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하찮은 가치. 엄마가 읽는 시








이 하찮은 가치


- 김용택




11월이다.
텅 빈 들 끝,
산 아래 작은 마을이 있다.

어둠이 온다.
몇 개의 마을을 지나는 동안
지나온 마을보다
다음에 만난 마을이 더 어둡다.

그리고 불빛이 살아나면
눈물이 고이는 산을 본다.
어머니가 있을 테니까​. 아버지도 있고.

소들이 외양간에서
마른풀로 만든 소죽을 먹고
등 시린 잉걸불 속에서 휘파람 소리를 내며
고구마가 익는다.

비가 오려나 보다.
차는 빨리도 달린다. 비와
낯선 마을들​,
백양나무 흰 몸이
흔들리면서 불 꺼진​ 차창에 조용히 묻히는
이 저녁

지금 이렇게 아내가 밥 짓는 마을로 돌아가는 길, 나는
아무런 까닭 없이
남은 생과 하물며
지나온 삶과 그 어떤 것들에 대한
두려움도 비밀도 없어졌다.

나는 비로소 내 형제와 이웃들과 산비탈을 내려와
마을로 어둑어둑 걸어 들어가는 전봇대들과
덧붙일 것 없는 그 모든 것들에게
이렇게 외롭지 않다.

혼자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금의 이 하찮은, 이유가 있을 리 없는
이 무한한 가치로
그리고 모자라지 않으니 남을 리 없는
많은 시간들을 새롭게 만들어 준, 그리하여
모든 시간들이 훌쩍 지나가버린 나의 사랑이 이렇게
외롭지 않게 되었다.





..


얼떨결에 코로나로 시작되었던 2020년 한 해가
끝내 벗어 던지지 못한채 11월을 맞이하고 있다.
이제는 마스크 쓴 내 얼굴이 하나의 표상이 되어버린
일상에서 예전의 모습이 돌아 오기나 할까 의구심마져 든다.
자유롭게 사람들을 만나고 악수하고 포옹하고 다독였던
관계의 포근함은 경계하는 낯선 두려움이 대신해 버렸다.

너무나 당연시 했던 모든 가치들이 하나씩 감춰지고 생략되고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 부적응을 적응해야 할까.
아니, 누구라도 자신있게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까.

우린 언제쯤 외롭지 않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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