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떠났습니다. 우리집 앨범방







접기로 한다


-박영희


요즘 아내가 하는 걸 보면
섭섭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지만
접기로 한다.

지폐도 반으로 접어야
호주머니에 넣기 편하고
다 쓴 편지도 접어야
봉투 속에 들어가 전해지듯
두 눈 딱 감기로 한다.

하찮은 종이 한 장일지라도
접어야 냇물에 띄울 수 있고
두 번을 접고 또 두 번을 접어야
종이비행기는 날지 않던가

살다 보면
이슬비도 장대비도 한 순간,
햇살에 배겨 나지 못하는 우산 접듯
반만 접기로 한다.
반에 반만 접기로 한다.
나는 새도 날개를 접어야 둥지에 들지 않던가


..


4월말일자로 오랜시간 일상을 차지했던 회사생활를 접었습니다.
용희낳고 다시 회사를 나가서 퇴사를 한 년도로만 쳐도 19년이 되었네요.
사원에서 이사라는 임원까지 긴긴 세월 수많은 사건사고가 있었습니다. 사람에게 망각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요.
속썩고 힘들었던 시간들, 고생하며 집중했던 일들의 해결로 행복했던 시간들.. 소설책 몇 권도 부족할텐데요.

떠나는 제게 다들'시원섭섭'하겠다는 말들을 인사치례로 하더군요.
사실 제 신조가 '어떤 일이든 후회없이 하자'이기에 미련은 없습니다. 마지막 날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남은 일들은, 내일이면 그들이 해야 할 일들이기에 더이상 진척사항에 대한 궁금함도 지우려고 합니다.

그런데 여직원들이 알게 모르게 꽃바구니와 선물들을 쥐어줘서 눈물이 났습니다.
한 명, 한 명 당부의 말들을 그녀들에게 전달하려 노력했는데 잘 알아들었을까 염려도 되지만
이제 그마져도 다 접으려고 합니다. 이제는 정말 그들 몫이니까요.

아무튼 그동안 회사를 위해 제 시간의 많은 부분을 채웠지만, 이제는 나를 위한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생각만 하려고요.
퇴직을 한 오후, 남편과 아파트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화려한 철죽꽃들의 잔치 속에서 평온한 시간으로 복귀한 것을 진심으로 환영받는 기분이었습니다.
조직생활은 솔직히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쉬어도 쉰 것 같지가 않잖아요.
휴일이면 체력충전으로 쉬기 바빴습니다.
이제 그 무거운 짐을 덜어내서일까, 새롭게 느껴지는 산책이었습니다.

정신차리니 5월 1일이더군요.
친정에 들려 이쁜 호접란을 선물로 드리고 부모님을 모시고 나와 외식을 했습니다.
아버지, 엄마가 너무 많이 늙어버리셔서 가슴이 아픕니다. 이제 제가 시간이 많으니 잘해드려야 겠어요.

회사를 떠나고 며칠이 지났습니다.
서울로 이사와서 온전히 이제야 아파트생활을 제대로 하는 기분이 듭니다.
화단에는 괭이나물꽃이 한가득 이쁘게 피었어요. 이 꽃들이 낮에는 화려히 피다가 밤에는 잠자듯 숙인답니다.

한동안은 여유로운 시간을 즐길겁니다.
그 한가로움은 내가 가장 많이 기다렸던 선물이거든요.






덧글

  • 명품추리닝 2019/05/03 15:52 # 답글

    축하합니다. 제 2의 인생을 즐기세요. 짝짝짝 ~
  • 김정수 2019/05/03 19:48 #

    박수까지 쳐주시고..ㅎㅎ 감사합니다.
    이제 조금 여유롭고 느긋한 시간을 갖고 싶어요.
  • 쇠밥그릇 2019/05/03 16:42 # 답글

    시원섭섭하시겠어요.
  • 김정수 2019/05/03 19:49 #

    사람의 관계나 조직생활이나 떠나면 그렇더군요.
    이젠 새로운 생활시작이라 기대가 더 커요. ^^
  • 엄마사랑해요 2019/05/03 18:44 # 삭제 답글

    이사님 고생많으셨어요 행복을 만끽하시고 다가올 제 2막도 화이팅입니다
  • 김정수 2019/05/03 19:49 #

    감사합니다. 뭉클합니다.
  • xxx369 2019/05/21 21:46 # 답글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으시겠군요. 이번의 끝은, 시작은 또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주려나요? 멋진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 김정수 2019/05/04 22:59 #

    또다른 여정이 시작되겠지만, 이전보다는 조급하지 않은 여유를 가지고 시작하겠지요?
    멋진여행이란 표현, 너무 근사합니다.^^
  • lily 2019/05/31 09:38 # 답글

    그동안 고생많으셨어요! 한 회사에 오래 본인의 몫을 해내신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인거 같아요. 이제는 또 다른 삶의 여정을 응원드려요!!
    저도 이런저런 일이 있으면서 요즘 제 이글루스도 거의 방치하고 기록하지 못하는 것에 아쉬움과 스트레스가 있었는데, 다시 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오겠죠? ㅎㅎ
    건강 챙기시면서 새로운 나날들 시작을 축하드려요!!
  • 김정수 2019/05/31 15:31 #

    지겹도록 회사를 다녔더니 한동안은 회사 구경도 하기 싫을 정도예요. ㅋㅋㅋㅋ
    lily님도 그동안 스트레스로 힘드셨군요.
    자신을 되돌아 볼 수있는 시간이 현대인들은 참 부족하죠.
    기초체력이 있어야 달릴 힘도 있는거니까 기운 잃지 마시고요.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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