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평등은 아직 멀었다_82년생 김지영. 책읽는 방(국내)







기획팀 인력 구성은 전적으로 대표의 뜻이었다고 한다. 일 잘하는 과장급이 선발된 이유는 기획팀이
자리를 잘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표는 업무 강도와 특성상 일과 결혼 생활, 특히 육아를 병행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여직원들을 오래갈 동료로 여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사회 복지에 힘쓸 계획은 없다. 못 버틸 직원이 버틸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보다,
버틸 직원을 더 키우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게 대표의 판단이다.
(중략)
김지영 씨는 미로 한가운데 선 기분이었다. 성실하고 차분하게 출구를 찾고 있는데 애초부터
출구가 없었다고 한다.


본문 中



1982년에 태어난 여자 중 가장 많이 출생신고를 한 이름이 '지영'이라고 한다. 다분히 의도적인 표제로 선택한
소설 '82년생 김지영' 은 결국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30대 여성의 삶을 다룬 현재진행형 이야기라 하겠다.

나는 출생년도가 책 속에서 나오면 습관적으로 내 나이와 비교하며 읽곤 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나와 16년 차이를 두고 출생한 삶을 다루고 있어 더 애정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가장 근접한 시대를 다룬 소설인만큼 팩트와 소설을 어떻게 소화시켰을까 궁금했는데, 결론적으로 저자 조남주씨는
시사 교양프로그램에서 10년간 방송작가를 경험삼아 얻은 정보와 통계를 바탕으로 영리하게 잘 쓴 것 같다.

소설은 마치 보고서 형식처럼 연대기로 주인공 '김지영'씨의 초등학교 시절, 중.고등학교 시절, 대학교 시절과
이후 직장생활과 결혼, 육아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에피소드들을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있었다.
소설의 내용들 대부분은 실감나게 사실적이었고, 사회면 뉴스에서 접했던 기억 속의 정보들과 매치시키면서
소설의 몰입도를 증가시켰다. 잊었던 기억과 체험을 동시에 소환했다랄까.
읽으면서 내내 안타까웠던 점은 지영씨의 1982년 삶이나 내 삶이나, 여성의 삶은 진보된게 없다는 점이었다.

소설은 멀쩡하던 아내 김지영씨가 어느 날 갑자기, 장모님으로 빙의 하거나 오래전에 헤어진 여자의 말투를 따라하는
등. 남편의 의해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면서 시작된다. 의사는 육아스트레스에서 오는 해리장애증상으로 의심한다.
그렇다고 지영씨가 치료를 받고 정상으로 돌아갔다거나, 악화되었다는 것이 이 소설의 결론이 아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30대 여성들이(사회적으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할 나이대의 여성들이) 아직도 양성평등의 제도에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육아에 대한 책임과 그로 인한 사회적 유폐라는 문제점을 심각하게 다뤘다는 것이다.

취업의 문이 갈수록 좁아져 여성은 물론이고 남자들도 취업이 하늘의 별따기처럼 여겨지는 요즘 취직하기까지의
불평등은 제쳐두더라도, 취업 후 조직내에서 겪는 불평등한 사례는 억울한 점이 많다.
능력이 우수한 여성으로 인정을 받는다 하더라도 종국에는 새로운 프로젝트나 버틸직원에서 배제당하는 수난을
겪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위 인용문 참조)

인용문을 읽을 때는 참 속상했다. 모양만 다를 뿐 직장생활을 오래한 나도 수없이 겼었던 사례와 유사했다.
또한 여자들은 능력외에 치열하고 모욕적인 감정적 처우도 이겨내야 버틸 수 있다.

예를들어, 회사가 존폐기로에 있다는 전제로 최소한의 인원만 꾸려가야하는 상황이 온다면 인사팀장은 보나마다
아무리 능력있는 여직원이라 할지라도 구조조정 명단에 올린다. 그 사유는 가정을 책임(생계부양자)지는 것은
남자라는 사고와 함께 여자는 집에서 살림이나 하면 된다는 고정관념도 하나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소설에서(아니 지금의 현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영씨는 임신과 함께 육아의 부담을 혼자 갖고 퇴직을 한다.
이렇게 우수했던 여성들의 경력단절이 출산과 함께 시작되는 것이다. 
 어찌어찌하여 육아휴직후 복귀하는 여성들이 있더라도 그 비중은 턱없이 적고, 고위직 승진은 유리천장이 가로막혀
현실을 깨닫기까지 얼마 걸리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조직의 근본틀에는 일은 '남성들의 사회'라는 의식이 깨지지 않는다면 영원히 극복하지 못할거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엄마가 된 당사자인 여성들에게 출산은 축복일까.
불행히도 그녀들은 엄마와 아내, 여자의 갈림길에서 정체성을 못찾는게 현실이다.
(아래 인용문 참조)


