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온도_이기주. 책읽는 방(국내)









"얼마 전에 내가 치매 판정을 받았어. 뭐라고 할까. 기억이 슬금슬금
도망치는 것 같기도 하고, 진귀한 보물을 강탈당하는 느낌도 들어..."
(중략)
"하하, 너무 심각한 표정 짓지 말게. 어쩌겠나, 과거 속에서만 살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나. 그냥 내게 주어지는 하루를, 내 생에 가장 젊은 날로
생각하기로 했지."


본문 中



평범한 일상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아파고 나서야,
힘들때가 와서야 인정하는 오류를 범한다.
그리고 그 힘들고 아팠던 시간에는 사람과의 관계, 즉 언어의 온도가
원인이었음을 실감한다. 사람은 사람의 말에게 상처받고 회복받는 것이다.

'언어의 온도' 이 책은 오래전에 읽은 기억이 있지만, 이상하게 당시엔
감흥이 없었다. 너무나 평범한 일상에서 감동을 찾아 꾸민 글같은 불편이랄까.
작가의 순수한 의도만이 고마울 뿐이었다.

요즘은 가사일을 할때는 리딩북으로 책을 듣고 있다. 참 좋은 세상이다.
집안일을 할때는 고민하며 들어도 되지 않을 책을 고르다 듣게 되었는데,
작가가 기자시절 근무했던 언론사 건물에 한 경비아저씨 수첩이야기를 듣는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 떨어져 당황했다.

저자는 종종 경비아저씨가 일을 하시다 수첩에 꾹꾹 눌러쓰는 행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퇴직을 하시게 된 아저씨와 담소 중에 수첩의 메모내용을 알게
된다. 아저씨는 치매판단을 받으셨는데, 앞으로 다가올 기억의 부재를 놓치기
싫어 자신의 기억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늘 메모한다는 것이었다.
수첩에는 아내의 생일, 첫 만났던 날짜등 아내와 함께하고 소중했던 기록들이
반복해서 씌워져 있었다. 사람에게 치매란 삶의 사망신고와도 같다. 그에게
지워서는 안될 삶의 언어는 아내와의 기억인 것이다.

사람에게 감동은 스토리 속에 한 단어가 아닐까.
나는 아저씨의 대화 속에 '과거 속에서만 살 수 없는 노릇'이란 말에서 가슴이
참 아팠다. 그 아저씨는 지워지는 현재의 삶 속에서 얼마나 소중하게 아내를
바라보며 사랑하실까..

이 에세이는 어찌보면 어디선가 들었던, 어디선가 드라마에서 보았던 내용들같다.
그런데 이 글은 작가가 직접 눈으로 보고 삶에서 체험한 실화고 그 실화들을
언어를 통해 감정의 온도를 넣어 책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저자가
타인의 삶에 눈과 귀를 열고 언어로 우리에게 전달해 주듯이 우리도 퍽퍽한
삶 속에서 마음을 열고 살면 그만큼 따뜻하게 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나의 부모님은 80십이 넘으시니 기억이 희미해지고 추억 속 연대가 혼란스럽게
엉켜살고 계시다. 부모님이 가끔 대화 중에 급격히 입을 다무시는 행동에는
기억의 정확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란걸 알고있다. 그럴때면 나는 치매걱정이 앞선다.

사람은 누구나 예외없이 죽는다. 그렇지만 죽어도 그 사람의 언어는 살아있다.
그 사랑하는 사람이 했던 말, 쓰던 글 때문이다. 치매걸린 경비아저씨의 아내를 향한
사랑이야기는 그래서 내 마음을 녹여 눈물로 떨어진 것이다.

이제서야 이 책을 진심으로 다 읽은 기분이 든다.
이 책에는 저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옮긴 글 말고도 많이 담겨있다.

참, 나는 눈으로도 좋지만 귀로 그의 글을 듣는 것이 좋았다. 혹시 시간이 여의치
않는 분들이라면 리딩북을 권하고 싶다.  색다른 감동이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기 전 들어가는 글이 좋아 옮기며 리뷰를 마친다.


말과 글은
머리에만 남겨지는 게 아닙니다.
가슴에도 새겨집니다.

마음 깊숙이 꽂힌 언어는
지지 않는 꽃입니다.
우린 그 꽃을 바라보며
위안을 얻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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