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약속. 엄마가 읽는 시









오늘의 약속


- 나태주


덩치 큰 이야기, 무거운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해요
조그만 이야기, 가벼운 이야기만 하기로 해요
아침에 일어나 낯선 새 한마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든지
길을 가다 담장 너머 아이들 떠들며 노는 소리가 들려 잠시 발을 멈췄다든지
미매 소리가 하늘 속으로 강물을 만들며 흘러가는 것을 문득 느꼈다든지
그런 이야기들만 하기로 해요

남의 이야기, 세상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해요
우리들의 이야기, 서로의 이야기만 하기로 해요
지나간 밤 쉽게 잠이 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든지
하루 종일 보고픈 마음이 떠나지 않아 가슴이 뻐근했다든지
모처럼 개인 밤하늘 사이로 별하나 찾아내어 숨겨놓은 소원을 빌었다든지
그런 이야기들만 하기로 해요

실은 우리들 이야기만 하기에도 시간이 많지 않은걸 우리는 잘 알아요
그래요, 우리 멀리 떨어져 살면서도
오래 헤어져 살면서도
스스로 행복해 지기로 해요. 그게 오늘의 약속이에요.





..



행복은 아주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경험이라고 한다.
내가 직접 체험한 그 것. 함께 맛있게 먹었던 그 공간에서 웃었던 시간들이다.
만약 지금 내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한가한 시간의 연속이라면 그 또한 행복이다.
한가로운 시간은 자아없이 일상에 쫓기는 사람에겐 최상의 휴식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모시고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니고 있다.
예전같지 않은 당신의 체력과 신체를 호소하시고 정상으로 돌려달라고 외치신다.
부양하는 나는 힘들고 슬프다.
병마와 힘겹게 싸우는 신체와 노화와 중력이란 불가항적 진행을 받아 드리기 힘든 현실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슬픔 속에 갇혀, 현재 가족들과 웃으며 지낼 수 있는 시간들을 하루하루 잃어간다.


나는 자잘자잘하면서도 따지기 쉬운 가벼운 얘기들로 일상을 채우고 싶은 데,
이 작은 소망도, 이 작은 약속도 하기 힘든 현실이..
참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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