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의 기술. 일상 얘기들..






호구 되기 싫은 당신을 위한 ‘거절의 기술’

..........................................................


“NO!”라고 말해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



마음은 '노'를 외치는데 자기도 모르게 '예스'를 말하고 있다면, 거절의 기술을 배울 필요가 있다. 일러스트 신동준 기자


회사원 강모(42)씨는 20여 년 전 ‘도를 아십니까?’ 묻는 길거리의 이단종교 청년을 따라 본부 사무실까지 끌려간 ‘흑역사’가 있다.

“조상의 음덕이 많은 얼굴”이라며 접근한 청년이 “세상의 이치에 대해 들려줄 테니 잠깐만 시간을 좀 내보라”고 했을 때, 강씨의 내면에선 이단이라는 뚜렷한 두 글자가 떠올랐다. 하지만 막상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아, 저, 그게…, 그럼 잠깐만…”이었다. 한참을 걸어가 도착한 사무실. “세상의 진리를 거저 들을 수 있냐”며 “성의 표시 차원에서 돈을 좀 내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야 그는 “다음에…”를 반복하며 가까스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상사의 황당한 지시에도, 부하직원의 어이없는 도발에도 여전히 “좋습니다” “괜찮아”가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강씨는 “노(No)”라고 거절하지 못하는 자신의 습벽을 고치고 싶어한다. 하지만 평생을 일관해온 그의 ‘예스병’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미움 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은 예스와 노의 갈림길에서 자꾸 예스로 발길을 떠민다.

주말 업무를 대신 처리해 달라는 회사 선배에게, 여름이면 해마다 휴가를 함께 가자는 시댁 식구들에게, 갚지도 않는 돈을 수시로 빌려달라는 친구에게, 오늘도 마음의 도로를 역주행 하며 ‘좋아요’를 외쳤다. 왜 그랬을까 자책하고 후회하다 보면 어김없이 밀려드는 감정은 ‘나는 호구인가’ 하는 자괴감. ‘싫으면 싫다고 왜 말을 못해!’는 그저 독백 처리될 뿐이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영화 속 대사는 희대의 명대사가 됐고, 인터넷 커뮤니티마다 ‘이런 저, 호구인가요?’를 묻는 질문과 ‘님, 호구 맞습니다’ 꾸짖는 댓글이 폭주한다. ‘탈(脫) 호구’가 거의 ‘시대정신’화(化)한 시대다.


우리는 왜 싫으면서도 거절하지 못하는 걸까.

전문가들은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심리 기저엔 두려움이 있다고 말한다. 이기적으로 보일까봐, 다른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할까봐, 갈등 상황에 놓일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에 거절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노라고 말하는 250가지 방법’의 저자인 미국 사회심리학자 수전 뉴먼 박사는 “항상 남의 비위를 맞추는 피플플리저(people pleaser)들은 외부의 승인으로부터 안정감과 자신감을 추구한다”며 “사람들이 자신을 게으르거나 인정머리 없거나 이기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미움 받거나 왕따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싫다’고 거절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 두려움은 사랑 받고 싶다는 욕망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사실 남을 도와 사랑 받고 싶은 이 착한 마음에는 죄가 없다. 자기보다 타인의 요구를 우선순위에 두는 사람들을 호구로 인식하고 알뜰하게 착취하는 사람들이 문제지, ‘호구가 진상을 만든다’며 피해자를 탓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인간이 언제고 선량하기만 한 존재였던가. 타자의 욕구 틀에 자신을 맞추며 스스로를 감옥에 가둔 예스맨들은 서글프지만 성악설을 수긍하며 탈출의 기술을 연마할 필요가 있다.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나 있지만 한국에는 한국만의 특수성이 있다. 지난해 최대 베스트셀러 서적 ‘미움 받을 용기’를 비롯해 ‘탈호구’ 담론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가 된 것은 그만큼 호구가 될 수밖에 없는 강압적 사회 환경이 선행한다는 뜻이다. 최근 ‘나는 왜 싫다는 말을 못 할까’(위즈덤하우스)를 낸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는 그 원인으로 "한국의 유교문화와 집단주의 문화”를 지적했다. “어린 시절 가정에서 부모에게 ‘노’라고 못하고 자라온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문화의 "어른 말은 따라야 한다"라든지 효도 콤플렉스와도 관련이 있죠. 부모에게 ‘노’라고 못하고 자란 아이는, 결국 학교나 직장에 가서도 선생님이나 상사에게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말하기 힘들어지고, 심지어 그들이 자신의 안전을 위협할 때마저도 ‘노’라고 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부모의 말에 무조건 순응하는 아이를 ‘우리 아들/딸 착하지’라는 달콤한 말로 독려하면, 아이는 부모의 승인을 얻기 위해 원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예스”를 말하며 점차 이에 중독되는 경향이 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데이비드 케슬러는 책 ‘인생수업’에서 “많은 부모가 자녀로부터 거절당하면 불행해하지만 아이들이 적절한 시기에 ‘아니오’라고 말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멋진 일”이라고 강조했다.


자기 자신보다 남을 기쁘게 하는 데 초점을 두는 행위는 냉정하게 말해 착취나 학대를 향해 자신을 열어놓는 것이다. 항상 외부의 평가를 갈구하고, 그러다 보면 사고와 행위의 주체가 나 아닌 남이 되며, 결국 자기확산감과 자존감은 결여되고 만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다 보면 최초의 선한 마음은 마침내 자기 자신에게도 해악을 끼치게 된다. 자신의 한정된 에너지 자원을 착취하고 고갈시키는 과정에서 우울감을 느끼고, 분노, 울화, 심지어는 자기혐오에까지 이를 수 있다. 원치 않는 예스를 남발하는 과정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역치를 넘어서면 극단적으로 관계 단절을 감행하며 상대방을 당황케 하기도 한다.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을 땐 작은 것부터 부드럽게 거절해보는 게 좋다.

