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받아들인다는 것. 책읽는 방(국내)






책장에 오래전 읽었던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다시 읽어도 새롭게 읽히는 감사한 책입니다.

각자의 삶이 있겠지만, 제 인생엔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맞는 것 같아요.
산봉우리에 올라야 걸어온 길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한눈에 들어오듯이,
나의 삶을 돌아보면 왜 그러한 결과가 나왔는지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필연성의 법칙 아래 움직이고 있을 뿐이니까요. 

그의 철학을 해석한 변지영씨의 글들을 그대로 옮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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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젊은 사람에게는 끝없는 미래처럼 보이지만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는 짧은 과거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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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고 나면 알게 된다. 왜 그때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그런 일을 겪었는지를.
그래서 삶은 버둥대며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삶에 나 자신을 간신히 적응시켜 나가는 것이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그것이 결코 쉽지 않다.
내가 맺어온 인연과 삶의 작은 결과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사실은 가장 어렵다.
받아들이지 못해 다른 것, 더 나은 것을 찾아헤매다 젊음을 허비하는 경우도 많다.

삶에서 이뤄야 할 진정한 성취가 있다면, 그것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자리에서 온전한 나로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나로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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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을 재산과 지위, 배우자와 아이들, 친구와 모임 등 외부에 맡긴다.
그래서 이 중 뭔가를 잃어버리거나 싫증이 나면 행복의 기초가 무너진다.
그의 무게 중심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항상 바라는 것에 따라 이동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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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내면이 공허해 혼자서는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피하는 이유는 외부에서 자극을 받으려는 경우도 있지만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것 자체가 두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혼자 있으면 우울한 나, 불안한 나, 두려운 나, 화가 난 나를 직접 감당해야 한다.
객관적으로 자신을 보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혼자 있는 모든 순간이 낯설고 난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를 외면하면서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온전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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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별은 죽음의 전조이고
모든 재결합은 부활을 연습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사람조차
오랫만에 만나면 그렇게 반가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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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도 자신의 고유한 성격을 벗어나지 못한다.  외부 상황이 바뀌어 얼핏 다르게 행동하는 것
같아도, 그것은 성격이 다양하게 변주되면서 모양만 다르게 보이는 것에 불과하다.
양만 다르게 보이는 것에 불과하다.  사람의 성격이란 거의 변하지 않는다.

성격이란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에 대해 드러내는 지속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똑같은 일이 벌어져도 어떤 사람은 웃고, 어떤 사람은 난처해하거나 화를 내는 사람도 있다.
눈앞에 벌어진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어떤 행동을 선택하는가는 모두
성격에 달려 있다.
좋고 싫음, 할지 말지를 판단하는 것 등은 거의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으로 결정된다.

이것이 쇼펜하우어의 독특한 인간관이다.  기존의 철학자들이 인간을 합리적이고 이성적 존재로
본 것에 반해,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비합리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인간은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어떤 맹목적인 힘(의지)에 의해 움직이며 이성은 그 힘을
합리화하거나 보완하는 기능을 할 뿐이다.

우리는 먼저 움직이고
이후에 알아차리는 존재다.
이렇게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모든 에너지는
'의지'에서 나온다.
방향도, 목표도 없이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꿈틀대는 힘,
바로 맹목적인 삶의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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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사람은 기쁨이나 즐거움, 행복을 쫓아다니기 보다 직접 마주칠 수 있는
재난이나 고통을 겪지 않도록 주의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욕망을 잘 파악하고 한계를 스스로 정하고 절제하면서
바라는 것을 줄여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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