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복_버트런드 러셀. 책읽는 방(국외)








삶이라는 성찬 앞에 앉은 사람들은 삶이 제공하는 여러 가지 좋은 일에 대해 동일한 태도를
취한다. 행복한 사람은 건강한 식욕을 갖고 음식을 즐기며 적당히 먹는 사람과 같다.
굶주림과 음식의 관계는 열의와 인생의 관계와 같은 것이다. 식사에 싫증을 내는 사람은
바이런적 불행의 희생자와 대비된다. 의무감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은 금욕주의자에, 대식가는
난봉꾼에 대비된다. 미식가는 인생의 쾌락의 반을 비미학적인 것이라고 비난하는 괴팍한 사람과
견줄 수 있다.

이상하게도 대식가는 예외이겠지만, 이러한 타입은 모두 건강한 식욕을 가진 사람을 경멸하고
자기들이 더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배고 고파서 음식을 즐기거나 또는 인생이 여러 가지 흥미 있는
구경거리와 놀라운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에 인생을 즐기는 것을 그들은 천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최대한 환멸감을 가지고 자신들이 단순한 사람이라고 경멸하고 있는 사람들을 동정한다.
나는 이러한 입장에 대해 전혀 공감할 수 없다. 모든 환멸은 내가 볼 때는 병이다. 물론 이러한 병은
어떤 환경 속에서는 불가피하게 걸리는 것이겠지만, 이러한 병에 걸렸을 때에는 가능한 한 빨리
고쳐야 하며, 지혜의 보다 높은 형태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본문 中



영국의 위대한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사상은 크게 두 가지 주제로 압축된다고 한다. 하나는
'절대 확실한 지식의 탐구'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삶에 대한 관심'이다. 삶에 대한 질문은
누구나 하지만 그에 대한 탐구와 진리를 찾아 러셀처럼 고찰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우연한 기회에 '행복의 정복'의 책소개를 읽었다. 뭐랄까 근래의 고민(괴로움)들의 해법을 찾을 수
있겠다는 희망이 들었다. 나는 요즘 지치고 힘든 이유가 궁금했고, 결과적으로 러셀을 통해 해답을 찾아 기쁘다.

행복의 조건은 크게 외부적 조건과 내부적 조건이 있다. 외부적인(양식, 직장, 건강)요인이 충분치
않을때 당연히 인간은 불행할 것이다. 하지만 러셀은 일단 극단적인 외부적 불행의 요인이 없는
사람들에 한하여 행복을 논하고 있다. 그는 행복이란 것은 외부적 조건이 갖춰졌다고 당연히 굴러
들어오는 것이 아니며, 내부적 요인들을 제거하려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내부적 요인들은, 우리가 흔히 고통스러워하는 모든 감정(경쟁, 권태, 자극, 피로, 죄의식, 피해망상등)
들을 의미한다. 행복은 제각기 만족도가 달라 규정짓기가 모호하지만 불행의 원인은 대체로 정확히
표현되어 드러난다. 그는 불행의 무수한 맹공의 원인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분석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끊임없이 삶을 즐기고 탐구하라고 요구한다.

나는 여러 불행의 요소들 중에서 '경쟁' 부분이 가장 현대스러운 고통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아래 인용문 참조)

투자와 같이 간단한 문제를 생각해보자. 많은 미국인들은 안전한 투자로부터 4퍼센트의 이익을
거두기보다 위험한 투자로부터 8퍼센트의 이익을 얻으려고 한다. 그 결과 자주 돈을 잃게 되고
근심과 초조가 계속된다. 나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내가 돈을 벌어서 얻으려는 것은 안전한 여가이다.
그러나 전형적인 현대인이 돈을 벌어서 얻으려는 것은 더 많은 돈을 버는 기회이며, 그것도 겉치레와
화려한 생활을 위해서 그리고 지금까지는 그와 동등하던 사람들보다 우월해지기 위해서인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경쟁'은 목표달성이라는 업적성과에 기반한다. 그것은 경쟁에서의 성공이 행복의 주요
원천이라고 강조된 것에서 기인한다. 저자는 어느 정도의 경쟁과 재능의 인정이 행복에 도달한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성공은 행복의 한 요소일 뿐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되며, 성공하기 위해
다른 소중한 모든 것을 희생한다면 그 성공은 너무 비싼 대가를 치루게 된다는 점이다.

1부는 '불행의 원인'에 대한 고찰로 씌어져 있다. 단원이 넘어가면 드디어 '행복의 원인'을 만난다.
행복은 소제목도 안정감이 있다. 열의, 사랑, 가족, 일, 일반적 관심사, 노력과 체념 등이다.
전반적인 그의 태도는 삶에 대한 호기심, 관심, 노력, 폭넓은 지식을 갖추라고 말한다.
우리가 경험한 만큼 보인다는 말을 많이 한다. 딸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싫어하는 사람이 갖지 못한
즐거움을 가지고 있다. 축구 구경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폭이 넓다. 독서를
즐기는 사람은 훨씬 더하다. 즉, 행복의 기회가 많다는 것이다.

그말은 자신이 갈망하는 폭넓은 호기심과 지식을 채우게 되면, 오히려 체념할 단계를 찾아낼 수 있고,
불필요한 욕심을 버릴 수 있으며 자아의 확대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대외적인 관심의 폭을 넓히게 되면 자신의 운명이나 불행에 집착하는 옹졸한 태도에서 자유로워
진다. 나의 조그만 불행이나 번민을 잊게 할 무수한 관심사에 눈을 돌리라는 말이다.

사실, 불행과 행복은 따로 떼어내어 생각할 관계가 아니다. 불행을 극복하면 행복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떠한 원인에 매몰되어 동굴 속에 갇히는 것은 더욱 고통의 수렁에 빠질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오늘도 힘차게 행복을 정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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