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단장 죽이기_무라카미 하루키. 책읽는 방(국외)










"제군은 나를 그 구덩이에서 꺼냈네. 그리고 지금, 제군은 나를 죽여야 해.
안 그러면 고리가 닫히지 않거든
열린 고리는 어딘가에서 닫혀야 하는 법이네. 다른 선택지는 없네."



본문 中




이 소설은 한마디로 현실세계와 비현실(판타지)을 오가며 실감나게 안내하는 하루키 특유의 문체가
살아있는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1Q84'로 아쉬웠던 소설의 갈증을 해소해줬다랄까.
그만이 쓸 수 있고, 그의 독자들만이 눈치챌 수 있었던 수많은 요소들이 이 소설책 안에 녹아 있었다.
그동안 그의 소설들 속의 주인공들(문학적 소양이 뛰어나고 쿨한 성격), 환경, 사고들 등의 유사성이 많았다.
그래서 읽으면서 조금 흥분되었던 것 같다. 자, 이제 책 속으로 떠나볼까.. 하는 기분?

소설 속 주인공은 화가로써 6년간 별탈없이 잘 살던 아내에게서 갑자기 이별 통보를 받게 된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따지고 싸워도 시원찬을 판에 주인공 '나'는 자신의 낡은 푸조205 차에 옷 몇가지를 실고 바로 집을 나와 버린다.
주인공은 '36세 젊은 화가'다. 본인은 먹고살기 위해 할 수 없이 초상화를 그린다 생각하지만 타인들이 보는
그의 실력은 남다르다. 대상의 핵심으로 곧장 파고들어 그안의 것을 집어내는 직관이 있다는 것.
그것을 초능력이라 말해도 좋을 것 같다. 그런 능력은 누구에게나 있는 게 아니다.

어찌되었든 이혼선고에 충격으로 9개월간 홀로여행을 하다 친구의 아버지(일본의 저명한 화가)가 반생을 보내다
요양소로 가 빈 집이 된 오다와라 교외 산속에 기거하게 되면서 이 소설의 환상적인 경험이 펼쳐진다.
친구의 아버지는 현재 치매로 죽음의 경계에서 버티고 있다. 세상과의 단절된 듯한 산 속의 늙은 화가집에는
턴테이블로 들을 수 있는 클래식과 오페라가 가득하다. 주인공은 우연히 다락방에서 회화 한 점을 발견한다.
그는 얼마되지 않아 LP판 '장미의 기사'에서 착안된 그림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림의 제목도 '기사단장 죽이기'다.

이 그림과 등장의 과정은 이 소설의 시작을 알려주고 결론을 알려주는 매개체라 볼 수 있다.
하루키씨는 그림의 설명에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인다.

두 남자가 묵직한 고대의 검을 들고 싸우는 장면인데, 한 쪽은 청년, 다른 한쪽은 노인이다. 청년이 노인의 가슴
한복판에 검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이 그림은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의 등장인물들을 그린 것이다.
특이한 점은 그림 하단에 네모 구덩이에서 삐죽이 긴 얼굴(메타포)을 반쯤 내민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림을 그린 '아마다 도모히코'는 발표된 그림들을 살펴봐도 이렇게 난폭한 성격의 회화를 그린 적이 없다.
그러니까 미공개 작품인 것. 그리고 그는 이 그림을 밀봉한 채 다락방 깊숙히 숨겨 놓았다. 주인공 '나'는 대상의
핵심을 파고들어 그 안의 것을 끄집어 내는 능력자로써 이 그림이 결코 평범한 그림이 아님을 직관하게 된다.

그가 기거하는 주변 산속 주변에는 기묘한 일들과 평범치 않은 사건들이 이어진다.
새벽 두시경마다 정확히 산속에서 울리는 방울소리. 이 방울의 주인은 이데아의 헌신인 '기사단장'이다.
또 계곡을 사이에 둔 맞은 편 집 '멘시키'라는 백발의 젊은 사업가가 등장한다. 멘시키씨가 자신의 딸일지도 모르는
아이를 보고싶어 맞은편에 화려한 집을 장만하고 사는 모습은 흡사 '위대한 개츠비'를 떠오르게 한다.
이는 하루키씨가 인터뷰에서도 착안했던 부분이라고 고백했다. 사실 소설의 설정은 인용 부분이 많다고 한다.
밤중의 방울소리와 방울이 있던 구덩이의 설정은 우에다 아키나리의 '이세의 인연'이라는 이야기에서 모티프를
삼았다 한다.

사람에겐 누구나 넘어야 할, 또는 정리되어야 할 '이데아'가 있다. 시간이 약이고 망각된다고 착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다른 심리적 모습, 또는 새로운 형태로 자신의 앞을 가로 막는 것이다.

젊은 화가 '나'에게는 어린시절 잃은 13세 여동생이 있다. 심장판막증으로 죽음이 예견되었지만 그렇더라도 죽음은
남은 사람들에게 죄책감과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지켜줘야 할 동생은 아내로, 행방불명된 멘시키의 딸 '마리에'를
찾아야 할 두려움으로 전이되는 것이다.

치매화가 '아마다 도모히코'는 젊은 시절 빈에서 사귄 연인이 나치의 손에 무참히 살해당하게 된다. 그 또한 심한 고문을
받았지만 정치적 배려로 살아남아 귀국하게 된다. 그리고 친동생도 전쟁 트라우마로 젊은 나이에 자살을 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지 못한 사람의 아픔, 치욕, 괴로움은 상대에 대한 분노와 더불어 자신의 나약함과 무력감에
치를 떨게 하는 것이다.

치매화가가 그린 '기사단장 죽이기' 그림은 현실에서는 해내지 못했던 일을 그림 속에서 형태를 바꾸어, 실현한 것이다.
주인공 '나'는 아마다 도모히코(치매화가)의 그림 속 기사단장이 이데아로 소환되었고 자신의 '이데아' 를 죽임으로써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인용문 참조)


흥미로운 소재와 설정으로 소설 깊숙히 빠져 들만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마다 도모히코처럼 다락방 깊숙히 숨겨놓은 이데아는 없는가..
없다면 잘 살아 온 것이겠지.

하루키 팬이라면 이 여름이 가기전에 읽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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