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비우는 뇌과학_삶의 처음과 끝은 같다. 엄마가 뽑은 베스트셀러







어쩌면 텅 빈 상태는 방어체계나 이와 연관된 생각의 회전목마가 고갈되는 것과는 다른 것을
우리에게 제공할지 모른다. 텅 빈 상태는 우리를 아직 태어나지 않았던 시간으로 되돌려 보낸다.

이는 자궁으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수드펠드가 개발한 부유탱크에서 체험한 것과 비슷한다.
즉 감각이 박탈된 환경에서 수영을 하는 느낌이다. 모든 것은 어둡고 거의 완전히 고요하며,
자기수용성 인지 능력도 양수에서는 거의 발휘되지 못한다. 우리는 태아의 뇌가 잉태된 뒤 출산
세 달 전부터 주로 몽롱한 상태를 자아내는 저주파 뇌파를 만들어내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예전에 생리학자들은 이 단계에서 태아가 꿈을 많이 꾼다고 생각했지만, 태아가 아무런 체험도
하지 못하는데 무슨 내용의 꿈을 꾸느냐는 질문에는 현재까지도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어쨌든 몽롱한 상태를 자아내는 뇌파는 감각을 아주 많이 만들어낸다. 즉 이 뇌파는 태아가 자궁에
감금된 상태를 견대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때 이미 텅 빈 상태를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갖추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평생 동안 텅 빈 상태에 대한 친화력을 지니는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 오히려 우리가 텅 빈 상태에 대해 계속 두려워하는 것이 훨씬 놀라운 일이다.


본문 中



그동안 읽었던 뇌과학에 관련된 책들 중에 단연 독창적이고 놀라운 책을 읽었다. 읽는내내 놀라움은
물론이고 죽음에 대한 궁금증이랄까, 종교적 대답이 아닌 과학적 논리로 접근한 대답을 얻은 것 같아
대단히 흡족한 상태다. 이로써 때로는 무섭고 슬프게만 받아드렸던 죽음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이 책은 그동안의 뇌과학서에서 다루던 뇌의 능력(유연성, 회복탄력성 등)이 아닌 뇌의 텅 빈 상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뇌는 무념무상의 상태, 즉 텅 빈 상태를 대단히 좋아하며, 좋아하는 정도로
끝나는게 아닌 행복과 자유의 황홀경까지 느낀다고 말한다. 놀라운 지적이 아닌가.

당연히 책에서는 텅 빈 상태에 이르는 과학적 지식을 자세히 그리고 논문의 사례를 통해 입증하고
있다. 그에 대한 신뢰도를 의심할 수 없는 것이 매년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는 세계 최고의 뇌과학자가
바로 이 책의 저자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뇌의 구조, 즉 메커니즘을 자세히 설명해 주지만 용어도 낯설고 어려워 자주 봉착하게 만든다.
하지만 몇 가지 용어를 이해하고나면, 신체 중 불과 2퍼센트밖에 차지하지 않는 뇌의 역할에 대한
감탄이 저절로 나오게 될 것이다.

인간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 또는 '공포'가 아닐까 싶다. 이러한 위험감지 기능은
뇌에서 '편도핵'이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실험사례에서도 나오지만 편도핵을 추출하면 쥐들이
고양이를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호기심으로 곁에 다가가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는 편도핵의 역할, 즉 위험반응을 느끼지 못했다면 인간은 오래전에 멸종되었을거라 말한다.

그에 반면 해마는 방어체계를 완화시키는 역할을 하면서 극도로 불안한 스트레스로 호르몬 양이
높으면 호르몬 생산을 줄여달라고 '시상'에 신호를 보낸다. 그런데 시상이 닫혀버리는 상황이 오면
즉 위쪽 대뇌피질에 정보를 거의 보내지 못하는 상황이 일어나고, 대뇌피질은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로 변한다. 즉, 뇌 활성화가 통제되는 것이다.

이러한 텅 빈 상태의 설명은 단지 방어체계에 쉼표를 찍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새로운 자극과
감각을 만들어 주는 구실도 하는데, 흔히 예상되는 명상도 있고, 스포츠(축구관람시 청중의 파도타기)
나 격렬한 섹스(몽롱한 상태), 테크노 비트나 힙합에 맞춰 춤을 출때도 황홀경에 빠진다.

그러니까 '나'에서 벗어나 '우리'가 되는 순간 자아가 사라지는 느낌을 받는 것처럼, 무아지경의
상태에서도 텅 빈 상태를 체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뇌는 상당히 다양한 방식으로 텅 빈 상태가 될 수
있었다. 오늘날 뇌 연구에서는 텅 빈 상태의 반응이 일어날 때 실제로 뇌 피질의 언어영역이 비활성화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나는 읽으면서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부분이 있었는데, 루게릭병이나 치매등 우리가 살아 있으되 죽음과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정신적 감금상태)의 시선을 거둬도 좋다는 대목이었다.
그들은 비자발적으로 '텅 빈 상태'였지만 퇴파와 혈류를 검사해 본 결과 우울증과 체념의 흔적은 전혀
발견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우리가 느끼는 그들의 삶의 질이 상태가 심각할수록 오히려 그들의 신체는
더 긍정적으로 나왔다.

이 책은 뇌과학의 진실을 파헤치는 단계에 그치지 않고 철학, 인문학을 아우르는 고찰을 보여준다.
우리에게 죽음은 끔찍한 공포로 인식하고 있다. 결국 모든 종점은 죽음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의 증언(눈을 뜰 수없이 밝은 빛으로 빨려들어가는 몽롱한 기분)과 수많은
뇌 사진(공명사진)을 토대로 결론을 내린다. 죽음은 '시상'이 닫혀 공포와 두려움이 없는 태아의
시간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쇼펜하우어의 글이 인상적이라 인용하며 리뷰를 마친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출생과 죽음은 공통된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출생은 무에서 나오고, 죽음은 무로 돌아가는 것이다. 죽음을 맞이하면 우리 자신이 유래된 곳으로
간다. "죽음은 우리를 원상태로 복귀시킨다. 이는 최초의 상태, 말하자면 자기 자신이라는 본연의
존재 상태다"

그리고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이 상태에서 의지는 더 이상 자발적 주체에게 가지 않으며, 이로 인해
주체가 견뎌야 하는 고통 또한 더는 생기지 않는다. 이는 마치 어느 누구도 삶을 유지하기 위해
공기를 들이마시지 않게 되더라도 공기는 여전히 공기인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쇼펜하우어가 내린 최종 결론이 강조하듯, 죽음을 두려우하는 것은 어리석다.
죽음이 오면 오로지 고통에 찬 '의지의 주체'만 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지 자체는 사라지지
않고, 이제부터는 주체가 없어진 상태에서 완전히 홀로 존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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