같은 여자로 기억하는 그 남자는 실명하고 소년으로 정지된 채 살아가고..
그 여자는 평범한 은행원과 결혼하여 네자매를 둔 평범한 아줌마로 살아간다.

그 남자와 그 여자의 사랑의 결말만을 순수하게 엮어 나가게 하지 못하는
환경적 요인을 우리는 놓치지 않아야 한다.
황무지 서울땅에서 하나씩 개척되어 일어서게 된 1970년대에 이르는
한국사가 소설 속에서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그 속에 그 남자와 그 여자의 사랑도 있고,
막무가네 그 남자인데도. 여전히 감사하는 그 남자의 어머니가 있고,
셈하나 못해 격주로 주급을 타서 생활하는 그 여자가 있고,
미군부대에서 결국 양색시로 전략한 옆집 춘희가 있다.
박수무당에 온 가족의 행사를 결정하는 그 여자의 시어머니가 있다.
그리고 수줍던 올케가 삶에 가장으로 포목장사의 달인이 되기도 한다.

아울러 뒤집어 생각하면,
우리가 느끼지 못했다고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으며,
책을 덮었다고 역사가 사라지는건 아닌 것 이다.
불같고 순결한 나만의 사랑이라고 주장하기엔 주위 여건 따지기 좋아하는 가족과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이웃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그래서 그 여자는 그 남자를 잊기에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늘 그래왔지만..결국 박완서씨의 주요 레파토리인 한국 가족사로
연애사도 마감되고야 말았다.

그래도 모처럼 흡족하게 읽은 책이었다. ^^


그녀가 그 남자와 헤어질때의 심정이 잘 나타난 문장이다.

..

그러니 내가 취한 행동은 그전부터 예정된 일이었다.
나의 눈물에 거짓은 없었다. 이별은 슬픈 것이니까.
그러나 졸업식 날 아무리 서럽게 우는 아이도 학교에 그냥
남고 싶어 우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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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夢中人▒ 2005/03/28 23:12 # 답글

    음.. 궁금하네요^-^a
  • 주영사랑 2005/03/29 00:42 # 답글

    서점에서 잠깐 들춰본 책의 구절 중
    <첫사랑이란 말이 스칠 때마다 지루한 시간은
    맥박 치며 빛났다>는 문장이 생각나네요.
    아련하지만 떠올리려하면 물고기 비늘처럼 파닥이는
    첫사랑의 기억...
    그분의 소설은 그래서 친근한가 봅니다.
  • 시릴르 2005/03/29 07:50 # 답글

    '정원사새'라고 했던것 같아요. 동물관련 프로그램에서 그 새를 여러번 봤는데 이름은 정확하게 생각이 나질 않네요;;
    제목만 보고 스칠때에는 '그 여자네 집'의 패러디가 아닐까 했었다는;;;
  • 패스츄리 2005/03/29 08:14 # 답글

    개정된 교과서에 '그 여자네 집'이 실려있다고 하더군요.

    한번에 쭉읽고싶은책과 조금씩 아껴서 읽고싶은 책으로 종류를 나눈다면 후자에 속할 책인것 같네요.
    레폿다 쓰고 읽어봐야 겠습니다.
  • 땅콩 2005/03/29 09:15 # 답글

    제가 '사랑하는', 박완서 선생님의 글이군요^^
    티비 책을 말하다에 나오셨을때도 그 딱딱 끊는 어투가 얼마나 좋던지..^^
    전 이분이 늘 좋은 분으로만 포장하지 않아서, 신랄하다고 느껴질만큼 솔직해서 좋습니다.
  • 나쁜엄마표 2005/03/29 09:32 # 답글

    오랜만에 제가 읽은 책도 김정수님 블러그에서 만나게 되네요.
    박완서 선생님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라 거의 빼놓지 않고 읽는 편인데
    소설 몇권을 붙여놓으면 박완서 자서전이 될 듯 싶어요 ^^
    50년대를 지낸 이력도 녹녹치 않지만, 남편과 외아들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낸 어머니로서의 그녀의 삶도 결코 간단치 않다는데서 묘한 동정심 내지는 인간적인 매력(?)까지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요.
    이제까지의 소설이 그녀가 결혼하기 전, 그러니까 50년대의 상황을 상상하게 했다면
    이 책은 결혼 후의 생활, 60년대를 상상하게 만들더군요.

