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유산_시조부모님 이장을 마치고. 우리집 앨범방



동네에 사진사가 다녀야 기념으로 찍었던 시절, 친지분들 모두 잔뜩 긴장한 모습들이 역력하네요.
 

내겐 시조할머님, 남편에겐 친할머님. (위  단체사진에는 상단, 맨왼쪽)


손없는 날이었던 지난 토요일, 계획했던 시조부모님 이장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요즘같은 문명시대에도 '손없는 날'을 기다려 큰 일을 치루는 것이 이해가 안되지만 그래도 나쁘다는 것을 피해서
좋을건 없으니까요. 다만 저는 근래 일찍 찾아온 무더위는 긴장되더군요.
그래서 동트기 전에 모두들 서둘러 움직였고, 오전 7시에 이장할 장소로 자손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남편에겐 친할머니, 친할아버지고 제겐 시조부모님 이장일 이었습니다.

남편에게 친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셔서 기억에 없지만, 친할머니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습니다.
저랑 연애할때도 병약했지만 유달리 영특했던 자신을 끔찍히 이뻐하셨다고 자랑하곤 했으니까요. 남편에게 그 기억은
우울했던 유년시절을 지탱했던 가장 따뜻한 버팀목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곤 했죠.
할머님은 입짧은 손주를 위해 밥속에 삶은 달걀을 숨겨 몰래 먹였다고 해요. 그런데 그걸 다른 형제들이 모를리 있나요.
남편은 푼돈을 아껴 할머니께 교회헌금을 하시라 드렸다고 합니다. 또 까막눈 할머니를 불쌍히 여겨 성경책도
읽어 줬으니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웠을까요. 사람은 자신을 이뻐하고 아껴주는 상대를 결코 마음에서 지우지 않습니다.

생각해보면, 남편은 필요이상으로 조숙했던 것 같아요. 가장을 대신해 고생하는 엄마를 위해서 조금이나마 부담을 줄이려
졸업사진, 수학여행 등 돈이 들어가는 곳엔 필요없다며 사양을 했다고 하네요. 엄마는 그런 기특한 자식의 마음을
알면서도 집안사정이 어려워 눈감아 승낙을 했을테고요.
그런 사정을 묵묵히 지켜보셨던 할머니는 또 얼마나 가슴아프셨을지..

다행히 토요일 오전엔 구름낀 하늘에 선선한 바람까지 불어와 큰 땀 흘리지 않고 이장을 마쳤습니다.
이미 조성된 선산에 들어가시는 입장이라 포크레인 없이 인부들이 직접 삽으로 이장을 해야 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무리없이 마무리 되어서 다들 감사한 마음이었어요.
돌아가신 시어머님 묘소 윗편에 두 분을 무사히 합장시켜 드리고 이쁘게 돌화분까지 꾸며 드린뒤 돌아왔습니다.

이장하던 날을 위해 둘째 형님이 이벤트를 해주셨는데요.
그렇게 그리워하던 남편의 할머님 사진 한 장을 힘들게 찾아내 이 날을 위해 복원을 해서 준비하셨더라고요.
저도 남편에게 말로만 듣던 시조할머님의 얼굴을 이렇게 처음 뵙게 되었답니다.
남편과 둘째형님은 사진을 바라보며 할머니의 추억을 되살리시더군요. 각자의 기억 속에서 시조할머님은 가장의
무게를 짊어진 시어머님을 대신해 손주들을 키워내신 내리사랑의 증인이셨습니다.
둘째 형님의 붉어진 눈시울을 보면서 진정성이 느껴지더군요. 사랑의 힘은 죽음과는 무관합니다.

사람은 늙게 마련이고, 또 흙에 뭍혀 흔적도 없이 서서히 사라지겠지만 사랑의 유산은 이렇게 이어진다는 것을
느낀 하루였습니다. 아. 그리고 이제 무엇보다 한 곳에서 모두 이렇게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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