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을 끓이며_김훈. 엄마가 뽑은 베스트셀러









아직 살아 있는 나는 죽어가는 그를 바라보았고, 그는 마지막 망막의 기능으로 아직 살아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마지막 망막에 비친 살아 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마지막 망막에 비친 살아 있는 나의 모습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죽어가는 그와 마찬가지로,
한줌의 공기나 바람은 아니었을까. 그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무서웠다.
(중략)
딸아이가 공부를 마치고 취직해서 첫 월급을 받았다. 딸아이는 나에게 핸드폰을 사주었고
용돈이라며 15만 원을 주었다. 첫 월급으로 사온 핸드폰을 나에게 내밀 때, 딸아이는 노동과 임금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고, 그 자랑스러움 속에는 풋것의 쑥스러움이 겹쳐 있었다.
그때 나는, 이 진부한 삶의 끝없는 순환에 안도하였다.

..

나는 근로를 신성하다고 우겨대면서 자꾸만 사람들을 열심히 일하라고 몰아대는 이 근로감독관들의 세계를 증오한다.
나는 이른바 3D 업종으로부터 스스로 도망쳐서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인간들의 저 현명한 자기방어를 사랑한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근로감독관들아, 제발 인간을 향해서 열심히 일하라고 조져대지 말아달라.
제발 이제는 좀 쉬라고 말해달라. 이미 곤죽이 되도록 열심히 했다.


본문 中


'라면을 끓이며'란 이 산문집은 '김 훈'씨의 여러 산문집들 중, 독자들 기억에 남는 최고의 산문들만 뽑아
출간한 책이라고 한다. 역시 기대만큼 삶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이 굉장히 세밀하고 사실적이라 놀랍다.
이 산문집은 그의 가족 이야기서부터 동해와 서해의 섬, 여행 등을 통해 만난 보통 사람들의 삶 구석구석을
헤집어 풀어 내고 있다. 서민들의 사실적이고 세부적인 표현들은 왜이렇게 나약하고 슬픈 것인가.
서민들의 삶을 그는 '먹고산다는 것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비애'로 말한다.

한국인이라면 한 평생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하는 것이라면 '밥'일 것이다.
그리고 대체식품인 라면이 있다.
라면을 얼마나 먹나 싶었는데, 한국인들은 매 해 36억 개, 1인당 74.1개씩의 라면을 먹으며 살아간다고 한다.
평균으로 잡았으니 서민들은 더 많은 양의 라면을 먹을 것이다. 어마어마하다.
밥 대신 뜨거운 라면국물을 들이키고 일터로 나간다는 뜻이 아닌가.
그의 산문집 제목으로 뽑힌 '라면을 끓이며'는 서민의 삶을 대변하는 것이고, 그래서 많이 쓸쓸하다.

삶의 고단함을 깨닫는 시기는 바로 밥벌이의 역할이 되고서부터가 아닐까 싶다.
서민들은 선택권 없이 흙수저로 태어났고, 오직 노동의 대가로서만 밥을 먹고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진부한 일상 속에서 행복과 기쁨을 찾아내고 있다.

그는 분단된 한반도 남쪽에 선택하거나 기획한 의도없이 태어나 불신 가득한 정치정서 속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닥친 세월호 참사에 대해 개탄을 금치 못했다. 고통은 늘 고통당하는 계층에게만 책임져야
하는 현실에 쓸쓸해 한다. 그것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자꾸만 공회전하는 그의 아버지 시대와 별반
다를게 없는 시대적 답습에 대한 괴로움이다. 그의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글을 읽을 때 많이 괴로웠다.
작가의 시대적 사명감을 가지고 그는 힘들지만 펜을 들었다. (아래 인용문 참조)

생명의 아름다움은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이어서 사람이 입을 벌려 말할 필요는 없을 터이지만, 지난해
4월 꽃보라 날리고 천지간에 생명의 함성이 퍼질 적에 갑자기 바다에 빠진 큰 배와 거기서 죽은 생명들을
기어코 기억하고 또 말하는 것은 내가 아직도 살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겨우 쓴다.



산문집 챕터 2부에서 '돈'에 대한 산문은 이런 어그러진 한국사회의 모습을 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밥벌이의 주체가 된 돈의 행방은 깨끗하지 못하다.

관심있게 읽은 산문은 '몸'에 관한 챕터부문이다. 이제는 사라져가는 아날로그식 글쓰기에 대한 그의
고집이 나는 아름답게 보인다.
또한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한 그의 관찰은 외모지상주의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반성의 시간을 갖게 한다.
특히 여자의 몸에 대한 관찰은 아름다운 20대에서 꽃을 피우지만(가장 아름다울 시기니까) 나이먹은
아줌마의 아름다움도 그 밀도에서 전혀 뒤지지 않음을 설명한다.

서민들의 애환에 대한 밀도있는 산문집을 읽었다.
많이 속상했고, 많이 아팠지만 다 풀어낸 듯 해 시원한 기분이 든다.
마지막 챕터 '글'이란 산문 중에 박경리씨의 생전 모습을 써준 글은 당시 젊은 기자였던 저자의 성품까지
보여져 글에 대한 신뢰감이 쌓인다.

세밀한 일상의 관찰력이 빛나는 산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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