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보는 눈과 소욕지족(小欲知足). 책읽는 방(국내)





최인호   제가 <샘터>에 연재하는 [가족]을 보고 저희 아이들은 자기네 얘기가 나오니까 처음에는
             거부감을 가지더라고요. [가족]은 소설이기 때문에 백 퍼센트 있는 사실 그대로를 쓸 수는 없거든요.

법  정   글 쓰다 보면 그런 일이 있지요. 사실은 아니더라도 진실하면 됩니다.
            사실과 진실은 조금 다르지요. 그런데 진실이 사실보다 더 절절한 것입니다. 진실에는 보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독자들이 공감하는 것은 다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잇고 자기들 일을 대변해 주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 아니겠어요. 진실에는 메아리가 있어요. 역사와 예술 작품이 다른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역사는 사실의 기록이고 창작 예술은 가능한 세계의 기록입니다.




본문 中



잡지 <샘터>가 지령 400호를 맞이하여 법정 스님과 최인호씨가 '산다는 것은 나누는 것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세 시간 이상 이런저런 대담했던 내용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출가한 스님과 병마의 끝자락에 있던 최인호씨의 대화라 그런지 내용모두가 철학적이고 추상적이다.
사람의 인생에 대한 행복과 사랑, 삶과 죽음등 깊이있는 글들이 시처럼 담겨있는데 아름다운 사진도
추가되어 쉽게쉽게 책장을 넘기지 못하도록 제한되어 있다. 참 멋진 책이다.

나는 법정스님의 남기신 말씀 중에 아래 글귀를 마음에 새기고 살고 있다.

"마음에서 생각이 나오고, 생각에서 말이 나오고, 말에서 습관이 나오고, 습관이 성격이 되고,
성격이 운명을 이룬다."

사람의 마음에는 수없이 갈등하는 자아들이 싸우며 살고 있다. 하지만 결국은 하나의 행동으로 귀결된다.
그것이 그 사람의 성격이 되고 운명을 바꾸는 것이다.
하나로 귀결된다는 그 행동은 어떻게 표현되야 할까. 진실해야 한다. 이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나는 최인호씨가 샘터에서 연재한 '가족'의 내용 중 소설이기 때문에 '사실'대로 쓸 수 가 없음을 토로하는 대목에서
법정스님이 답하신 '진실'에 대한 답변을 읽고 잠시 이해가 되질 않았다. (위 인용문 참조)
사전으로 찾아보면 진실의 뜻은 '거짓이 없는 사실'이라고 쓰여 있기 때문이었다.

조금 더 인터넷 검색창에 그분의 말씀에 이해를 돕고자 찾아보게 되었는데,
우연히 '꿈꾸는 세상살이' 님이 올린 글을 읽고 가슴이 탁 트이는 답을 얻었다.
진실은 본질을 꽤뚫는 순수한 마음의 창이 필요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매일 수많은 뉴스와 수많은 정보 속에서 살아가지만 진실과 사실을 판단하는 기준에서는 무서우리만치
한쪽으로 휩쓸려 버리는 오류를 범하곤 한다. 누군가 보여준 사실이 진실로 이어지는 것이다.
만약에 본질을 벗어난 사실이라면 그 엄청난 한 사람의 인생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생각하면 오싹해진다.

두 분은 알다시피 이 세상 사람이 아니시다.
책의 서두에 이런 글이 나온다. 최인호씨가 대화가 끝날 무렵 죽음이 두렵지 않은지 스님께 여쭤본다.
스님은 죽음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무섭지 않다고 하셨다. 죽음을 받아들이면 사람의 삶의 폭이 넓어진다고 하신다.
사물을 보는 눈도 깊어지는 것은 코스다.
만약 죽음 앞에서 두려워한다면 지금까지의 삶이 소홀했다는 증거라고 덧부치신다.
새벽 기침으로 잠에서 깨어 앉아 있을때면 새벽녘 시냇물 소리가 들리고 정신이 오히려 맑고 투명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시며 기침 덕에 좋은 경험을 한다고 생각이 드신단다.

두분의 대담집에서 얻은 결론이라면 진실을 보는 눈과 소욕지족(小欲知足)이다.
작은 것과 적은 것에 만족하며 살다보면 내가 가진 것에 행복감을 쉽게 얻을 수 있다는 것.
행복이 시작되는 지점은 먼 곳이 아니라 바로 내 손에 이미 쥐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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