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술(用人術)과 용병술(用兵術)의 차이. 책읽는 방(국내)






 


정치는 권모술수이지만 통치의 기본은 뭐니뭐니해도 용인술이다.
큰일 해낸다고 큰정치가 아니라 그 그릇의 크기를 두고서 하는 말이다.
그리고 인재를 기용하는 양을 보고서 그 그릇의 크기를 가늠하면 거의 틀림이 없다.

한국의 현대 지도자 중 가장 탁월한 용인술을 구사하였던 인물을 꼽는다면 아마도 박정희 전 대통령일 것이다.
비전에 비하여 모든 게 부족하였거나 전무한 상태에서 군인이든 학자든 언론사 사주든 가리지 않고 최적임자를 찾아내어
적소에 배치하였기에 한국 경제 발전의 토대를 이룩할 수가 있었다.
반대로 사람을 내치는 것 또한 다른 어떤 지도자보다도 과감했었다.

이에 비해 문민 정부에서는 매번 이 인재 등용이 문제였었다.
크지도 않은 나라에서 내편 네편, 동서 구별, 진보 보수로 인재를 나누다 보니 인재풀에 금방 한계가 왔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매번 그 인물에 그 인물로 회전문 인사,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그나마도 속이 좁아서 항상 머슴이나 만만한 아랫사람만 기용하려 들었다.
저보다 잘난 사람을 곁에 두고 못 보는 성질 때문이다.
해서 가신 정치 내지는 비서 정치를 면치 못하였다.
당연히 무능하거나 문제가 생겨도 내치지 못하고 미적거리다가 함께 망신당할 대로 당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요즈음은 군대도 민주화(실은 문민화)되다 보니 장군이라 해도 제 참모들을 재량껏 데려다 쓰지 못하고,
인사부서에서 보내 주는 대로 쓸 수밖에 없다. 당연히 야전이니 작전이니 하는 부서보다 인사 쪽에 더 힘이 쏠리게 마련이다.
실전 없이 평화 시기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 시스템이 그렇게 변질, 부패되어 가는 것이다.

군인 출신 지도자의 용병술(用兵術)은 문민지도자들의 용인술(用人術)과 판이하게 다르다.
부하지휘관들을 선택할 때 충성심과 애국심에 앞서 실력을 먼저 살핀다.
당연히 각 분야에서 자기보다 뛰어난 부하를 더 선호한다. 제아무리 백전의 훌륭한 장수라 해도 전쟁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보다 뛰어난 작전참모, 자기보다 유능한 중간간부, 자기보다 총 잘 쏘는 용감한 병사들을 많이
거느릴수록 전쟁에서 승리할 확률이 높다.

야성과 리더십은 비린내를 맡아야 썩지 않는다.
또 전쟁은 불가피하게 병사들의 피로 치르기 때문에 민간인 지도자들처럼 숫자놀음, 탁상행정, 깜짝 이벤트 같은 잔꾀에
오염되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학연.지연.청탁에 따라 단 한 명일지라도 실력이 떨어지는 부하에게 중책을 맡겼다가는
필시 제 목숨도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해서 심지어 적이라도 뛰어난 자는 아끼고 존중해 줄 만큼 평소 인재에 대한
욕심이 많다. 이런 용병 문화가 없었다면 좌익에 연루되었던 박정희도 진즉에 형장에서 생을 마쳤을 것이다.

무사(武事)에서는 논공행상이 분명하며, 부하가 공을 세워도 그 공이 위의 소속 장군에게로 귀결되기 때문에
장수는 부하의 유능함을 시샘할 필요가 없다. 이런 습관화된 사고 때문에 군인 출신 지도자들은 모든 걸 자기가 다하려
들지 않는다. 해서 경제.과학.외교.문화 등 자신이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그 분야 전문가에게 맡겼다.
불치하문에도 주저치 않아 민간인 지도자들보다 더 유연하게 타인의 생각을 수용, 실행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일반 국민들이 독재자의 아이콘으로 생각하는 전두환 장군은 대통령 취임 전 어느 정책 분야에 정통한 분의
의견을 듣는 데 두 시간 내내 대학노트 두 권 가득히 손수 필기하며 묻고 경청하는 진지함을 보였다.
반면 더없이 똑똑한(?) 문민지도자들은 모든 걸 자기가 주도해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다.

