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십자가_히가시노 게이고. 책읽는 방(국외)







각각의 사건에는 각각에 맞는 결말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 그 말이 맞다. 자신은 지금까지 결말을 찾지 못해서 이렇게 괴로워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사형 이외에 어떤 결말이 있다는 것인가? 일부 사형 폐지론자가 말하는 종신형을
도입하면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는가? 사요코도 그런 식으로 물어보았다.
그에 대한 히라이 대답은 "그것은 나도 잘 모릅니다"라는 것이었다.



본문 中



소설은 고등학교 입시를 앞둔 어느 중학생 남녀의 첫사랑을 아름답게 그리며 시작한다.
그들의 여리고 풋풋한 사랑의 결실여부는 알려주지 않은 채 저자는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살인사건의
현장 속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 익숙한 독자라면 앞선 이야기의 거론이 소설 속에서 다룰 살인사건의 모태가
되리란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범죄자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저자는 정말이지 이야기 속으로 흡수 시키는 능력이 있다.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운영하는 나카하라는 11년 전, 강도에게 여덟 살 딸을 잃은 아픈 기억이 있다.
딸을 살해한 범인은 이미 강도살인죄로 수감된 전과자였지만 당연한 사형집행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법정의 지루하고 지친 판결 끝에 사형이 집행되지만 부부는 심리적 공항의 여파로 결국 이혼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그의 이혼한 아내 사요코가 살해당했다는 연락을 받는다. 범인은 단순히 돈을 노린 70대 노인의
우발적인 사건이라지만 형사나 나카하라는 동기에 영 미심쩍어 한다.
나카하라는 장례식장에서 만난 조문객 중 사요코가 원고를 쓰고 있었다는 것과 도벽증 환자를 취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서 아내를 죽인 사건이 단순강도 사건이 아님을 직감하게 된다.

죽은 아내는 살해 당하기 전까지 사형폐지론을 비판하는 원고를 집필하고 있었다.
그것은 11년전 억울하게 죽은 딸의 가해자를 처벌하는 재판과정에서, 딸을 살해한 범인이 법의 보호아래
변호받는 사회적 잣대에 대한 분괴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사형만이 살인자의 댓가라 생각한다. 물론 그것으로
원점으로 복귀는 되지 않지만 사형만이 유족의 슬픔을 딛는 첫번째 단추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요코의 죽음을 읽게 되었을때 나는 과연 누가 범인일까, 왜 그녀를 죽였을까 하는 범인유추에 촉각이 서졌기
때문에 소설의 말미가 과연 어떻게 될지 갈피를 잡지 못했었다.
하지만 결국 소설의 서두에서 살짝 꺼내보여줬던 풋풋한 중학생들의 사랑의 결론이 아내의 수수께끼 살인사건의
실마리로 정리된다. 그 어린 중학생들이 성인이 되도록 숨겨진 20년 전의 숨겨진 제3의 죽음이 있었던 것이다.

소설은 죄를 저지른 범인의 단죄 수위를 어디까지 처리해야 마땅한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여덟 살난 딸을 죽인 전과자는 교도소의 갱생시스템에서 충분한 속죄와 반성을 하여 출소를 했지만 곧바로
살인을 저질렀다. 그를 사형으로 집행했다면 제2의 죽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의 교도소의 수감생활로 죄값을 치루게 한 것은 그저 '공허한 십자가'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사형만이 죄값을 치루는 최선의 길일까.
지루한 공방으로 법정에서 지친 여덟 살난 딸을 죽인 살인범은 처음에는 우발적인 살인이라며 속죄의 반성을 보였고
형량을 줄이며 살길을 요청했지만, 종국엔 유족의 질긴 요청에 지쳐 그저 죽음을 받아드리고 항소를 하지 않는다.
인간은 어차피 죽을 것이니 그냥 죽겠다는 것이었다.
반성없이 사형을 당하는 그는 죄값을 치룬 것일까.. 의문을 남기는 부분이다.

그 범인을 변호한 변호사를 찾아간 나카하라에게 사형만이 답이 아님을 주장한다.(위 인용문 참조)
각각의 사건에는 각각에 맞는 결말이 있어야 한다고..
사형은 유족의 위로일 뿐 정작 속죄의 본질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소설을 다 읽자 이청준 소설 '벌레이야기'가 떠올랐다. '밀양'으로 영화도 되었던 소설이다.
영화에서 김도연이 아들을 죽인 가해자와 마주하고 대화를 하는 장면인데 이 영화의 하일라이트이며
관객들에게 화두를 던지는 장면이다.
가해자는 용서하러 간 전도연에게 이미 자신은 신으로부터 용서를 받았으며 평온해져 있다고 말한다.
과연 속죄의 본질은 무엇인가.. 영화를 본 관객들은 분괴했다.

죄값이나 속죄는 정량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또한 유족에 대한 용서또한 마찬가지다.
그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 달린 문제기 때문이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화이트)

744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