    박완서 할머니의 대부분의 소설은 주제와 소재가 같지만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을 주네요.
    탄탄한 구성과 농밀한 언어구사, 그 문장력은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는 마력이 있어 '아 역시 박완서구나...' 하면서 읽었습니다. ^^
  • 로맨틱한사랑쟁이 2005/03/29 09:35 # 답글

    이책 정말 읽고 싶어요,...
    올해 읽어보려구요...
    정수님께서 역시 소개해주시네요
  • iaan 2005/03/29 09:37 # 답글

    얼마전에 저두 읽었더랬죠 ^^
    봄에 읽기에 더욱 좋은 소설 같아요..
  • 꿈꾸는풍경 2005/03/29 09:52 # 답글

    아... 환자분께 선물 받고서..아직 못 본 책이네요^^;
    계속 만화책만 보다보니...어째 집중이 잘 되지 않아서...
    요즘 심란한 일도 있고 해서 좀 마음이 정리되면 보려고 했답니다. 이거...심하게 찔리는군요.
    이렇게 좋은 책을 가지고만 있다니..ㅜ ㅜ
  • 다마네기 2005/03/29 12:07 # 답글

    저도 이 책이 처음 출간 됐을 때 무척 읽고 싶었어요.
    근데 아직 못 읽고 있답니다. ㅡ,.ㅡ

    이 책은 박완서 선생님의 자전적인 이야기 맞아요.
    전에 박완서 할머니(?) ^^ 의 자전적인 소설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와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 를 읽고 박완서님의 그 힘있는 문체에 압도당해서 앓아 누웠던 기억이 나네요...
    정말 전 그때 한 권 읽고 나서, 한 이틀 정도 누워서 앓았어요...
    그리고 또 한권 읽고 나서 앓고...
    그냥 힘이 쭈~~욱! 빠지고 입맛도 없고... 몸이 힘들더라구요...
    제가 넘 몰입해서 그분의 글에 빠져 들었었나 봐요...
    그때가 고3 겨울방학 때 였는데 좀더 진지하게 제 미래를 꿈꿔 보았어도 좋았을 것을...
  • 넋두리 2005/03/29 12:39 # 답글

    이해할수는 없지만 이해하게 만드는 듯한 느낌
  • 간이역 2005/03/29 15:49 # 답글

    지금 집에 있는데 다른 책을 읽고 있네요. 곧 읽게 될 것 같아요.. ^^
  • 김정수 2005/03/29 17:48 # 답글

    ▒夢中人▒ 님.. 내용이 궁금하게 만들었나요? ^^

    주영사랑님.. 아.. 표현이 참 좋네요. 정말 첫사랑의 느낌은 갓잡은 물고기의 파닥거림이 아닐까..싶더군요. 그래서 늘 백합처럼 향기가 베는 걸테지요.^^

    시릴르님.. 아.. 그 새대가리가 '정원사새'였군요.^^ 이래서 하나 또 배웁니다.
  • 김정수 2005/03/29 17:51 # 답글

    패스츄리님.. 그렇군요. '교과서'로 나올만큼 문체가 살아 숨쉬죠. 국어 역사도 이렇게 즐겁게 소설책 읽듯이 배우면 좋을거란 생각을 저도 가끔 했었답니다. 이제야 교육부가 정신을 차리는구먼~ ^^;

    땅콩님.. 그게 바로 나이먹은 사람의 경륜이 아닐까..싶어요. 박완서 할머니는 자신은 나이를 먹을 수록 가벼워진다고 하더군요. 걸리적 거리는게 없으니까요. 아~ 정말 솔직하고 갈수록 맘에 드는 작가예요.^^

    유진엄마.. 맞아요. 다 비슷한 문체며 같은 작가이고 또 같은 시대상을 그리는데도 다 틀린 기분으로 압도되죠.^^ 그분의 책들을 엮으면 자서전이 될 듯도 싶지만 아마도 솔직한 인정은 안하실듯..^^
  • 김정수 2005/03/29 17:53 # 답글

    로맨틱님.. 늘 신세대를 앞장서시는 사고를 가졌어도 책욕심을 많으셔서 정말 이뻐요.^^

    iaan님.. 봄과 첫사랑은 일맥상통해서 그럴까요? ^^

    풍경님.. 인덕도 많으신 풍경님..^^ 환자분이 선물하셨군요. 기회되면 한번 읽어 보세요. 후회 안하실 거예요.
  • 김정수 2005/03/29 17:55 # 답글

    다마네기님.. 굉장히 좋아하는 작가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그 많던 싱아는..'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에도 이런 작가가 존재한다는 자부심이 막 피어올랐던 기억이 새롭네요.^^

    넋두리님.. 애매모호하단 말씀인가요? ^^

    간이역님.. 그러시군요. 간이역님의 서평도 기다리고 있을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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