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교 암, 걱정 독.
엄마가 늘 근배에게 하던 말이었다.
"아들, 비교는 암이고 걱정은 독이야. 안 그래도 힘든 세상살이. 지금의 나만 생각하고 살렴."
(중략)
물론 근배에게 산다는 건 걱정거리로 가득했고 사람들의 하대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엄마가 남겨준 말을 꼭꼭 씹었다. 하대는 상대방의 시선에서 나온 비교였고,
비교를 거부하자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담담하게 대응하는 근배를 사람들은 더 이상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걱정또한 지금 현재의 일에만 집중하겠다고 마음먹자 실재하지 않는 허상에
불과해졌다.
본문 中
나는 급작스런 친정엄마의 운명으로 정신이 심하게 피폐해져 멍한 상태였는데, 코로나까지 걸려
내 몸하나 건사하지 못한 죄를 톡톡히 치뤄야 했다.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기 위해선 제일먼저
웃음을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읽게된 김호연작가의 '불편한 편의점2'다.
다행스럽게도 낯익은 책표지를 보자 마음이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했다.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전편의 줄거리가 떠올랐고, 작가의 능숙한 스토리전재로 소소한 서민들의
삶 속으로 쉽게 빠져들 수 있었다. 읽다보니 조금씩 위로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이 소설은 전편말미에 진행된대로 편의점 주인 염여사는 교회 동료였던 오여사를 점장으로 앉히고
편의점 아들인 민식이 편의점을 물려받은 것으로 시작된다. 형사출신 곽씨도 여전히 등장한다.
염여사는 치매초기인 '경도인지장애' 판정을 받고 요양차 이모댁으로 내려간 것으로 설정되었다.
읽으면서 치매가 결국 진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슬프게 다가왔다. 염여사는 어떻게 현실을 받아
드릴까, 걱정과 함께 현명하게 대처할지 여부가 참 궁금했다.
후편에서는 스토리 전개를 이끌던 고독한 '독고'씨는 등장하지않지만 그와 유사한 근배씨가 등장한다.
그는 덩치도 독고씨와 비슷하고 하는 행동도 유사하다. 스토리 중반까지 나는 작가가 독고씨와 유사한
케릭터를 삽입한 것이 살짝 불편했다. 전편과 비슷한 에피소드들이 중복되는 기분이였기 때문이다.
조금 다르다면 '독고씨'는 어눌한 말투였다면 '근배씨'는 말이 많은 홍금보(영화배우)랄까.
소설은 2020년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로 깊숙히 들어가 자영업자들이 현실에서 속절없이 무너지는
장면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었고, 진입장벽이 높은 취업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편의점 알바를 선택했지만
근배씨의 조언으로 결국 당당히 취업문을 뚫은 소진씨 이야기도 꺼낸다. 속편에서도 근배씨는 편의점을
찾은 서민들의 고통과 걱정들을 담담히 객관적으로 해결책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독자들은 슬슬 그의 정체가 궁금해질무렵 근배씨의 과거이야기로 들어가는 형식이다.
소설의 주인공 근배씨는 평범하고 낙천적이고 남의 말을 잘 믿는 케릭터다. 그는 여러 사람들에게 이용
당하는 속터지는 인물이었지만 한 가지 뚝심으로 삶을 지켜나가고 있는 인물이었다. 엄마가 해준 말씀을
새기며 사는 멋진 아들이었다.
"비교 암, 걱정 독"
삶은 잔인하게도 부자와 가난이라는 선을 만들어 남을 비교하고 그로인해 가난한 자는 '걱정'이라는 독을
끌어안고 살게 만드는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생각처럼 내가 상대의 비교를 거부하면 되는 것이다.
걱정은 인간이 만든 허상이다. 내일을 걱정하기에 앞서 닥친 내 현실을 묵묵히 처리해 나가자는 논리다.
근배씨의 뚝심있는 성격으로 편의점에 오가는 손님, 알바, 심지어 정신 못차릴 것 같은 편의점 아들까지
모두 그의 마인드로 순화된다. 편의점 사장 염여사의 결말은 정말 뜻밖이었는데, 뭐랄까.. 허리가 곧곧해
진다고나 할까. 난 그렇게 멋진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먹먹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마지막 염여사가 다짐하는 구절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다시 일어나 돌아가야 했다. 사람은 일어나면 가만히 서 있지 않는다. 일어나면 움직이게 되어 있고
어떻게든 앞으로 걸어가게 되어 있다. 그것이 재기이고, 정신을 차리고 내가 가야 할 길이었다."
코로나는 끝나지 않았지만 일상으로 복귀하려는 움직임은 활발해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말 못할 현실
속 고통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안다. 이 책은 그 과정을 담고 있고 어떻게든 앞으로 나가려는
재기의 사람들에게 큰 응원과 힘이 될 것으로 믿는다.
잘 읽었다. 난 일어설 것이고 앞으로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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