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준비해온 대답_김영하. 책읽는 방(국내)






전광판을 보며 나는 지난 세월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편안한 집과 익숙한 일상에서 나는 삶과 정면으로 맞장뜨는 야성을 잊어버렸다.
의외성을 즐기고 예기치 않은 상황에 처한 자신을 내려다보며 내가 어떤 인간이었는지를
즉각적으로 감지하는 감각도 잃어버렸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나날들에서 평화를
느끼며 자신과 세계에 집중하는 법도 망각했다. 나는 모든 것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골똘히 생각할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 에필로그 中


김영하씨의 글을 읽다보면 쿵 하고 와닿는 글귀를 만나게 되고, 그 글귀 한 구절이 계기가 되어
책 속 깊히 빠져들게 만든다. 일테르면 아래와 같은 문장들이랄까..


<어느새> 나는 이런 인간이 되어 있었다. 모텔에서 그날의 일정을 가늠하며 눈을 뜨는,
노트북과 휴대폰 배터리 잔량을 걱정하는, 서울의 은행에서 빠져나갈 자동이체 공과금들을
생각하는 그런 사람. 내 안의 어린 예술가는 어디로 갔는가? 아직 무사한 것일까?


EBS '세계테마기행'의 런칭제작진의 제안으로 가게된 '시칠리아'는 김영하씨가 자기도 모르게
정말 '오래 준비해온 대답'인양 튀어나왔다고 한다. 즉흥적인 대답후 그는 생각하게 된다.
그에게 시칠리아는 <대부>의 돈 코를레오네의 고향이고 <시네마천국>의 토토가 어린시절을
보낸 곳이다. 척박하고 메마른 땅에 검은 옷을 입은 여자들이 살고 있으며 거친 사내들이 배를
타고 자기 운명을 개척하러 떠나는 곳이라는 상식선에서 대략적으로 머리 속에 있던 곳이었다.
하지만 이윽고 그는 내면의 어린 예술가가 바람처럼 그리워했던 곳이었음을 확인받는다.

EBS 테마기행을 마치고 그는 아내와 한국일정을 서둘러 정리하고 시칠리아로 떠난다.
당시는 스마트폰 이전 시대로 구글맵도, 트립어드바이저도, 호텔스닷컴도 없던 시절이었다.
공중전화로 묵을 호텔을 예약하고 종이지도를 보며 길을 찾았다. 당연히 일정이 틀어졌다.

저자가 시칠리아의 여러도시를 돌며 그가 왜 담박에 <오래 준비해온 대답>처럼 말했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는 독자들에게 이 여행에세이로 인하여 누군가 시칠리아로 가게 될 것임을
장담하고 있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름다운 그의 글과 시칠리아의 사진들이 담겨져 있다. 더불어 여행에서 부딪치는 서툰 언어로
인한 실수들과 에피소드가 미소짓게 한다.
시칠리아에서의 첫인상이었던 '리파리섬'의 일상은 시칠리아 여행 전체를 바라보게 만든다.
읽노라면 그들의 느긋함과 평화로움에 웃음이 터진다. (아래 인용문 참조)

거리는 아침 일곱시에서 여덟시 사이에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한다. 그러다 오후 한시가 되면
일제히 철수한다. 우체국이나 은행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고는 모두 점심을 먹으러 간다.
친구들과 어울려 거창한 점심에 와인을 마시며 두 시간쯤 떠들고 약간의 낮잠을 잔 다음
다섯시쯤 되면 다시 가게로 돌아와 문을 연다. 과일가게도 인터넷카페도 마찬가지다. 그러고는
다시 저녁 여덟시나 아홉시까지 영업을 한 다음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도리 없이
나의 삶도 서서히 이 거리의 삶에 맞춰져갔다.


김영하씨와 아내는 대부의 흔적이 가득한 '타오르미나'를 거쳐 '에리체'와 '아르키메데스의
흔적이 가득한 '시라쿠사'와 대지진으로 시민전체가 사라진 '노토'를 거쳐 시칠리아 여행객이라면
필수코스인 그리스신전의 계곡(콘코르디아 신전)이 있는 '아그리젠토'까지 여행을 하고 돌아온다.
그리스식 원형 극장이 펼쳐지는 시칠리아 섬의 묘사를 상상하다보면 이태리 남부 지중해의 아름다운
바다와 함께 극장이 얼마나 멋질까 하는 멍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시칠리아는 화산섬이다. 대지진으로 시민전체가 죽은 '노토'도 있듯이, 그들에게 삶은
죽음을 염두에 살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그러기에 현재의 삶을 즐기며 행복을 추구한다.
욕심이 적고 살아있는 모든 생물에게 친절한 것이다. 지나치게 먹고 사는 것에 집착할 정도로
삶이 단순하고 그만큼 깨끗하다. 저자는 왜 오래 준비된 대답처럼 시칠리아를 말했는지
여행지에서 깨닫게 된다. 그들의 삶이 왜 그렇게 처연하게 느껴졌는지 말이다.

시칠리아의 최종 목적지인 아그리젠토의 신전의 계곡(콘코르디아신전)의 부서진 신전의
건축물은 부서진 상태로도 웅장하지만 부서졌기에, 폐허가 되어가고 있기에 또한 이중으로
쓸쓸함을 느끼게 한다. 조금씩 부서져가는 신전을 곁에 두고 사는 시칠리아 사람들은 하나의
문명이 사라지면 그 문명이 상상했던 것들까지도 함께 소멸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어느새> 정착된 삶에서 안정된 위치를 즐기며 잃어버리면 안되는
집착 속에 쌓여 살고 있지만, 저자는 그 의미없는 익숙함을 버릴 수는 없어도 내면의 동심만은
잃지 말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이 에세이집을 통해서 말하고 있다.
저자의 고백처럼 나도 언젠가 시칠리아를 가겠다고 베낭을 싼다면 이 책이 계기가 되었다고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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