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_인생강의(바오펑산) 책읽는 방(국외)






"아는 것은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 해야 한다. 그것이 앎이다"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배우고 익힘을 게을리하지 않으면 어찌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벗이 멀리서 찾아오면
이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성내지 않으니 이 어찌
군자가 아니겠는가!"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 不亦君子呼?)


"부유함과 높은 지위는 모든 이들이 원하지만 정당한 노력 없이 얻을 경우 이를 거절해야
한다. 가난하고 지위가 없음은 모든 이들이 싫어하지만 부당하게 이런 상황에 처하더라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군자는 내면에 인을 쌓으면 행동에서 의를 벗어나지 않는다."


"우리 인생은 말이다. <시경>에서 시작해 예법으로 가꾸어지며 음악으로 완성되느니라"



공자가 말했다.
"나는 15세가 되어서 학문에 뜻을 두었고,(十有五而志于學)
30세가 되어서 학문의 기초가 확립되었으며, (三十而立)
40세가 되어서는 판단에 혼란을 일으키지 않았고,(四十二不惑)
50세가 되어서는 천명을 알았으며,(五十而知天命)
60세가 되어서는 귀로 들으면 그 뜻을 알았고,(六十而耳順)
70세가 되어서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여도 법도에 벗어나지 않았다.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본문 中



사실, 김시현작가가 추천하는 도서 중 '맹자(孟子)'를 읽고 싶어 구입을 먼저 했었는데, 생각해보니
맹자의 정신적 스승격인 '공자' 에 대한 도서조차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 반성이 되어
순서를 급하게 바꾸었다. 그리고 도서를 고르려는데 공자를 해석한 도서가 너무 많아
난감했다. 그러다 쉽게 그의 연대기 순으로 집필한 '바오펑산'의 '공자 인생강의'로 선택을
했다. 결과적으로 주관적이되 객관성을 잃지 않아 좋았다고 평하고 싶다.

이번 독서를 통해 알게된 고마운 점이라면 성인인 공자의 삶이 결코 우리네 인생과 크게
다름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성인이 아니었다. 그도 흔들리는 인간이었고
신분상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앞으로 달려 나가려고만 했던 시기도 있었다.
3세때 부친을 여의고 17세때 어머니마져 잃었다. 당연히 어린 시절부터 고난을 많이 겪었고,
스승도 없었다. 20대때 간신히 창고지기의 벼슬과 가축 관리직이 전부였다.
그가 큰 벼슬을 하게 된 것은 50십이 넘어서였다.

삼십이립을 선언했던 공자는 주나라의 '노자'의 가르침로 인생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찾게 된다. 그는 공자에게 스스로의 자신을 경계하라고 충고해 준다.
나는 공자의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스승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노자는 지식의 경지에
오른 공자에게 지식 이외의 처세(원리원칙)를 정확히 짚어주었다. 한 번의 만남이었지만
그에게 있어 노자와의 만남이 없었다면 공자의 성인 반열도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공자의 시대는 나라간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며 전쟁과 하극상이 만연한 시대였다.
그 과정에서 백성들은 고통을 당했고 지식층은 출세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공자가 자신의 뜻을 받아줄 나라를 찾아 떠돌던 시절, 산에서 만난 한 여인의 일화는 얼마나
포악한 시대였는지 가늠할 수 있다.
가정맹어호 (苛政猛於虎) -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내용으로 집안의 사내
세 명이 모두 호랑이 때문에 목숨을 잃었는 데도 '가혹한 통치'가 두려워 그 지역(제나라)을
떠나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참 그 시절 사람들은 불행하기 그지없었다.

공자는 혼란스러운 시대에서 살 길은 배움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十有五而志于學)
열다섯 살에 공부를 했다가 아니라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자신의 일생을 학문 연구에 걸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혼란스러운 시기였던 만큼
나라간의 리더는 자신의 지론을 밀고 나갈 논리가 필요했다. 그러한 수요를 파악하고
그는 사학을 열어 수많은 제자를 육성한다. 그는 출세의 목적으로 사학을 연것이 아니라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고 백성을 이롭게 하기 위해 인생의 목표를 세운다.(三十而立)
혼란기에 배움의 기틀을 잡아야 겠다고 결심한 공자가 있었기에 현재의 중국이 있다는
사실을 중국인들은 감사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공자는 혼란기에 수많은 나라를 떠돌며 왕에게 백성을 이롭게 다스리라 왕들에게 권한 핵심은
바로 인(仁), 예의였다.  예절이 단순히 인간의 행동 격식이 아니라, 삶의 가치를 만들고
삶의 의미를 규정짓는 기틀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어진 마음을 배워 그것을 정성으로 돋우고
체질화하여 스스로와 인간관계에 적용하면, 나라의 어지러움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그의 인(仁)사상은 인간관계를 조직하는 가치라 할 수 있다.

공자의 이상실현을 꿈꾸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크게 정치, 도덕, 사회, 인격으로 나눈다.
풀이하자면, 예로써 나라를 다스리고, 덕으로 예를 내세워 통치하며, 형벌을 공정하게,
예를 통해 몸과 마음이 바로 세우자는 뜻이다. 즉 원리원칙을 세우자는 제대로된 보수였다.
논어_미자에 그에 대한 원리원칙을 말하는 글이 있다.

원리 원칙이 없는 이들을 소인이라하며, 자신이 가진 원칙과 생각을 가지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이들을 현인이라 하며, 정해진 원칙과 기준이 있지만 정도에 어긋남 없이
융통성을 발휘하는 이를 성인이라고 합니다. 공자가 바로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이제 맹자(孟子)를 읽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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