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 수업. 엄마의 산책길






나이 쉰이 넘어가면서부터 이빨이 시원치 않았다. 예전에는 오징어도 잘 씹고 밤늦게까지 지인들과
어울려 술 한 잔에 세상 한시름 다 부려놓았는데 하루하루 치아 상태가 다른 게 느껴졌다. 치과에 갔더니
잇몸이 부실해졌다며 더 나이 들면 ‘틀니’를 써야 할지도 모른단다.

100세 시대, 이제 겨우 절반이 지났을 뿐인데 ‘내가 벌써?’라는 생각이 들었다. 치과에 다닐수록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몸을 어떻게 관리했지, 지난 세월의 흐름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처음에는 입구에
들어서는 것조차 거북하게 느껴지던 병원이 이제는 예전만큼 낯설지 않다. 신체적 변화 또한 나이가
들면서 찾아오는 자연스런 현상이니 그것에 익숙해진 듯도 하다.

우리 몸은 20대 중반부터 성장이 멈추고 노화가 시작된다.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측면 등 다양한 변화를
겪게 된다.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신체 기능이 떨어지고, 인지능력은 감퇴하며, 심지어 감동도
줄어들기 시작한다. 특히 무언가를 자주 잊어버릴 때가 있어 중요한 일들은 메모를 해둬야 안심이 된다.
이러다가 치매에 걸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괜스레 조바심마저 든다.

예전에는 나이 듦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나이 듦에 대해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외모나 신체 기능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고 해도, 막상 자신의 일로
다가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왠지 모를 서글픔과 두려움에 자주 젖어들기도 한다.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요소라고 여겼던 일, 가족, 관계 등도 점점 감당하기 버거운 무게로 다가온다. 이제 호시절은 다 갔으니
하고 싶었던 일들을 접고 몸의 생기를 잃어버린 채 나머지 인생을 살아야 하는 걸까?




인지발달론(Theory of cognitive development)을 주장했던 피아제(Piaget)는 삶은 ‘동화’와 ‘조절’의
연속이라고 했다. 동화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익숙해지는 것이고 조절은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무(無)와 유(有), 정(正)과 반(反), 불변(不變)과 변화(變化)의 변증법처럼 나이 듦에 따라 삶의
무게감이 느껴지기 시작한다면 동화만으로는 살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 삶을 여행에 비유하자면, 새로운 성장을 위해 지금과는 다른 여정을 떠나기 위한 가방을 다시 꾸려야
하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우리는 가방을 꾸리고 여행 중에도 계속해서 가방을 풀고 다시 꾸린다.
가방을 푼다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며 왜 그것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본다는 것이다.
가방을 다시 꾸린다는 것은 새로운 조건에서 지금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새로 가방을 꾸리듯, 새로운 느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배움을 줄까? 삶에는
중요한 것이 많지만 중요하지 않은 것들도 많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 아닐까? 필요하지 않은 수많은
짐을 도대체 언제까지 지려 하는지 자신에게 반문해보아야 할 것이다.

나이 듦은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준다. 다석 유영모(한국의 교육자이자 종교인, 1890~1981)는 생각을
‘살아 있는 순간순간의 깨달음’이라고 했다. 우리는 생각하면서 살아간다고 믿지만, 사실은 생각하지 않고
살아갈 때가 많다. 나이 듦의 지혜는 관성에 따라 살아가던 것을 멈출 때 생긴다. 멈춰 생각함은 ‘시간의
연속성’과 ‘텅 빔의 공간’에서 다양한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삶의 변주곡을 보고 이해하는 것이다.

지금 변해가는 것들을 좀 더 천천히 둘러보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고, 들리지 않았던
것들이 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어쩌면 나이 듦에 따라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재미나 감동 그 자체가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 있는 감각’일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수록 타인이 살아가는 방식을 흉내 내던 것에서 벗어나게 된다. 젊은 시절엔 그 나이에 맞는
행복이 있듯, 나이가 들어야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과 행복도 있다. 나만의 시간과 공간에서 오롯이 여유를
누릴 때 자신을 좀 더 긍정하게 되고 세상과 조화를 이룬다. 이런 자기 긍정과 조화는 사람마다 삶의
이유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럴 때 우리는 불안과 긴장에서 벗어나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며 진정한 삶의 토대를 느낀다. 쉰이 넘은 나이에 깨달음 얻은 다석은 나이 듦의 수업을 일식(一食),
일언(一言), 일좌(一坐), 일인(一仁)으로 꿰뚫었다고 한다. 나이 듦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을 때 다가올
죽음도 잘 수용할 수 있지 않을까.


* 일좌(一食) : 무릎을 꿇고 앉아 말씀을 묵상하는 것
   일식(一言) : 하루 한 끼를 먹어 자기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행위
   일언(一坐) : 남녀간의 성적 관계를 끊는 것
   일인(一仁) : 언제든 걷는 것으로 자신의 몸을 지키는 것



- 양준석 한림대 생사학연구소 연구원

생사학 연구 철학박사. 심리상담 전문가로 상실치유를 위한 '애도상담 웰바이' 집단상담을 운영하고
있으며, 한림대 생사학연구소에서 생애주기 사별 경험과 애도 프로그램 관련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있다.
이후에도 꾸준한 활동과 노력으로 삶에서 상실을 겪은 분들을 치유하는 일에 기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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