머리가 똑똑한 지도자의 가장 나쁜 점은 사람을 함부로 버린다는 것이다.
자기가 최고라 여겨 저보다 IQ가 낮은 사람을 무시해서 귀히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방끈이 긴 사람일수록 어떤 것이든 모른다는 것에 대해 습관적으로 수치심을 느끼고, 저보다 잘난 인물을 곁에 두고
보지 못한다. 저보다 똑똑한 인물을 기용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저 스스로도 부하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불안해하며,
일일이 간섭(통제)하려 든다. 결국 꼭두새벽부터 저 혼자 바쁘다. 바빠서 1분 1초가 아깝다고 말하는 지도자까지 생기는 것이다.

이런 지도자 밑에서는 설령 똑똑해도 어리석은 척, 대신 바쁜 척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저 잘났다고 튀거나 주군 앞으로 한 뼘이라도 나섰다간 바로 아웃이다. 그게 조선 샌님의 본색이다.
이런 풍조가 정권뿐만이 아니라 대기업.학계.법조계.문화예술계 등 한국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어 글로벌 코리아 융성의
발목을 잡고 있다.

신뢰가 안 가면 쓰지를 말고, 일단 썼으면 믿고 맡기는 것이 삼척동자도 아는 용인의 기본이건만 한국사회에선 그게
잘 안 되는 이유 또한 바로 여기에 있다. 회의 때마다“해봤어?”라거나,“그건 내가 잘 아는데”라며 지시사항을 남발 아니
융단폭격하지 말고,“내가 제대로 맡겨나 봤나?”하고 자문 자책해야 옳다.
부지런하고 똑똑할수록 유능한 지도자란 생각은 본인만의 착각일 수도 있다.

정치권과 관료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대한민국 공기업 및 대기업들의 인사시스템이 글로벌 시대를 맞아 성장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은 인사과 같은 직원 인사배치 담당부서가 주요 핵심부서로 존재하고 있다.
또한 아직도 인사고과 점수놀이하는 구시대의 잔재를 고수하고 있다.
이는 오너의 직속부서로서, 전문적인 능력보다는 충성도와 신뢰를 바탕으로 오너의 스파이 노릇도 마다 않으며 특권을 누린다.
투명하지 못한 오너의 경영 약점을 덮어 가며 공생하는 시스템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하여 때로는 노조의 의도나 요구 등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지 않고 차단시키는 등, 오너가 듣기에 거슬리지 않는 말만을
전하며 이간질하기도 한다. 인사권은 제왕적 권력! 당연히 청탁.파벌.암투.모함이 난무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이런 인사과니 노무과니 총무과니 하는 인사팀들은 사업 현장실무 경험이 전무하거나 보잘것없는 이들이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즈니스 비주류에 속한 이들이 비즈니스 주류의 적재적소에 알맞은 인재를 발굴하고 배치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당연히 인사팀과 사원들 간의 입장 차이, 사원들간의 부조화 문제로 인한 스트레스가 극심할 수밖에 없다.

또 인력개발원이나 연수원 역시 글로벌 무대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실무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이 맡아 인재를 길러내는
곳이어야 마땅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그 반대다. 인사라인의 꿀맛에 길든 아전형 사람들이 모이거나, 미래인재 투자사업부서인
연수파트를 한직으로 여겨 그저 만만하고 무능하고 피곤하고 껄끄러운 인물들을 그곳으로 보낸다.
당연히 사원 교육이 부실할 수밖에 없다.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우량기업이 못 되는 이유다.

이에 비해 서구 기업들에서 인사는 전적으로 각 사업부 본부장 소관이다.
인사과는 필요자료 서포트와 후속 서류작업이 주업무다. 왜냐하면 비즈니스는 전쟁이라는 컨센서스 공감대가 전사적으로
인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어느 부서나 직책에 어떤 역량의 인재, 딱 부러지게 누구누구가 적임자인지는
그 부서 사람들이 가장 잘 안다. 해서 본부장이 인사는 물론 연수까지 책임진다. 때문에 인사로 인한 불협화음이나 스트레스
없이 각 주요 포스트별로 사전에 잘 기획된 철저한 후임자 승계프로그램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적 인사관리니 인사고과니 하는 것은 부질없고 해괴한 짓으로 여겨질 뿐이다.