성장기 내내 ‘아니오’를 말해본 적 없는 사람에게 ‘노’라고 ‘단호박’처럼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처음부터 샘솟지 않는다. 법으로 보장된 휴가에 회의를 잡는 상사에게, 한밤 중 연락해 당장 일을 처리해달라는 고객사에 ‘단호박’으로 대응하는 것이 꼭 좋은 방식도 아니다. 거절의 목적은 거절을 하는 것이지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내 성질을 보여주거나 그의 논리가 틀렸음을 만방에 선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작은 것부터 부드럽게 거절하는 시도를 해보자.

그마저도 어렵다면 즉답하지 말고 생각할 시간을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예스의 자동발사를 막고, 이게 꼭 해야 할 일인가, 할 시간은 있는가,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가, 얼마나 부담을 느끼게 될 것인가 등등을 생각해본 후 가부를 결정짓는다. “김 과장님, 제가 웬만하면 회의에 나와보려고 했는데, 몇 년 만에 온 가족이 함께 가는 여행이라 도저히 안 될 것 같네요.” 이때 다른 방식으로라도 도움을 주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하면 큰 도움이 된다. “휴가 전에 자료 준비라든가 다른 방식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은 혹시 없을까요?” 식으로 덧붙이면 청심환을 먹지 않고도 거절의 언사를 자행할 수 있다.


거절해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란 당신.

첫 번째 거절이 어렵지 그 다음은 쉽다. 나의 거절을 두고두고 생각할 만큼 사람들은 나한테 그렇게까지 관심이 없다. 그렇다고 강퍅하게 어떤 부탁도 들어주지 않겠다는 태세로 나올 필요는 없다. 모든 결정의 기준은 나이며, 내가 즐거워서 돕는 것일 때는 돕는 게 맞다.


김호 대표는 “거절의 테크닉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라며 “거절하려 하지 말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솔직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상대에게 말하려 노력하라”고 조언했다. 거절의 심리적 근육을 키우기 위해 그가 추천하는 방법은 한 손으로는 거절 의사를 명확히 밝히되, 또 한 손으로는 희망과 연대의 손을 내미는 '비폭력의 두 손’. "‘제가 당신(부모님, 선생님, 상사)과 함께 잘 해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러지 말아주십시오. 혹은 이렇게 해주십시오’ 말하는 거죠. 단순히 ‘싫어요’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당신을 도와드릴 수 있도록 저를 한 가지 도와주십시오’라고 말하며 상대방에 대한 연대와 희망의 뜻을 함께 밝히는 겁니다.”



‘I 메시지’ 서술법

그가 또 하나 추천하는 거절의 기술은 ‘You 메시지’가 아닌 ‘I 메시지’ 서술법이다.

상대방에 대한 비난을 하면서(You 메시지) 거절 의사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특정 말이나 행동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그대로 전달하는 것(I 메시지)이다. "왜 그렇게 말을 싸가지 없이 하십니까"라고 말하는 대신 "선생님께서 '...(상대의 말을 그대로 인용)'라고 말씀하셨을 때, 제가 좀 불편함을 느낍니다"라고 말하며, 상대의 말/행동과 그것이 내게 끼치는 영향(감정)을 분리하는 방식이다. “늘 상대방에게만 신경을 쓰고 자신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생각 못하다 보면 이를 놓칠 수 있거든요. 자기가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어야 상대방에게 거절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한 거절의 기술은 외운다고 해서 절로 구사되지 않는다. 내가 지금 행하고 있는 친절이 단지 외부의 승인을 받기 위한 자기착취일 뿐이며, 예스의 런닝머신 위에서 과감하게 뛰어내리는 것이 선결과제임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친절을 추동하는 힘은 두려움이나 죄책감이 아니라 주체의 자발적 선택에 의한 내면의 기쁨이어야 하며, 사고와 행위의 주체는 남이 아니라 언제나 나여야 한다는 걸 잊지 않는 것이다.


김호 대표는 친절의 배신과 배려의 부작용을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라이프스타일로서의 민주주의를 먼저 구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30여 년간 정치적 민주화를 위해 많은 희생과 노력을 해왔지만, 라이프스타일로서의 민주화는 구성원들 각자에게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시에 퇴근하는데도 눈치를 봐야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퇴근시간 즈음에 회의나 회식을 하자고 합니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약속은 뒤로 미루는 것이 당연한 걸로 여겨지고요. 오랫동안 ‘그게 우리가 사는 방식이야’라고 생각하면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지만, 실은 무력감을 학습해 온 겁니다.”


그는 “민주주의란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서로가 갈등을 자유롭게 드러내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며 “매일매일 가정, 학교, 직장의 삶 속에서 민주적 라이프스타일을 살 수 없다면 진정한 정치적 민주화도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주 작은 사례들에서부터 좀 더 민감해지고 문제를 제기하는 겁니다.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파워를 가진 사람들은 계속 과거의 방식을 유지하려고 하니까요.”


벌렁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인생 최대의 호연지기를 발휘해 발언한 나의 ‘아니오’는 한국사회가 라이프스타일의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데 필수적인 일종의 민주화 운동이다.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는 누구에게나 한정돼 있다. 개인으로서는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현명하게 소비하고, 사회적으로는 진정한 민주주의에 성큼 다가갈 수 있는 묘법. 이제는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일보/박선영 기자







덧글

댓글 입력 영역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화이트)

744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