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_김정운. 책읽는 방(국내)




자꾸 눈을 깜빡이게 하는 여인(2014) 김정운 그림




사실 일본에서 고독은 아주 자연스럽다. 오십을 넘겨 그림 공부 하겠다며 건너온, 나이 든 유학생이 원룸 아파트에서
혼자 밥 해먹고 혼자 돌아다녀도, 하나도 안 불편하다. 식당에서 혼자 밥 먹어도 쑥스러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고독 순응 사회'다. 고독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사회 구석구석에서 느껴진다.
일찌감치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서구 대부분의 나라도 그렇다. 오래사는 나라에서 고독은 당연한 거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의 고령화 속도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고독’은 아직 낯선 단어다.
고독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 문화에서 고독은 실패한 인생의 특징일 따름이다.
그래서 아직 건강할 때, 그렇게들 죽어라고 남들 경조사에 쫓아다니는 거다.
내 경조사에 외로워 보이면 절대 안 되기 때문이다.

(중략)

고령화 사회의 근본 문제는 '연금'이 아니다. 은퇴한 이들의 '아이덴티티identity'다. 자신의 사회적 존재를
확인할 방법을 상실한 이들에게 남겨진 30여 년의 시간은 불안 그 자체다.
불안은 원래 미래가 불확실한 젊은이들의 정서다. 경험과 경륜의 노인들이 불안해하는 젊은이들을
위로할 때 한 사회는 균형을 잡으며 건강하게 버틸 수 있는 거다. 그러나 오늘날 아무런 대책없이
수십 년을 견뎌야 하는 '젊은 노인들'이 갈수록 늘어난다.





본문 中


편집능력이 바로 권력이라는 김정운교수의 '에디톨로지deitology' 란 책을 인상깊게 읽고서 저자의 네트워크망에
걸려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라는 이 책을 사서 읽게 되었다.
역시 예상했던대로 지식이 풍부한 분이란 느낌이 강하게 느껴진다.
자신이 그동안 쌓아온 통합된 지식의 격식을 한층 낮춰 독자들에게 알기쉽게 외로움에 대한 해석을 펼친 책이다.
소개글에 이렇게 써있다. '이 책은 일본 생활의 시작과 끝을 담은, 지난 4년의 결산이자 격한 외로움의 결실이다.'

그는 만 오십이 되던 해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달려온 삶에 종지부를 찍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일본행을 감행한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만류했지만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있었던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고자 일본 전문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그렇게 나이 오십에 꿈을 찾아 외로움을 선택한 유학이었다.
좌충우돌 실수하고 부딪치는 생활의 불편과 그리움들을 읽으면서 새어나오는 웃음이 그를 점점 멋있게
보이게 한다. 혼자서도 외롭지 않고 잘 사는 노년을 발견한 것이다.

만약 지금 나에게(마침 만으로 딱 50십이다) 하던 일을 모두 관두고(관계도 마찬가지) 주저없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가! 하고 질문을 한다면 결행할 수 있을까? 갑자기 고민스러워 진다.
열심히 사람들과 관계하며 사는 것이 행복을 준다는 등식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그는 강조한다. (위 인용문 참조)

주체적 삶을 살기 위해 외로움을 감수한 그의 일본생활은 처음엔 서툴고 후회가 교차되었지만 외로움과 고독을
'격하게' 견디면서 자신과의 대화인 '성찰'을 깨닫게 된다. 그 외로움을 그는 '그림'으로 풀었다.

평균수명 100세 시대다. 내가 살아온 만큼 기력이 없는 반년을 더 살아야 한다. 사회적 지위는 종료되었다.
그런데 게다가 고독과 견뎌야 한다.
그는 외로움을 받아 들이지 못하면 사람들은 분노하고 적을 만든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더 관계에 집착하게 되어
모임이나 동창회등에 참석하게 되는데 그것은 외로움을 극복하는 방법이 아니라고 말한다.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더 외로워지는 것 뿐이라고 한다. 외로움의 역설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얼마든지 외로움을 즐길 방법은 많다. (아래 인용문 참조)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기쁨과 즐거움이 바로 이 흉내 내기에 있다는 사실이다. 왜 어린아이가 인형이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워하는 것일까? 장난감이 대상 세계를 모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나 스포츠 같은 어른들의 놀이도 내용이나 규칙이 더 복잡해졌을 뿐, 그 본질은 모방에 있다.

흉내 내면 즐거워진다. 나이 들면서 삶이 재미없어지는 이유는 도무지 흉내 낼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높이 올라갈수록 삶이 지루해지는 이유도 도대체 모방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뛰어난 사람일수록
고독한 거다. 가장 처절한 상황은 누굴 흉내 낼 생각도 없고, 그 누구도 나를 흉내 내주지 않을 때다.
아, 세상이 이보다 더 쓸쓸할 수는 없는 거다.



노년이 다가오고 있다.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놔야할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





덧글

  • rumic71 2016/03/03 18:16 # 답글

    노년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는 젊은이들도 잘 놀 줄 모릅니다. 그러니 죽자하고 MMORPG나 SNS에만 매달리는 거죠.
  • 김정수 2016/03/04 08:52 #

    얼마전 서울역을 갔는데 옥외광고가 온통 게임류이더라고요.
    혼자노는 젊은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겠죠. 자본시장은 시대적흐름을 속이지 못하니까요.
    앞으로 '혼자 잘 노는' 사람들이 잘 사는 의미로 받아드려질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미래기술보고서에 따르면 미래변화에 대한 암시자료가 눈길을 끄는데요.
    미래 제조업도 대량생산보다 소량 다품종이 늘것이고(3D프린터), 무인자동차, 사물인터넷, 드론, 로봇산업등..
    인구절벽에 따른 시대적 트랜드가 소비시장의 판도를 주도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 rumic71 2016/03/04 17:33 #

    온라인게임은 '잘 노는 것'도 아닐뿐더러 '혼자 노는 것'도 아니라는 게 특징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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