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국가는 지혜와 윤리적 결단의 산물이다_국가란 무엇인가. 책읽는 방(국내)








"이게 나라냐!" "이것이 국가란 말인가?"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요구한 시민들은 그렇게 물었다.
이것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국가운영 시스템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이 무너진 현실에 대한 개탄이었다.
(중략)
우리는 왕을 내쫓고 신분제도를 뒤엎는 민주주의 혁명을 한 적이 없다. 그게 무엇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민주공화국을 세운 다음에야 민주주의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배우고 경험을 쌓았다.
역사는 귀한 것을 거저 주는 법이 없다. 남들이 민주주의를 세우기 위해 치렀던 희생과 비용을 우리는
민주공화국을 세운 후 오랜 세월 동안 치러야 했다.
나는 2009년에 낸 책에서 이것을 가리켜 '후불제민주주의'라고 한 적이 있다.




- 본문 中


지난 해 10월말부터 온 국민을 충격에 휩싸이게 만든 '최순실 국정농단사태'는 시민으로써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그리고 160만명 촛불개혁을 외치는 시민들의 요구에 의해 결국
2017년 3월 10일, 박근혜대통령은 파면됐다. 헌재의 탄핵 판결요지는 헌법수호의지가 없었다는 사유였다.
이번 판결에서 시사하는 것은 법치주의(法治主義)에 대한 명확한 구획이었고, 권력을 쥔 사람들에게
법에 근거하여 통치, 관리해야 함을 분명히 확인시켜 준 사건이었다. 헌법과 법률이 그에게 위임한 권한의
범위를 넘어선 권력을 행사하지 말라는 것. 이는 루소의 법치주의 주장에 해당된다.

이번 탄핵은 정의는 강자의 것으로만 인식되었던 시민들에게 고무되었고, 여기서 멈추지 않고 민주공화국의
질서와 운영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정치인들에 대해 연대적 질책과 요구가 이어졌다.
나는 이런 결과의 시초는 지난 해 4.13 총선결과에서 보여준 시민들의 의지가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2009년 직업정치인 당시 출간한 책의 개정판으로써, 저자가 전업작가로 돌아온 뒤 탄핵사태라는
촛불시민혁명에 발맞춰 수많은 시민들이 질문했던 '국가관'에 대하여 초판을 다듬어 출간했다.
그는 작가로써, 시민으로써 정치를 떠난 뒤, 방송매체나 책으로 진보정치가 지향해야 할 이론을 명쾌하게 전달해주고 있다.

저자는 선거때만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나름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지도자를 선출하는 것만으로 시민의 권리를
다했다 생각하고서, 지도자의 권력을 방치하면 안된다고 일깨운다. 훌륭한 국가를 만드는 것은 주권자인 시민들의
힘으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주권자로써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와 의무를 수행하고 공동체의 선을 이루기 위해
타인과 연대하고 행동할 줄 알아야 진정 훌륭한 국가를 완성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이 책은 시민으로써 알아야 할 국가관은 무엇인지 되짚어 보는 시간이라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았다.

이 책은 동서고금의 저명한 철학자와 이론가들의 국가론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이해하기 쉽게 서술하고 있어서,
현재 우리가 당면한 정치현실은 물론이고 시대적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또한 이번 독서로 소득이었던 점은 나와 다른 정치적, 국가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에 대하여 이해하게 된 점이랄까.
그것은 현재 합일점을 찾아가려 노력하는 보수, 진보의 점진적 변화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 노력 중 하나가
JTBC 이슈 리뷰 토크쇼인 정치썰전에 '전원책'과 '유시민'의 역할도 작용했다 본다.

어떤 국가론 가지고 통치를 하느냐에 따라 크게 국가주의 국가관, 자유주의 국가관, 마르크스주의 국가관으로
나뉜다. 책은 국가론에 대한 고전적 담론을 기본적으로 펼쳐주고 있어서 더 깊게 공부를 하고싶은 사람들을
위한 출처를 미주로 남겨놓고 있다. 읽다보면 저자의 박식함에 존경심이 절로 나온다.

국가주의 국가관을 가진 사람들은 국가가 내부의 질서를 지키며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국가가 개인에 우선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이 철학적으로는 홉스를
통치기술로는 마키아벨리를 추종했다. 홉스는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전제군주제를 이상적인 국가형태로 보았고
주권자 또는 통치권자에 대항하면 국가의 목적 수행을 방해하게 된다 여겼다.
마키아벨리의 국가주의 국가론은 국가의 목적을 오직 하나로 규정한다. 사회 내부의 무질서와 범죄, 그리고
외부 침략의 위협에서 인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른 모든 가치를 희생시킬 수
있으며 어떤 수단이든 다 쓸 수 있다고 봤다.

자유주의 국가관을 지닌 사람들은 국가의 역할은 최소한으로 제한되며, 국가가 개인을 위해 복무한다고 말한다.
마르크스주의 국가관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국가란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구에 불과하므로
정치과정은 무의미하며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만이 해답이라고 설파한다.

마르크스의 견해에 따르면 사유재산이 발생하고 계급이 형성된 이래 국가의 본질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부르주아지도 처음부터 지배계급이 아니고 봉건 영주의 지배 아래인 피억압자의 신분이었다.
공장제 수공업 시대 군주국에서는 귀족에 대항하는 균형 세력이었고, 대공업과 세계시장이 세워진 이후에야
비로소 국가의 정치적 지배권을 쟁취했다. 현재의 국가권력은 부르주아계급 전체의 공동 업무를 처리하는
위원회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대부분의 선진국 사회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두 개의 기둥이 떠받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유효한 국가관은 아마 자유주의 국가관일 것이다. 하지만 자유주의 가치관이 국가주의나
진보주의자들이 중시하는 가치관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치는 않는다. 하나의 사회 안에서 똑같이 존중받으며
공존해야 민주주의 사회가 실현되리라 믿는다. 우리나라 헌법조항은 그 부분을 갖춰져 있고 그대로 지키면 된다.

그리고 저자는 애국심에 대하여도 다루고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애국심은 어떤 것인가 질문하게 되었다.
'박근혜 탄핵무효'를 외치는 사람들은, 흔드는 태극기 속에 애국심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애국심에 대한 정의는 고전적으로도 많은 철학자의 주장이 있었다.
톨스토이는 애국심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전쟁과 갈등이 있었으므로 애국심에 대한 회의를 보였고,
피히테는 유한한 개인과 달리 국가와 민족은 영원히 지속되기 때문에 애국심을 갖아야 한다고 설파했다.
박정희대통령은 피히테의 주장을 이어받아 '국민교육헌장'을 전국민들에게 외우게 했다.

하지만 저자는 적절한 답을 찾아준다.
르낭의 견해에 따르면 애국심은 '국가라는 하나의 공동체에 함께 귀속되어 훌륭한 삶을 영위하고 공동의 선을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라고 했다. 애국심은 배타적인 사랑의 감정이란 뜻이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국민의 4대 의무(국방, 교육, 근로, 납세)를 지키며 살고 있다.
나는 기본을 지키며 살고 있는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미 애국자라 생각한다. 시민은 민주공화국의 질서를 지키며 살고 있다.
나는 지난 총선(4.13선거)을 통해 지혜로운 판단을 할 줄 아는 시민의식을 확인했다.
훌륭한 국가는 우연과 행운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혜와 윤리적 결단으로 만들어 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조기대선에 책임질 줄 아는 시민의 권리로 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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