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가 찾아온 이유. 일상 얘기들..






이제 80십줄에 들어선 친정부모님은 젊은시절 그렇게 자식들 가슴 졸이게 싸우시던 열정은
온데간데없이 서로 존대하며 극진히 의지하고 살고 계신다.
근래 자주 찾아가게 되어 두 분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노라면, 두 분의 진짜 모습은 예전일까,
지금일까 나도 모르게 질문을 던지곤 한다. 나는 두 분의 전쟁같은 싸움을 지켜보면서 사춘기를 보냈다.
한 때는 너무 견디기 힘들어 두 분이 이혼을 해야만 가족의 평화와 행복을 찾는 길이라고도 생각했다.

아버지는 평상시 입을 다물고 계시다가도 술에 취하시면 닫혀있던 말문이 폭발하듯 터지셨다.
억눌러 있던 분노가 터지듯 다른 인격체로 변하셨고 살림살이들을 부수고 엄마에겐 폭군으로 변하셨다.
이대로 살 수가 없을 것 같아 서둘러 나는 결혼을 선택했던 것 같다.
그것만이 이 지긋지긋한 곳의 탈출구라고 믿었다. 결혼하니 몇곱배 강력한 시월드가 펼쳐져 있었지만..

아버지는 뇌경색으로 왼쪽팔과 다리를 제대로 못쓰신지가 벌써 10년이 훌쩍 넘으셨다.
아버지의 이중인격체의 종말은 뇌경색이었으니, 이 불행한 현실을 친정엄마는 오히려 고맙게 생각하고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져 든다.
그랬다. 아버지의 뇌경색이후 집안에 평화가 찾아왔다.

하지만 나는 슬프다.
아버지가 정말 하고 싶으셨던 말씀들을 제대로 들어보지도 못한채, 의식들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왜 인간은 병들고 쇠약해지고 자신의 몸마져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고서야 상대에게 겸손해 지는가.
인간은 죽음으로 종결된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자신은 절대 죽지 않을 것처럼 자신과 주변을 힘들게
만드는 것일까.  신체가 망가지고 나서야, 보호자 역할을 박탈당하고 나서야 늦었음을 알게 되는가.

나는 얼마나 사람들이 죽음에 대한 회피의식이 강한지 돌아가신 시어머님을 통해 깨달았다.
시어머님은 중증혈액암으로 판명을 받으셨음에도, 처방약을 복용 후 약기운에 차도가 조금 있기라도 하면
죽음을 받아드리지 않으셨다.  심리적 결재를 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음에도 사용하지 못하셨다.
그러다 고열과 폐렴이 급히 동반해 허무하게도 자식들에게 소중한 말 한마디 없이 떠나셨다.

살아 있을때, 삶을 정리할 줄 알아야 한다.
남은 가족들이 얼마나 숭고한 관계인지 깨달아야 한다.




덧글

  • 커부 2020/10/06 22:07 # 답글

    저희 아버지도 뭐가 그렇게 힘드신지 술만 마시면 폭군이 되셨는데 다행이 제가 성인이 되면서 삶이 여유로워져서 그런가 안그러시네요.
    아직 어리지만, 30살이 기까워지면서 저는 아버지가 왜 그렇게 술을 자주 마시셨는지 좀 알게 됐네요 ㅎㅎ..
    저희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병으로 병원신세를 지내면서 끝내 마지막 유언이나 가족들과 관계를 정리하는 그런 말씀없이
    돌아가셨는데 막상 제가 죽을때가 되면 미리미리 삶을 정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네요 ㅎㅎㅎ
    아직 먼 날이겠지만, 항상 삶을 성찰하다보면 저절로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김정수 2020/10/07 13:28 #

    자본주의 경제사회에 사는 이상, 삶의 질은 돈과 비례되는 것 같아요. ㅋㅋ
    자식들이 부모에게 어떻게 효도를 하면 잘하느냐는 질문에 '계좌이체'란 말도 있다잖아요. ㅋㅋ

    사실 저도 나이가 들면서 점차 부모님의 행동이 대부분 이해가 되고 있습니다.
    저희 친정아버지의 폭음 속에는 적응하기 힘든 현실과 이상과의 괴리였지 않았나 저혼자 추측하고 있어요.
    마지막까지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열심히 살려는 의욕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어요.
    가까이서 죽음을 목격하고 이제 친정부모님도 연로하시다보니 나름대로 제삶의 노년을 생각하게 되더군요.
    생각하면 인생이 길지만 또 지나온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굉장히 짧단 생각이 들지 않나요? ㅎㅎ
  • 순수한 산타클로스 2021/03/22 22:24 # 답글

    죽음을 생각할 때 역설적으로 삶에 충실해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살면서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을 통해서 죽음을 준비하고 지금을 더 자기답게 살고, 삶의 방향을 바꾸고.. 오늘도 경험에서 우러나는 잊지 말아야 할 말씀을 읽고 가네요. 감사합니다.
  • 김정수 2021/03/23 08:42 #

    죽음을 경험하고 돌아온 사람이 없으니 사후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없잖겠지만..
    최소 살아있는 사람들과의 단절은 분명하니까요.
    단순히 100살을 산다고 계산하더라도 차감되는 인생의 무거움을 느끼면서
    소중히 그리고 가치있게 살아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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