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씨는 누가 먹었나? 책읽는 방(청소년,초등)





책임 소재를 분명히 밝힌다 해도 아무 것도 해결되지 못한다.
그것은, 책임에서 벗어난 자를 편안하게 해 줄 뿐이다.

최선의 방법은 그것을 진심으로 바라는 자앞에 반드시 나타난다.

이해 관계에서 진정한 우정은 자라기 어렵다.

사건은 모두 필요해서 일어난다.
그리고 거기에는 반드시 배울 게 있다.

변화도,
변화에 대한 대응도 여러 가지가 있다.
중요한 것은 누구의 행복을 위해서 어느것을 선택하는 가이다.


-해바라기 씨는 누가 먹었나 본문중.


스펜서 존슨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의 책과
전혀 느낌과 감상이 다른 책이다.
책에 몰입하면서 '어? 내가 그 책을 읽었을때는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라는
당황함이 제일 먼저 다가왔다.

그건 왜였을까.
스펜서 존슨이 강조하는 '변해야 산다'라는 의미와 이 책의 저자 닉 네비가
어필하는 '변화의 대응력'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었다.
우선 꼬마인간 '허'가 치즈를 찾아 운동화 끈을 다시 동여매며
따뜻한 자신의 공간을 버렸지만 닉네비의 동화책(?)에는 자신의 울타리를
지키고 새로운 해바라기 종자씨를 개발하자는 것이었다.

변화의 대응능력이 판이하게 다르다.
어찌보면 '시골쥐와 서울쥐'의 대비를 보는 듯하다.

서울쥐에게 행복은 많은 문화의 혜택이었을 것이다.
시골쥐는 평화로운 정신적 안주라고 하겠다.
스펜서 존슨과 닉 네비의 차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독자의 결론은 무엇일까.
사람의 궁극적인 행복의 가치는 평화와 정신적 안주일 것인데
문화적 편리와 가치 또한 등안시 하기엔 낙후된 삶을 자체하는 꼴이다.
정신적 평화와 문화적 공간을 공히 이용하는 삶이 가장 멋지지 않을까.

그것이 더 지혜롭지 않겠는가. ^^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독서록은 어땠을까?



덧글

  • 빠샤 2005/02/01 08:53 # 답글

    정말이지 책임소재 따지는거 너무 싫습니다...
    나중엔 아무것도 아닌일에 책임소재만을 거론하는 일아닌 일만 만들게 되고요....조직이 커질수록 어쩔수 없는걸까요??
  • Gadenia 2005/02/01 09:53 # 답글

    전 아무래도 치즈를 찾아 나서는 쪽이 되지 않을까 하는..
    근데 따뜻한 나만의 공간을 버리지 않고 치즈를 찾아나설 수는 없는건가요? ^^;;
  • 꼬물이 2005/02/01 15:43 # 답글

    그렇게 바쁘시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으시는 님을 존경합니다.
    전 벌써 두달째 칼의 노래를 쥐고 있다가 며칠전엔 돈까밀로와 빼뽀네를 읽기 시작했는데 아직도 진행중이거든요...
    이책도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 김정수 2005/02/01 20:14 # 답글

    빠샤님.. 조직이라면 꼭 있는 책임소재.. 정말이지 딱 와닿는 글귀더군요.. 책임감있는 사람이 그리운 요즘입니다.

    Gadenia님.. 그러니까 정신적평화와 문화적 공간을 공유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겠지요..^^

    꼬물이님.. 이책은 두께도 가벼워서 다른책들보다 더 쉽게 읽으실수 있을거예요.. '칼의노래'는 요즘 우리 남편도 읽고 있답니다. '이순신'드라마 덕이겠죠? ^^
  • ff 2010/03/20 11:50 # 삭제 답글

    한시간이면 읽히네요.
  • 김정수 2010/03/21 22:03 #

    잼있게 읽으셨나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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