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다수의 금수저는 오만하며, 법을 지키지 않고, 심지어 나눔의 정신도 부족하다. 자신보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은 다 자기보다 못난 사람들이며, 멸시받고 천대받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피프 교수는 이 실험 결과를 발표할 때 강연 제목을 ‘돈이 당신을 사악하게
만드나(Does money make you mean?)?’라고 지었다.
(중략)
금수저가 판치는 사회가 위험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금수저의 문제는 단지 그들이 재산을
불공정한 방식으로 차지한다는 대목에서 끝나지 않는다. 금수저는 불공정한 게임의 룰을
이용해서 계속 승승장구한다. 결국 그들은 사회 고위층이 된다.
-'왜 사회에서 ‘금수저’가 위험할까?_ 모노폴리 실험' 中
경제학분야에서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분석한 행동경제학을 재미있게 풀이해준 책이다.
경제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들에겐 호불호가 좀 있을 것 같긴 하지만 일반인들이 접하기엔
기초적인 책이라 읽기가 편할 것 같다. 메스컴이나 일반상식처럼 거론되고 있는 경제학용어들을
알기쉽게 풀이해주기 때문이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이성이나 합리적판단보다 심리와 감성이
실질적으로 경제를 움직인다는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이 책은 개인의 경제활동에서 부딪치는 경제이론들부터 시작해서 사회, 국가경제에서 다루는
경제학이론들까지 심도있게 다루고 있는데, 마지막 장을 덮을땐 다소 심각해진다.
책의 저자가 사회경제부 기자를 거친 경력이 사명감처럼 사회전체를 바라보는 시야때문일테다.
행동경제학 용어 설명 중에 재미있었던 몇가지는 아래와 같다.
- 터널링 이펙트(왜 시험 전날에 공부가 제일 잘될까?)
: 데드라인이 있는 것은 결핍을 낳고 결핍은 효율을 만들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이는 잠시간의 약발
일뿐 창의성과 건강을 위협하게 된다. 단기기억력을 급하게 가동하면 무리가 오는 것이다. 저자는
소방관들이 화재현장에서 다치는 확률보다 급하게 현장으로 달려가는 이동중에 교통사고 확률이
높은 것이 그 예라고 제시한다.
- 미완성 효과(왜 첫사랑은 잊히지 않을까?)
: 인간의 뇌는 완결되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기억회로에서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완결 지은 일보다 더 기억을 잘 해낸다고 한다. 반대로 완전히 끝난 일은 소용이 없어진 관계로 쉽게
잊는다고 한다.
- 통제력 착각(왜 그는 도박에 빠졌을까?)
: 연필을 굴려 답을 찍는 수험생들은 무슨 생각일까. 확률적으로도 아무 차이가 없는 것을 고집하는
이유 중에 인간은 자신의 미래나 운명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고 낙관하는 행동에 근거한다.
이는 도박에 빠지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 넛지(Nudge_세상을 바꾸는 부드러운 힘은 무엇인가?)
: 인간은 모든 상황을 합리적으로 분석하고 계산기처럼 정확하게 답을 산출해서 행동한다는 호모
에코이노미쿠스(현대주류경제학에서는 그렇게 분석했지만)가 아니라 비효율적인 실수투성인간이다.
쉽게 다른이들을 신뢰하고(수많은 사기사건들을 상기하라) 스스로 통제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들은
강압적인 방식을 거부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구조의 변화로 누군가 부드럽게 개입해줘야 한다.
예를들어 '계단 오르기는 건강에 좋습니다'라는 문구보다 계단을 밟을 때마다 소리가 나오고, 색이
들어온다면 자연스럽게 계단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리처드 탈러는 이 개념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넛지(Nudge)란 책은 워낙 유명하기도 해서 따로 책을 사서 읽기도 했었는데, 당시 기억에도
사회전반에 공익을 위한 정책으로도 활용가능한 분야가 많지 않을까 생각하곤 했었다.
저자는 개인, 타인, 사회전반을 통해 경제를 움직이는 통념들을 알려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사회구성원으로써 공동체의식을 어떻게 가져야 할지 문제시한다.
이미 우리는 부익부 빈익빈이 한층 심화된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아무리 '노오~~력'해도 살기 힘든
세상이란 뜻이다. 드라마 소재로도 자주 등장하는 '금수저'와 '재벌'들의 행태들을 지켜보면서 그것이
그저 드라마라 설정된 것이란 생각따윈 이제 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회지배층으로 살다가 그들의
자식들에게 대물림하고 우리자식들의 지배층으로 살아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금수저가 판을치는 불공정한 사회임에도 시민들은 묵인하며 살고 있다. 그저 하늘이
감동할 만큼 노력을 하지 못해서 나는 부자가 되지 못한다고 믿고 살 뿐이다.
버클리대학교 학생들이 두 명씩 짝지어 모노폴리 게임 실험을 했다. 금수저(갑)은 흙수저(을)보다
두 배의 돈을 가지고 시작한다. 출발 선부터 불공평하기 때문에 그들의 승리는 당연한 결과건만
갑은 당연한 결과처럼 행동했고, 을에게 무례한 말과 행동을 보이고 자신의 부를 과시했다고 한다.
을의 처지에 대해 그들은 무관심하고 동정심 따위는 없었다고 한다. (위 인용문 참조)
문제는 금수저들이 이 구조적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금수저들은 자신의 성공을 환경적
요인보다는 자신의 노력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한다. 모두가 노력한다고해서
금수저가 될 수 없다는 간단한 통계적 사실도 인지하지 못했다. 금수저는 그래서 위험한 것이다.
물론 드물게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금수저도 있긴 하지만, 말그대로 드물다.
책의 후반부인 사회전반을 설명하는 행동경제학 용어를 읽으면서 나는 답답함이 밀려왔다.
금수저가 무조건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보다 사회전반에 깔려있는 통념의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우리가 무조건 노력과 인내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기에 앞서 '빈곤과 결핍'으로 힘들어하는 흙수저는
노력과 인내력 훈련만으로 해결하기 힘들다는 점을 사회조직 구성원들이 제대로 인지했으면 좋겠다.
갑질과 폭행을 일삼는 그들의 악행이 심심찮게 보도되는 현실을 언제까지 눈뜬채 지켜봐야 하는가.
심지어 그들은 서민들의 처지에 관심조차 없는데 말이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라는 것이 주류 경제학의 믿음이었다. 하지만 반면 인간은 연대하고
협동하며 살아가는 따뜻한 정적인 존재라는 사실이 행동경제학을 바탕으로 많이 증명되고 있다.
다른 독자들도 단순히 경제학용어를 알았다는 소득에 그치지않았음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개인의 노력과
더불어 사회환경의 변화를 이끄는 노력도 함께 병행해야만이 진짜 행동경제학의 진수를 느끼는 삶이
아니겠는가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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