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는다는 것은 머리가 하얘지거나 주름살이 느는 것 이상이다.
'이미 때는 너무 늦다.', '승부는 끝나 버렸다.', '무대는 완전히 다름 세대로 옮겨 갔다.'
고 절실히 느끼게 되는 것이다.
노화에 따르는 가장 나쁜 것은 육체가 쇠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무관심해지는 것이다.
그러면서 앙드레 모루아는 나이 먹는 기술이란 희망을 유지하는 기술이라고 강조합니다.
인생의 기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슬프지 않게 받아들이고,
마음과 몸이 모두 건강하게 종점에 도달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나이를 먹는 기술'이다.
(중략)
위대한 일은 힘이나 민첩한 육체에 의해서가 아니라 조언, 권위, 성숙한 지혜에 의해서
성취될 수 있다. 노인은 그런 것을 잃어버리기는커녕 오히려 더 풍부하게 몸에 지니고 있다.
마치 기생목이 말라죽은 떡갈나무에 뿌리를 내리고 살듯이 인간의 지성은 노년에야말로
꽃을 피우지 않으면 안 된다.
나이가 들면 하늘을 향해 마음을 열어 놓을 수 있어서 좋다.
본문 中
남편이 올해 60십이 되었다.
59십이나 60십이나 한 살 더 먹은 것 뿐인데 도무지 실감나지 않은 사람처럼 틈만나면
신기한듯 얘기하곤 한다. 그 기분은 표정과 일맥상통한다.
그럼 나는 매번 똑같은 대답으로 웃어 넘긴다.
"이제 딱 반 살았네!"
요즘은 보험설계사들이 시니어 보험 가입시 120세 보험상품을 권하고 있다고 한다.
의학발달로 유병장수시대에 돌입한 것을 보면 120세까지 산다는 것이 딱히 농담도 아닌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은퇴를 하고나면 당분간은 외부활동을 하지만, 신체적 노화와 평소 관리 못한 지병의 발발로
사회적 활동이 서서히 중단하게 된다. 사회적 관계의 중단은 곧 집이라는 제한된 공간안에서 가족에게 의지하다
한 세대가 정리되는 것을 의미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화려함은 병마로 인하여 자체적으로 격리되고야 만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몸과 정신(마음)이 건강한채로 종점에 도달하는 것이 바로 '나이를 먹는 기술'이라고.
나이 먹는 기술은 어떤 것일까.
그동안 삶이 목표달성을 위한 탐구와 욕구로 힘들었던 시간이었다면 인생 3막시대는 느긋하게 시작해야 한다.
노년은 체력적으로도 경쟁할 수 없는 몸이 된만큼 경쟁에서 홀가분한 상태기 때문이다.
대신 그 자유감 안에는 혼자서도 외롭지 않은 지적 호기심이 내재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서와 사색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맞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봤는데, 글쓰기가 적합할 것 같다.
근래 친정집 초고령 부모님을 보면서 나의 생각이 굳어짐을 느낀다.
지금은 바쁘니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고, 여유로운 생각따윈 노년이 되면 준비하겠다는 생각은 늦었다고 본다.
그 준비는 청장년기부터 보다 구체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또한 간과하면 안되는 것이 노년의 육체와 정신의 자유를 위해서는 경제적 자립이 밑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안나 카레니나'의 소설 첫문장에 이런 글이 있다.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다른 이유로 불행하지만, 행복한 가정은 대개 비슷한 모습으로 행복하다."
행복한 가정은 대체로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그것은 행복의 조건이 두루 갖춰져 있어서다.
돈은 있는데, 몸이 쇠약해 병치레로 고생만 한다면 행복하지 않다.
아름다운 노년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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