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인간학_나카지마 요시미치. 책읽는 방(국외)






약자는 공격하는 앞발이 약하기 때문에 뒤에서 몰래 선량함과 손을 잡는다. 그리고
이로써 선량한 자신의 옳음을 굳게 확신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 이면의 논리를
내세우며 '강하니까 나쁘다'라며 강자를 몰아세운다.

니체에게 약자란 이천 년 동안 성직자들에 의해 약하다는 이유로 추앙받아온 자들,
지상의 모든 권력과 부, 지식, 아름다움을 가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천국으로 갈
자격이 있다고 떠받들려온 기독교 신자들이었다. 그들은 근대에 이르러 민주주의나
기본적 인권을 근거로 약함에 더욱 안주하게 되었다. 약함을(내심 부끄러워하면서도)
자랑하고, 약함을 무기 삼아 "나는 약해서 옳다"고 주장한다.
-page 39




중세의 마녀재판을 뒷받침한 것은 착한 사람들이다. 이천년에 걸친 유대인 박해를
뒷받침한 것도 착한 사람들이다. 제2차 세계대전 전의 일본에서 전쟁 반대자에게
"매국노!"라고 욕하고 걷어차며 침을 뱉은 것 역시 착한 사람들이다.
현대사회에서 치한 행위나 성추행에 눈을 번뜩이며, 용의자를 붙잡는 즉시 목을
매달아 매장해버리는 것도 착하기로 소문난 사람들이다. 착한 사람들은 어느 시대건
결코 자기비판을 하지 않는다. 다른 모든 사람과 같은 행동을 하는 데 조금의 의문도
품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같은 행동을 하는 데서 한없는 기쁨과 안락함을 느낀다.
다시 말해 착한 사람들의 올바름의 근거는 딱 하나, '모두' 다.
-page 183


본문 中



'니체의 인간학'이란 이 책은 일본의 칸트 전문가 철학자인 '나카지마 요시미치'가
쓴 니체라는 인간의 철저한 해석이라고 하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왜 '칸트'가 아니고 '니체'인지, 처음엔 의야했으나 읽다보니 이 시대를 살고있는
일본 젊은이들에게 니체의 말을 빌어 까칠하게 말하려면 까칠함이 필요했음을 알게되었다.
니체만큼 순종적이고 착하지만 비열하고 약한 사람들을 싫어한 사람도 없으니까..

사실 나는 니체의 책을 정식으로 읽어본 적이 없다. 그러기에 니체를 제대로 읽고 해부한
이런 책이 선행으로 필요했다. 그렇게 부족한 니체에 대한 지식만으로 시작된 이 책은
읽을수록 그 분석과 지적들이 강해서 읽어내려가기 힘들었다. 아니 놀랐다고 하면 맞겠다.

소득이라면 니체에 대한 오해가 상당부분 풀렸다. 니체는 나치 군부독재의 입장에서 권력에의
의지를 강조하는 군사주의적 철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반유대주의자를 혐오했으며 독일을
혐오했다. 그를 그렇게 만든건 그의 도플갱어(여동생)가 오빠가 광기에 빠져 있을때 권력자
에게 접근해 히틀러를 농락해 나치스 독일의 사상가로 탈바꿈해버렸던 것이다.

니체는 우리가 있는 그대로 완전한 우리의 모습을 자각할 때, 진정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불평등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며, 평등을 강조하면 모두가 불행해진다고 보았다.
그런 인식은 착한 가면을 쓴 약한 인간을 혐오하는 것으로 비유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책은 그런 그의 철학 중에서 이러한 '착한 사람들'의 폭력성에 대한 상세한 분류
카테고리라고 보면 맞을 것 같다. 착한 사람들은 '다수'라는 연대로 자기비판적 시각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을 정도로 스스로를 관찰하는 눈이 없다고 보았다. 자기기만에 빠져있고 고지식한
정신을 가진 사람으로써 가축의 무리와 비슷하다고 표현했다.

예를들어 지나치게 친절한 일본의 관내 안내방송을 예시하며 착한 사람들의 안전에 대한
강박은 폭력에 가깝다고 폭로하고 있다. (아래 인용문 참조)


착한 사람은 관리받는 것을 몹시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멍청한 안내 방송이 아무렇지
않다. 거기서 그 어떤 굴욕이나 모욕도 느끼지 않는다. 그렇다고 착한 사람이 둔감한
것은 아니다. 착한 사람은 사회적 강자가 조금이라도 약자의 편을 들지 않는 태도를
보이거나 차별 발언을 접하는 즉시 가만히 있지 않기 때문이다. -page 83



착한 사람들의 폭력성이라..
명제 자체가 선뜻 받아드려지지 않지만 책을 읽다보면 그의 사상에 어느정도 수긍이 간다.
니체에게 착한 사람은 약자와 동일어다. 약자는 자신의 약함을 정당화하고, 약하기 때문에
강자의 보호를 원하며,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으려 먼저 친절을 베푼다고 해석한다.
게다가 약자의 무리는 다수이기에, 강자의 사람들이 당연히 위해주고 이해해줘야 하는 세상
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착한 가면을 쓴 약자들에게 강자들은 지배당하는 꼴이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의 니체가 생각하는 착한 사람들의 폭력성이다.

착한 사람들에게 최고의 자리는 강자의 삶이 아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중간과 중위의 것을
최고이자 가치있는 것으로 평가하는데, 이는 다수자가 살아가는 장소이자 다수자가 이 장소
에서 살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무리 속에서 편안함을 보장받길 원한다.
저자 '나카지마'는 약자가 약자로 살아가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문제는 약자가 자신의 유약함과 무력함을 착함으로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저자 '나카지마 요시미치'는 요약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선량함말고는 아무
짝에도 필요없는 착한 사람으로 살지 말라고. 자신의 확고한 의지와 행동과 주장만이
삶에 대한 예의라고 말이다. 강자의 삶을 살라고. 독선이 아니라 인격적이고, 지성적이며
스스로의 의지로 책임지는 인생을 살라고 말이다. 안전하게 살지 말라고.

니체의 말년은 어땠을까. 저자는 글로만 강했던 그의 삶을 담담히 알려준다.
착한 사람을 지독하게 경멸의 시선을 보냈던 니체는 아이러니하게도 대등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는 남자였다고 한다. 그의 최종적 친구였던 바그너도 단념하였고 니체 자신을
이해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절대적인 고독 상태에 빠져 외롭게 생을 마감한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화이트)

754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