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 인생인데, 그 안에 왜 당신은 없냐구요!!"
베트남으로 가족을 위해 돈 벌러 가겠다는 덕수(황정민)를 향해 울부짖는 영자(김윤진) 대사 中
영화 '국제시장'이 어제부로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한다.
요즘 워낙 피로에 찌들려서 볼 생각은 없었는데, 연로하신 직장 회장님이 시간되면 한번 보라고 슬며시 추천하시기도 했고,
워낙 영화평이 호불호가 갈려 도저히 궁금해 지난 주말, 가까운 동네 롯데시네마에 남편과 함께 들렸었다.
어쩌면 시간이 없다는 것은 핑게였는지도 모르겠다. 신발을 신고 영화관으로 향할때는 콧노래가 나왔으니까.
영화관에는 가족단위 일행이 유독 많아 눈길을 끌었다. 추억영화인 것 같아 예의상 나도 어머니에게 동행을 권했지만
요즘 간신히 건강을 회복하시는 터라 사양하셔서 속으론 편안한 마음으로 티켓 두장을 끊었다.
영화는 믿고보는 윤제균감독과 흥행 보증수표 영화배우들이 줄줄이 등장해 의자에 앉자마자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다.
배경의 줄기는 워낙 방대하지만 두시간 남짓 한 남자의 인생을 그린 요약된 내용이라 그리 어렵지 않았다.
대략 시대사별로 정리하자면 6.25 전쟁이 있었던 1950년, '흥남 철수 작전(1950.12.24)'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이어 박정희 군사정권 당시 열악한 경제상황을 타개하고 외화획득을 위해 독일인이 기피하는 육체노동 일자리 인력으로
우리나라에서 노동자수출이 있었던 '파독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1963~1980)'했던 시간이 나온다.
이어서 월남전에 개입한 미국의 요청으로 한국군이 증파되었던 '베트남전쟁 파병(1964~1973)'도 영화의 줄거리를
차지한다. 물론 주인공 덕수(황정민)은 군인이 아닌 신분으로 물류 일을 하러 떠나지만 전쟁 중 포탄이 터지는
상황에서 안전한 일거리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안타깝게도 덕수는 베트콩의 총격으로 한 쪽 다리를 절게된다.
그리고 진한 여운의 기억으로 나도 생생한 고등학교시절의 '이산가족찾기(1983.06.30~1983.11.14)'도 나온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현재 노년의 시간을 보내고 계시고 기억만이 유일한 재산인 70대이상인 우리 아버지시대의
젊은시절 파란만장한 개인의 다큐라 생각할 수 있겠다.
영화는 그 시절 기억에 동참하는 정주영, 앙그레 김, 남진, 이만기 등 당대의 유명인사들을 감지하는 등장으로
깨알 눈치재미를 선사하기도 한다.
아무튼 전체적으로 영화를 보면서 새삼 아버지세대들이 겪은 시간의 아픔들.. 참 먹먹하달까.
우리가 100세를 산다고 치면 불과 35년도 안되는 그 시간동안 이렇게 수많은 아픈 사건사고가 한국사를 담고 있었다.
남편과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우리의 인생에 대해 술 한잔 기울이며 영화의 회포를 풀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전쟁의 공포들와 그로 인한 가장의 고생담이 고스란히 투영되듯 느껴졌다.
아마도 감독 역시 역동의 시기,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거웠던 가장의 아버지를 위로하고 싶어서 만든 영화가 아니었을까..
짐작하게 만든다.
그들은 폐허더미에서 똑같이 헐벚고 거지같은 삶에서 일어서려 발버둥쳤치고 처절했던 주인공들이 아니시던가.
그땐 또 왜그렇게 자식들은 많은지.. 자신의 인생, 자신의 희망은 버리고 가족들을 위해 돈을 위해 살아온 당사자(아버지)
입장에서 이 영화를 보니 너무나 죄송하고 너무나 슬펐다.
특히, 덕수(황정민)의 꿈이었던 선장의 첫번째 관문인 해양경찰 시험에 합격하고도 가족의 삶의 터전인 '꽃분이네 가게'를
잃지 않기 위해 또다시 베트남으로 가려 결심할때 너무나 속상해서 하염없이 나도 울었다.
떠나려는 남편을 향해 아내 영자(김윤진)이 당신의 인생에 왜 가족만 있느냐는 울부짖음.. 그럼에도 애국가가 울리자
국기에 대해 경례를 하는 상황에선 울다 웃다를 반복했다. (영화 대사 인용문 참조)
힘없는 나라에 태어나 전쟁을 겪었고, 돈없는 나라에 살아 파독 광부로.. 베트남으로.. 가족을 향해 짐을 기꺼이 짊어졌던
우리의 아버지들이었다. 그럼에도 내 자식들이 이 상황을 겪지 않고 내가 겪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시는 아버지였다.
이북에서 내려온 우리 아버지는 다행히 잃은 가족 없이 남한에 상주하셨지만 이산가족찾기를 보실땐 아버지가 닥치신
일처럼 우셨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도 따라 울면서 전쟁의 공포를 느꼈던 것 같다.
가족의 생사가 불투명한 것처럼 무서운 것은 없으니까..
영화는 무겁고 힘겨웠고 쉽게 다루기 다들 꺼려하는 우리의 근현대사를 '아버지'라는 가장의 무게에 촛점을 맞췄다.
그리고 지금 현대를 살고있는 사람들에게 당신이라면 덕수의 삶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조용히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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