엄마가 되면서 개인적 관계들이 끊어지고 사회로부터 배재돼 가정에 유폐된다. 
게다가 아이를 위한 것들만 허락된다.
아이를 위해 시간. 감정. 에너지. 돈을 써야 하고, 아이를 매개로한 인간관계를 맺어야 한다.
엄마가 아닌 자신을 드러내면 엄마의 자격을 의심 받는다.
타인에 대한 돌봄이 사라진 시대에 거의 유일하게 타인을 돌보고 있는 존재인 엄마가 남편이 힘들게 벌어온
돈으로 카페나 다니면서 자기 아이만 위하는 '이기적인 벌레'라고 손가락질 받는 것이다.
여성혐오 시대에 '모성애라는 종교'조차 침탈되는 양상이다. 모성에 대한 신성시도, 맘충이라는 혐오도 여성을
옭아맬 뿐이다. 그러니 어떻게 '나'를 온전히 지킬 수 있겠는가.




소설을 여성들만 읽을리는 없을 테니, 이쯤에서 모든 독자들은 한번 고민을 진지하게 해봤으면 한다.
맞벌이를 하는 남편이라면 아내에게만 '독박육아'를 맡길 것인지,
유능한 여성인재가 육아를 위해 할수없이 퇴직을 하는 게 어쩔 수 없다고만 치부할 것인지,
정부기관은 그저 지원금만 늘려서 될 일인지..

또한 나는 남녀차별을 소리없이 견디며 더디게 변화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또다른 김지영씨들에게 주문하고 싶다.
불평등한 일이 있거들랑 참지말고 '개선해 달라'고 외치라고.
그리고 남자들보다 좀더 일하고, 좀더 공부해서 내치기엔 너무나 아까운 인재로 자리매김해 달라고.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그래야 조금씩조금씩 여성의 불평등의 시간들이 좁혀질 것이라고.











덧글

  • 우굴루수 2017/09/21 11:50 # 삭제 답글

    그리고 남자들보다 좀더 일하고, 좀더 공부해서 내치기엔 너무나 아까운 인재로 자리매김해 달라고.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그래야 조금씩조금씩 여성의 불평등의 시간들이 좁혀질 것이라고.
    --> 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은연중에 인정하시는 건가요? 말씀 뉘앙스는 그렇네요. 그럼 만약 여성들이 이를 원치않는다면요?
  • 김정수 2017/09/21 12:54 #

    우리나라 여성이 남성과의 임금격차가 OECD 회원국 중 가장 크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지요.
    무려 37% 가까이 된다고 해요. 고학력 일자리가 부족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죠.
    그 원인 중에 하나가 육아에 대한 책임을 여성이 대부분 차지하면서부터 시작되고 있고
    그로인한 경력단절은 고용시장에서 재취업시 임금책정에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봅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조직은 남성중심사회기 때문에 여성이 참여하고 능력을 인정받아도 억압된 사회적관념에서
    해방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봐요. 살아남고 버티기 위해서는 그만큼 더 노력하고 자기권리를 주장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슬프지만 이게 현실이죠.

    그렇지 않은 조직에서 근무하고 있다면 해피한 겁니다. ^^
  • 아스파 2017/09/21 17:58 # 삭제 답글

    남녀 임금 차이라...
    http://m.fmkorea.com/best/737661307

    이런게 있죠
  • 김정수 2017/09/22 11:44 #

    일과 육아를 완벽히 병행하기란 쉬운일이 아니라 생각해요.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나약한 여성이라는 외면에 숨지도 말고,
    자기일을 포기하지도 않았음 하는 의도입니다.
  • 미미 2018/02/02 14:52 # 삭제 답글

    양성평등을 성평등으로 고치는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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