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책읽는 방(국내)








우리는 실재적인 것, 우리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을 대화 주제로 삼는 일에 익숙지 않았다.
나와 해원은 오히려 관념적인 것, 우리와 먼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쪽이 더 편했다. 우리는 우주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는 며칠이고 떠들 수 있었지만 이모의 죽음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사형제도에 대해서는 며칠이고 논쟁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이모가 자신을 죽이는 일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못했다.



-정영수 <더 인간적인 말> 본문 中



2018년 제9회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을 운좋게 특별 보급가로 구입해 읽게 되었다.
책에는 7개의 수상 단편집이 수록되어 있었는데, 읽고나니 일곱 편 모두가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문제의식을 심도있게 짚어낸 주제들이었다. 더불어 전혀 신인같지 않은 탄탄한 스토리구성과 문체들로
읽는내내 설레고 기뻤던 것 같다. 제2의 김영하, 제2의 성석제, 제2의 한 강 작가를 만난 기분이었고,
스피드하게 몰입하여 읽다보니 나는 7편 모두 단편으로 끝내기엔 아쉽다는 생각마져 들었다.

대상은 '세실, 주희'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독자층의 호감도가 다양하게 존중받는 요즘시대에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사실 심사를 맡은 기성작가들도 개인적으로 인상깊게 읽은 단편집은 모두 달랐으니까.

내 생각엔 대상으로 선정된 '세실, 주희(박민정 저)'는 다른 여섯 편의 단편들에 비해 주제의식이 명확했고,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작가의 일관된 스타일(젠더)의 안정성이 아마도 수상 뒤 모두의 선정책임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우리모두가 고민해야 할 문제의식이라는 접근성과 토론성이라면 적당할까.(다른 단편들에 비해서)

'세실,주희'는 대한민국에 살아가고 있는 현재, 누구라 지목해도 이상하지 않을 평범한 여성(주희)이
미국생활에 능통한 'J'라는 친구 손에 이끌려 뉴올리언스 여행 중 '마르디 그라 축제'에 들렸다가
포르노 싸이트에 자신의 얼굴이 게시되는 봉변을 당하면서 시작된다.
치욕스런 사건의 중심이 된 그녀는 분괴하며 싸이트에 게시물 삭제 요청을 해도 답변은 오지 않는다.

한편, 한류 문화를 향휴하는 소비자이자 화장품 가게의 직장동료로 나오는 일본인 '세실'은 동반신기가
좋아 한국의 직장생활을 하고 한국어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열성팬이다. 일본인 세실의 요청에 따라
그녀는 한국어 학습을 해주게 되는데, 주희는 세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순결한 소녀의 증조외할머니의
실체(이차대전 당시 미군에 투항하지 않고 자결한 히메유리 학도대 일원이 아니라 이차대전에 깊게 참여하여
야스쿠니 신사에 위패가 있는 전범국가의 주역)를 알게 된다.

우리는 어떤 피해사건을 직접 호되게 겪고 나면 그 사건의 진실이 얼마나 끔찍한 역사(이념 또는 문화)에
근거하는지 그제서야 추적하게 되고 몸서리를 치게 된다.
뉴올리언스의 마르디 그라 축제의 속성과 역사, 그리고 현지분위기를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따라간 주희
자신이나 이차대전에 관여한 할머니의 실체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한국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 집회에
따라온 세실에게서 아이러니한 현실과 비교되는 것이다.

저자 박민정씨는 이 소설을 통해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제대로된 현실인식, 역사의식,
지키고자 하는 정체성등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의식들은 개개인의 노력과 학습훈련과 의지로만 단단히 채워지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정영수씨의 '더 인간적인 말'이란 소설과 박상영씨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란 단편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이 두 소설은 현실에서 버젓히 존재하며 그로인해 고통받지만
어쩔수 없이 외면하고 있는 소재를 극적으로 다뤘단 점에서 너무나 반갑고 신선했다고나할까.

'더 인간적인 말'은 고령사회에 유병장수시대에 접어든 현대인들의 무거운 문제를 '안락사'라는 선택지를
씀으로써 가볍게 결론내 버렸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의 말이 질량을 느끼게 되는 요즘, 죽음을 앞둔
자들에게 인간다운 종말을 내릴 수 있는 자유를 달라는 듯이.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몰과 자이툰 파스타'는 동성애자들이 겪어야하는 암울한 현실을 그려냈던
기존 작품들에 머물지 않고, 그들의 시각에서 발생하는 현실의 무기력감과 실패의 연속을 아무렇지 않게
담담히 그려냈다는 점이 좋았다. 이러한 시도는 앞으로 우리가 현실에서 익숙해져야 할 단계라는 듯이
말하는 것 같았다. 소수의 행복도 우리는 인정해 줘야 한다는데 할 말이 없었다.
나 역시 이 소설을 읽고 퀴어문화와 동성애자의 시각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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