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0. 책읽는 방(국내)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2 와 함께 합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0' 편을 흥미롭게 읽었다.
1권은 현실편(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와 2권(철학,과학, 예술, 종교, 신비)을 다뤘다면
이 책은 고대이전부터 지구탄생의 138억 년에까지 거슬러 방대한 지식을 다루고 있다.
읽다보면 2권의 철학, 종교, 신비의 내용을 더욱 세분화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사실 '지대넓얕 2권'을 읽으면서도 난해한 내용들이 많았지만 몰라도 되는 부분 정도로
느끼면서 큰 맥락만 이해하고 넘어갔던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그런부분에서 이 0권의 출간은 내겐 반가운 책이었다. 이 책은 내가 '내면의 세계'의
심연 속에서 궁금해 했던 부분들을 고대인들의 사상으로 속시원히 풀이해 줬다고나 할까.

이 책은 동서양의 위대한 스승들이 설파했던 사상들을 연대기 순으로 얘기해 주고 있다.
읽으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이렇게 확신있게 지식을 자세히 쉽게 설명해주는 저자의
해박함에 감탄과 존경을 금치 못한다.

워낙 많은 내용이 있지만 결론적으로 집중해서 생각할 주제는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저자는 고대의 위대한 스승들이 말하는 거대사상의 이해과 세계와 자아의 합일을 강조한다.

이 책은 각자의 철학적 이해를 객관적 눈높이로 갈아타는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색안경'을 끼고 살아간다. 자신의 생각에 부합되는 사람들을 찾고
결집하는 정치적 확장편향으로 안전하게 살고 싶어한다. 이미 의식은 고정된 색안경을
끼고 있다. 빨간색 색안경을 끼고 있다면 아무리 하늘이 파랗다고 말해도 믿지 않는다.
그것이 옳다는 신념의 색안경은 일단 이 책을 읽는 도중엔 '판단 중지'해야 한다.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의 차이점은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저자의 쉬운 비교는 감사했다.
그의 서양적 이원론과 동양적 일원론의 쉬운 정리로 인해 종교의 이해가 확실히 되었다는
점이었다. 서양 사상의 양대 산맥인 철학과 기독교는 동양의 일원론과는 달리 이원론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는 동양철학보다 사실 서양철학에 익숙하다.
서양철학(사상)의 이원론은 인간과 세계의 분리다. 인간이라는 미미한 존재는 우주 혹은
세계 속의 작은 존재라는 생각이다. 내가 죽어도 세계는 여전히 굴러간다는 사고방식이다.
대부분 사람들의 생각이 그렇지 않을까 싶다. 기독교인들은 죽으면 하나님의 곁으로 간다고
믿고 열심히 교회에 다닌다. 이런 사고의 중심에는 고대 소크라테스에서 시작된 고대 절대주의
철학으로 이어진다. 절대적인 신이 우주와 만물을 창조했고 그 신과 사람이 연결됨으로써
구원받고 영생한다는 논리기 때문이다.

반면 고대동양 사상의 가치관은 일원론이다. 내 안의 우주를 발견하고 음양, 선악은 모두 내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내 안에서 조화를 이루고 그것을 찾아가는 깨달음을 강조하고 있다.
신에게 복종하고 헌신하는 삶이 아닌 침잠하고 사유하고 내 안의 우주의 이치를 깨달으면
나 스스로 우주(신)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이는 불교사상과 상통한다. 이 책을 통해 알게된
범야일여(梵我一如)사상은 말 그대로 신은 내 속에 있고 내가 신이 된다는 뜻을 의미한다.
'베다'를 간직했던 고대 인도인들과 동아시아의 노자와 공자, 그리고 인도와 동양의 연결로
이어진 붓다와 그의 분파들은 현대의 동양사상의 근간이 되었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인정한 두 사상의 판결은 '일원론'이다. 그의 근거로 임마뉴엘 칸트의
등장을 예로 든다. 칸트의 철학적 관점은 서양의 이원론적 판단에서 개념을 뒤집어 놓는 계기가
되었다. 칸트는 당시 사람들의 지구중심의 관점에서 태양중심으로 사고의 전환을 일으켰다.
기존의 서양철학의 실제론에서 얘기하는 세계가 자아보다 우선한다는 개념에서 자아가 우선
한다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세계는 결국 내 머릿 속의 이미지를 통해 구현된다고 말한 것이다.
칸트이후로 서양철학은 동양철학의 '자아탐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두 사상의 기원은 문서화되지 않은 시기로 인해 귀납론에 의해 설명되는데, 나는 아직도
고대인의 사상의 시작이 된 서양문명의 수메르인의 문명과 인도에 '베다'를 전파한 아리안인의
능력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미약한 존재였음에도 우주와 자신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연결하려는
공부를 놓치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우리는 산업화와 자본주의사회의 노예가 되어 인간본성에 대한 고민과 자아의 탐구가 정지된채
살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삶의 노예가 되어 자신을 내팽개친채 우울 속에서 허우적댄다.
그런 삶은 결과적 자신의 우주를 버리는 행위다. 열심히 돈만을 쫓는다면 내 주변의 부산물들은
쌓여 가겠지만 자아은 없는 삶이다. 고대 위대한 스승들이 일관되게 수행하며 설파했던 글들을
찾아 읽어봐야 한다. 이 책이 큰 계기가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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