한국의 정치적 시스템 또한 겉모습만 민주화되어 기실 그 속은 아직도 봉건적 된장독 타성으로 가득 차 있다.
서구가 근대화 과정에서 이미 내다버린 비민주적이고 비효율적이며 비자율적인 대표적 시스템이 바로 한국의 형식적
인사노무관리 부분이다. 대한민국 헌법상 엄연한 헌법기관인 장관보다 일개 보좌관류의 대통령수석비서관, 헌법기구인
국무회의보다 임의기구인 수석비서관회의가 더 큰 힘을 지니는 것과 같다 하겠다.
이런 군더더기, 아니 군(群)구더기들을 다 잘라내어야 회사가 원활하게 돌아간다.
한국 기업들이 가장 시급히 개선해야 할 점이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닮은 점이 많은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인사다.
특히 대통령이 임명해야 할 다수의 기관장이나 단체장직을 오랫동안 비워두는 일이 잦다.
어차피 언제 먹어도 이서방 아니면 박서방이 먹을 터이니 아무런들 어떠랴마는 늑장 인사는 리더십의 결함임이 분명하다.
뒤집어 보면 이 또한 독선이다. 아무려면 훌륭한 인재를 뽑아 쓰고자 고심하지 않는 지도자가 있을까마는 혹여 사적인 감정,
호불호(好不好), 연줄에 끌려 냉정심을 잃지나 않았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문민 정부는 단적으로 가신 정치.보좌관 정치.비서 정치라 할 수 있다.
의원 시절부터 따라다니던 보좌관을 데리고 하는 정치를 말한다. 기실 어느 당이든 인재들은 대부분 중앙당에서 일하고 있다.
여러 면에서 이들에 한참 못 미치는 이들이 각 의원들의 보좌관으로 일한다. 실력보다는 충성심이다.
한데 그 주군이 최고권력자가 되면 그들이 권력을 독차지한다.
그러고는 당의 인재를 데려다 쓰는 것을 그들이 철저하게 막는다. 저보다 잘난 사람이 주군에 접근하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물이 없다는 둥 인재를 기용할 줄 모른다는 둥 하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웃 동네 나들이 갈 때는 노새나 당나귀 타고 갈 수 있다. 하지만 천리를 달리자면 어림없는 일이다.
당연히 말로 갈아타야 한다. 문민 정부마다 십 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나는 근본적인 원인이 여기에 있다.
가신에선 절대 큰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 단 한번도 주인 의식을 가져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큰 나무 밑에 같은 나무가 자라지 못하듯이 독선이 강한 문민지도자는 차세대를 키우지 않는다.
지나치게 사람을 고르는 것은 자칫 자리 나눔에 인색하다거나 소심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사실 아무리 잘 살핀다 해도
흠결 없는 완전한 사람 없고, 준비된 사람도 없다. 때로는 자리가 사람을 만들기도 한다. 만만한 올드보이만 찾지 말고
과감하게 젊은 인재들을 기용해서 능력을 검증, 단련시켜 나가는 것 또한 후진양성의 길이기도 하다.

정치에서 후진이란 자신을 추종, 보필할 머슴이 아니라 언젠가는 자신을 밟고 넘어갈‘웬수 같은 놈’을 말한다.
기실‘그런 놈’이 진짜 인재일 수도 있다. 남들 머리 조아리고 최고존엄자 말씀 받아쓰기할 때 똑바로 쳐다보는‘그런 놈’말이다.
아무렴 사람을 부리고 내치는 일을 두려워해서야 용병(用兵)을 안다고 할 순 없겠다.
해임 역시 기용 못지않은 능력이다. 일정 부분은 실패와 희생을 감내해야 창조적 솔루션이 기능하다.
피비린내를 맡아 보지 못한 장수는 장수가 아니다.


---- <품격경영>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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