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_ 김훈. 엄마가 뽑은 베스트셀러






"애초에 화친하자는 명길의 말을 쓰지 않아서 산성으로 쫓겨오는 지경이 되었다고들 하면서,
이제 명길을 죽여서 성을 지키자고 하니 듣기에 괴이하다."



본문 中



이번에는 책보다 '남한산성' 이란 영화를 케이블 TV를 통해 먼저 접하게 되었다. 영화도 늦게 본 셈이었는 데,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는내내 어서 책을 사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죄책감처럼 들었던 것 같다.
영화는 감독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원작과의 괴리감을 많이 접한 경험 때문이었다.

우려와는 달리 영화는 충분히 병자호란 당시의 조선의 치욕을 잘 보여줬다고 본다.
연기력이 입증되는 이병헌과 김윤석이 나온다. 두 주인공 이병헌(최명길)과 김상헌(김윤석)의 실감나는 대립은
당시의 역사 속으로 한껏 몰입하게 해준다. 그러고보니 예전 <광해>란 영화도 참 인상깊게 본 기억이 난다.
영화만 본 사람들이라면 영화 <광해> 이후 인조반정을 이끈 명나라 추종자들이 시대판단을 못한 채 힘의 강국에
밀려 치욕을 겪었던 시기가 영화로 재연되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광해>역을 훌륭히 연기했던 이병헌이 이번 <남한산성>에산 최명길(이조판서)로 나온다.
어차피 역사극은 조선왕조실록과 야서등을 접합하여 살을 붙여 탄생하기 때문에 큰 틀에선 문제가 될 게 없다고 본다.

조선은 정묘호란 이후 후금과 강제적인 형제의 맹약을 맺게 되지만, 이후 청은 군신관계를 요구하며 10여만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무서운 속도로 침략하게 된다. 다급해진 조선의 임금(인조)과 신하들은 궁을 버리고 남한산성으로
은신을 하게 되고, 독안에 든 쥐 꼴이 된 무기력한 인조는 조정에서 살길을 찾으려 하지만 주화파와 척화파의 대립으로
혼란한 조정 속에서 47일을 보내다 급기야 청에게 굴복하는 결정을 내리고야 만다는 내용이다.

최명길(주화파)는 '죽음은 견딜 수 없으나 치욕은 견딜 수 있다'고 주장하는 쪽이고, 김상헌(척화파)는 후금을 배척해
끝까지 항전하고 죽음으로 살길을 찾자는 주장을 한다. 김상헌은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그 삶은 죽음을
통해서 온다고 믿는 쪽이다. 하지만 임금은 결국 '나는 살고 싶다'를 외치며 항복을 결정한다.
임금의 최종결정에는 백성들의 곤함을 더이상 견디게 하기 힘들었고, 최명길의 훗날을 도모하자는 주장이 합당하다고
판단된 것이리라. 결론적으로 영화는 소설의 근간을 흔들지 않고 성실히 수행해냈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항복하고 끝이난다. 영화와 소설은 무엇을 얘기하려 했던 것일까.
단지 김상헌과 최명길의 흥미로운 대립을 보여주려 했던 것일까.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것인가를 물어본 것인가.
그렇다면 누구의 신념이 진정으로 살 길이었는가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한다.

정치는 흔히 생물이라고 표현한다. 정치적 상황의 역동성있게 변화를 정확히 꽤뚫고 적용해 살아 움직이기 때문이다.
최명길은 인조를 추대한 인조반정의 공신이었다. 명나라와의 관계를 중시했던 신하였다는 뜻이다. 그런 그가 청을
추종해야 한다는 주화파로 변한다. 그가 변절자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삶은 죽어서 신념을 지키기보다 현실적 시각을 놓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김상헌의 성격과 소신은
사대부정신으로 훌륭했다. 후견지명처럼 시대적 판단의 오류로 그를 미워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그 이유는 김상헌과 최명길의 대립의 근저에는 '백성' 있었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점은 그러한 치욕을 겪고 난 후의 인조와 조정의 행동들이다. 저자 김훈은 부록 '못다 한 말'에서 항복이후
청으로 끌려간 소현세자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여준다. (아래 인용문 참조)


홍승주(명나라의 명장明將)는 조선 임금이 삼전도에서 항복할 때처럼 청나라의 푸른 군복을 입고 나와서
황제(홍타이지)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이마를 땅에 찧었다. 그때 소현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는 짐작할 수있다.
소현은 이 세계를 지배하는 청의 실체를 확인했을 것이고, 세계를 문명 대 야만의 대립으로 이해하는 인식의 틀에서
돌연 벗어나기 시작했을 것이다.
명(明)은 하늘이 아니고, 대통(大統)이 아니고, 문명과 규범의 원천이 아니었다. 명은 더 큰 세력 앞에서 무너져야 할
하나의 거대한 힘에 불과했다.
그리고 세자는 삼전도에서 이마를 땅에 찧으며 홍타이지에게 투항하던 부왕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때, 이 자비 없는 세계의 질서 앞에서 약소국의 세자는 얼마나 괴롭고 외로웠으랴.



소현세자는 청에서 돌아와 얼마되지 않아 돌연 죽게된다. 사인도 밝히지 않은 채 인조는 급하게 장례를 치뤘다고 한다.
독살설이 강하게 의심되는 대목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조정의 신료들의 수많은 의심과 간언으로 임금의 판단이
흐려졌을거라 생각을 안할 수 없다.
소현세자가 돌아올 동안 조선은 그 뼈아픈 치욕을 겪고서도 자국의 국력을 키우는 데 힘쓰지 않았던 것이다. 소현세자가
청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외교적 노력을 십분 활용하기는 커녕 자신들의 안위와 명분을 지키고자 우물안 개구리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지금의 국회의원들은 이 책을 필독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모든 그들의 권력은 국민들이 부여했음을 명심하길 바란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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