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5천원의 기억. 일상 얘기들..





요즘은 형제간 결혼순서를 따지지 않지만 나때만 해도 동생이 먼저 결혼을 하는 건 드물었다.
연애를 하더라도 대부분 순서를 기다렸고, 위로 결혼을 했더라도 한 두해 참았다가 텀을 두고 했던 것 같다.
나 역시 세 살위 언니가 있으니 당연히 그럴 생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골에서 고생하는 아들 보겠다고 모처럼 현재의 시어머님이 서울로 상경하셨고 인사를 드렸는데,
얼마 되지않아 우리부모님을 뵙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그런데 그자리에서 바로 결혼날짜가 잡혀 버렸다.

너무나 빠르게 진행된 결혼이었다.
언니보다 먼저 가고싶어 안달난 딸로 낙인된 나는 엄마의 괘씸죄에 걸렸고, 결혼식만 올려준다는 선전포고를 듣고야 말았다.
집안사정이 안좋아 적은 월급이었지만 버스비만 제외하고 모두 부모님께 상납(?)했던터라 내 수중엔 한푼도 없었다.

막상 결혼하니 막막했다. 결혼축의금 얼마라도 내게 주실줄 알았는데 엄마는 냉정했다.
남편도 거지였다.
홀로된 어머님 부담을 주기 싫다고 가계수표를 끊어 결혼을 한 덕에 결혼하자마자 빚으로 허덕였다.
왜 결혼했나 싶은 생각이 들어 눈물이 떨어졌다.

아침은 생각이 없다며 서로 생략했고, 퇴근할 때면 저녁은 알아서 해결하고 퇴근한다며 서로 거짓말을 했다.
그런데 휴일이 문제였다.
남편 몰래 토요일 오후, 친정집에 들려 엄마에게 '돈 좀 빌려주세요' 라고 말을 했다.
엄마는 그 당시 1만 5천원 밖에 없다시며 찾아간 딸 등을 냉정하게 문 밖으로 미셨다.

시흥동에서 독산동까지 1만 5천원을 손에 꽉 쥐고 울면서 걸어왔다.
그리고 그 돈으로 시장을 봤다.

당시는 어려서 힘들 때마다 의지할 곳이 없는 내처지가 한심해 많이 우울했다.
엄마가 정말 당시 1만 5천원밖에 없었는지.. 다시 찾아갔다면 따뜻하게 맞이 해주셨을지 모르겠지만..
자존심 때문에 확인해 보지 않았다.

하지만 난 친정엄마를 미워하지 않는다.
엄마는 가족 누구에게라도 의지하지 말라는 교훈과 함께 인생은 스스로 개척해가야 한다는 잊지못할 기억을
선물해 주셨기 때문이다.







덧글

  • 명품추리닝 2017/02/07 03:22 # 답글

    에휴... 넘 서러우셨겠어요. 그리고 더 나은 인간, 따뜻한 엄마로 성장하신 김정수 님께 존경을 표합니다.
  • 김정수 2017/02/07 08:14 #

    당시엔 섭섭한 마음이 있었지만 마음의 상처를 담아두지 않고 좋은 잊지못할 경험으로
    생각하기로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세월이 흘러 엄마가 되보니 친정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마음도 생겼고요.^^
  • 열매맺는나무 2017/02/10 18:21 # 삭제 답글

    에궁... 딸로서 생각하니 참 야속하고 코끝이 찡합니다. 너무너무 힘드셨겠다 싶구요.
    또 한편 엄마 입장에서 생각하니 어머니 속은 또 어땠을까 싶기도 합니다.
  • 김정수 2017/02/13 09:44 #

    그때는 어려서 자존심에 힘든 것도 참았지 싶습니다. ㅋㅋ
    어쩌면 청춘의 힘이기도 했구요.
    지금은 가족이라는 관계의 힘으로 다 극복한 이야기가 되었네요. 문득 떠올라서 써본 글이예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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