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인생에 채워드리고 싶은 것. 일상 얘기들..




유부초밥과 부추전을 맛있게 드시는 친정부모님


이번엔 엄마가 제일 좋아하시는 식혜를 해가서.


친정엄마와 보청기점검차 동행했다가 맥도날드에 들려 수다점심


향긋한 쑥갓전을 맛있게 드시는 친정아버지





일주일에 두 번이상은 친정집으로 발길을 향하고 있다. 퇴직하고 나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는 셈이다.
시어머님 생전에 워낙 오랜시간 병마와 싸우셨던터라 그만큼 친정집엔 소홀할 수밖에 없었고,
이제라도 죄송함을 만회하려는 노력이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서 일 년이 가장 인생에서 폭풍성장을 하는 시기라면, 노년의 80십 이후는 역으로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것이 보이는 시기다. 자주 가서 뵈는데도 너무나 빠르게 늙어가시는 부모님을
확인하노라면 속으로 너무 놀라 슬픔이 밀려온다.

자주 친정집에 가다보니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너무나 부실하게 식사를 하신다는 점이다. 김장을 담구지 않으신지가 벌써 몇 해가 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만사가 귀찮아지신 엄마의 주부사표를 의미한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식사 하실때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으신다. 빠르게 국에 말아 후루룩 밀어 넣으시기 때문이다.
혹시나 살펴보니 제대로된 어금니가 없으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두 분이 수북히 쌓인 봉지에서 시간맞춰 정확히 약을 꺼내 드시고 계셨다.
영양없는 끼니에 약들만 열심히 드시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엄마는 자식들이 몰려 올 명절때와 생신때만 상차림을 연기하신 것이다.
젊은시절 악착같이 돈을 모우고 자식들을 공부시켰던 두 분의 삶에는 본인들의 영양에는 할애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엄마의 가치관이 문제였는지 모른다.
무능력한 남편을 만난 엄마는 돈에 집착할 수 밖에 없었던 삶이었고, 그 안에 음식은 소홀한 가치였을 것이다.
남들에게 치루는 경조사는 빠짐없이 참여하면서 식사때는 부실했던 것을 성장기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와서 부모님의 인생을 무슨 권리로 잣대를 들이대겠는가.

나는 어떤 상황이 닥치든 내가 현재 할 수 있는 역할을 찾는다. 이제라도 친정집에 자주 들릴 수 있는 여건에 감사하고 있다.
음식을 좀 넉넉히 만들어 우리집과 친정집을 소분한다. 엄마가 좋아하시는,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음식을 만들어 간다.
처음엔 미안해 하시다가 이제는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해 주신다.
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늙은 친정부모님이 활짝 웃으며 반겨 주신다.
"오늘은 뭐 만들어서 왔어?" 아버지의 눈빛이 내 손에 가있어도 나는 서운하지 않다.

친정부모님의 남은 인생에 추억의 절반만은 음식과 함께 해드리고 싶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화이트)

745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