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 중에 결혼해서 두 살 터울로 아이를 다섯씩이나 난 여편네가 언제 심심할
시간이 있었겠는가. 막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가족을 위해 24시간 봉사해야
하는 생활로부터 어느 정도 놓여나 비로소 자기만족을 위해 쓸 수있는 시간의 여유가
생긴 걸 그렇게 말한 거였다. 그때까지 나는 심심할 수 있는 시간을 얼마나 갈망했던가.
심심하고 싶어 미칠 것 같은 때도 많았다.
돌이켜보면 유년의 시간이 칠십 평생보다 더 길게 느껴지는 건 심심할 수 있는 시간의
넉넉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심심해서 베개를 업고 자장가를 불렀고, 게딱지로 솥을 걸고,
모래로 밥을 짓고, 솔잎으로 국수를 말았다.
-첫 문단 데뷔인터뷰 중 '심심해서 글을 썼다'는 말로 오해를 받았을 당시를 회고한 내용 中
고박완서작가의 '노란집'은 짧은 단편소설과 함께 2000년대 초반부터 아치울 노란집에서
써내려간 산문들을 엮어 내논 책이다. 이 책은 그녀의 장녀가 돌아가신 엄마를 대신해
마지막으로 그녀의 따스한 글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제서야 읽으면서 반갑고 행복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는 박완서씨의 글을 읽으면
행복해진다. 왜그럴까 생각해보니 내 마음을 들킨사람처럼 털어낼 수 없었던 내 갈증들을
풀어 주셔서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그분이 돌아가셨을땐 마음의 어머니를 잃은 듯 슬픈
마음으로 힘들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좋았던 이유는, 그분이 행복하게 살다 가셨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분은 생전유언을 원없이 글로 풀다 가셨단 생각이 든다.
우리가 유년시절의 추억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을 '심심해서 였다'는 표현을 생각해낼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렇다면 돌아오는 은퇴후 삶의 심심함은 행복의 길로 표현될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자신의 삶을 오롯이 챙길 수 있는 시간인 것이다. 그단지 젊은시절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그녀는 자식들을 출가시키고 아치울 노란집에서 편안하게
자연과 더불어 글과 마주하며 살았다.
늙어도 스스로 자기 발로 걷고, 먹을 것을 해먹을 수 있는 건강에 감사하면서.
혼자 걷는 게 좋은 것은 걷는 기쁨을 내 다리하고 오붓하게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다리를 나하고 분리시켜 아주 친한 남처럼 여기면서 칠십 년 동안 실어 나르고도
아직도 정정하게 내가 가고 싶은 데 데려다주고 마치 나무의 뿌리처럼 땅과 나를
연결시켜주는 다리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늘 내 가슴을 울렁거리게 한다.
매일매일 가슴이 울렁거릴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한마디로 편안해지는 책이다. 어디 다니기 힘든 요즘 답답함을 달래기 좋은 책이다.
코로나펜더믹인 요즘 사람이 병드니, 자연이 건강해진다는 말이 들린다. 이런 사태는
사실 인간 모두의 책임이다. 그녀가 급진적으로 발전하는 시대변화 속에서 기업의 이윤
추구에 현혹되는 인간을 말한것은 우리의 삶의 근본적 행복을 찾길 바랬던게 아니었을까.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행복한 것이다.
엄마의 글을 책으로 엮으면서 딸이 독자들에게 대신 전달하고 싶었던 말이 오래 남는다.
생의 마지막까지 경쾌함과 진지함의 균형 감각을 잃지 말았던 박완서씨의 글을 인용하며
리뷰를 마친다.
"물의 흐름도 수많은 들과 굴곡을 만남으로써 속도가 조절되듯이 우리의 발전도
반대나 회의하는 입장이 있음으로써 비로소 곤두박질을 면하고 균형을 잡을 수
있는게 아닐까"
"그러나 고독처럼 산뜻하고 청량한 냉기가 없다는 것을 곧 온몸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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