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 내 혀가 입 속에 갇혀있길 거부한다면


김선우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만약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나는 그를 죽이는 중입니다.
잔뜩 피를 빤 선형동물, 동백이 뚝뚝 떨어지더군요.
그는
떨어져 꿈틀대는 빨간 벌레들을 널름름 주워먹었습니다

나는 메스를 더욱 깊숙이 박았지요.
마침내 그의 흉부가 벌어지며 동백꽃이 모가지째 콸콸 쏟아집니다.
피 빨린 해골들도 덜걱덜걱 흘러나옵니다.
엄마 목에 매달린 아가 해골이
방그레 웃습니다 앉은뱅이 해골이 팔다 남은 사과를 내밉니다.

사과는 통째 곯았습니다.
그가 번쩍, 눈을 부릅뜹니다.
흘러나온 것들은 단숨에, 뱃속에 도로 집어넣습니다.

나는
날마다 그를 죽일 궁리를 합니다.
비대해져 살갗이 몸에 맞지않게 된 그는 쪼가리 살갗을 들고
매일 내 방으로 옵니다. 나는 그의 몸피에 새로 난 살갗을 재봉질하지만
(언제부턴가 나는 이 일로 생계를 꾸려가지요) 그의 몸은 가속으로 거대
해져갑니다. 숱한 살갗을 어디에서 벗겨 오는지 알 수 없지만
언제나 싱싱한, 피냄새가 묻어 있습니다....
오늘밤 나는 그를 죽일 겁니다.
그는 내게 남은 마지막 진피를 원할 테지요.
달콤한, 자장가를 부르며 사타구니 살갗을 벗겨내겠지요.

내일이면 그는 핑크빛 합성피부를 가져와 손수 박음질해줄
겁니다 리드미컬한, 노동요를 부르며, 나는 보너스를 받겠지
요 한아름 붉은 동백꽃도 받을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또 한번 그를 죽였습니다
나를 고소할 수 있는 법정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내 혀는,
그의 입 속에, 비굴하고 착하게 갇혀 있으니까요.

..

맨처음 읽어보면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 없는 느낌이 들지만
말 그대로 씹으면 씹을 수록 소름이 돋는 시다.

상상속의 괴물.
즉 사람들을 잡아먹어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비대한 괴물이
가져오는 쪼가리 살갗을 화자는 그의 몸피에 재봉질 해준다.
화자는 상상속에서 그 괴물을 죽여보지만 되살아나 다른 사람들을
잡아먹고 살갗을 벗겨낸다. 마침내 화자 역시 위기에 처해지면서
갑작스럽게 이 시는 끝이난다.

사랑의 생명성, 여성스러움이 말그대로
그녀의 손에서 강렬하고 풍요로운 이미지로 형상화 되었다고 할까.
나희덕시인이나 안도현시인이 극찬할 정도로 훌륭한 시인이다.

맛깔스런 음식상을 차려받은 기분이 들 정도로
그녀의 시들은 군더더기 없다.
이 강열한 타이틀 시외에도 매혹적인 시들로 가득차 있다..


by 김정수 | 2004/07/11 12:17 | 엄마가 읽는 시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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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boogie at 2004/07/11 13:12
시인은 역시 언어의 연금술사들입니다..어떻게 저런 표현과 단어들을 구사하는지 놀랍습니다....최근에 본 시는 시는 아니고 시인의 수필집을 보았는데.."함민복 시인의 눈물은 왜 짠가"란 책이 였읍니다..그 책을 보고 시인의 위대함을 조금은 알것 같더군요...시인의 생활은 뭔가 다른것 같단 말이예요...
Commented by 마음나무 at 2004/07/11 13:33
최근에 주목받는 젊은 시인이죠,,,,첨에는 남자인 줄 알았는데 여자분이더라구요. 관능미넘치는 시들이 자연스럽습니다.
Commented by 혜광 at 2004/07/11 13:48
시인들은 보통 이성적이기 보다는 감성적이죠. 아마 그분들
낮에는 싯구가 전혀 떠오르지 않을걸요. 야행성이 어울릴겁니다.
다는 아니겠지만..... 도통 이해가 안되는구만...
Commented by 나쁜엄마표 at 2004/07/11 15:51
정말 섬뜩한 詩 이군여.
Commented by 김정수 at 2004/07/11 18:15
아.. 이 시외에도 좋은 시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고요.
이시는 타이틀입니다.
zenca 님이 시인에 대한 설명을 아주 자세히 해놓으셨습니다.
따로히 설명이 궁금하시면 링크를 눌러주세요.^^
Commented by 시작視作 at 2004/08/05 12:01
말씀하셨던 글이 바로 이 글이군요... 잘 읽고 잘 충격받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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