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버릴 사람, 없다_'역사ⓔ2' 책읽는 방(국내)



펜을 꺼내야 하는 이유_'역사e'와 함께 합니다. ^^


17세기 조선의 소설 홍길동전의 첫 페이지.


"천하에서 오직 두려운 것은 백성뿐이라.
백성은 물이나 불이나 호랑이보다도 더 두려운 것이다.
그런데도 윗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제 마음대로 이들 백성을 업수이 여기고 모질게 부린다.
도대체 어찌하여 그러는가."


허균이 쓴 '호민론豪民論'의 일부분 中




한국사의 주요 사건들의 기록들을 바탕으로 현실을 직시하자는 의미로 집필되었던 '역사ⓔ1'에 감동받아
'역사ⓔ2'책을 이어서 읽게 되었다. TV시청이 쉽지 않은 나같은 독자의 형편을 고려해 책으로 나오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르겠다. 이번 '역사ⓔ2' 시리즈물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파란만장한 우리의 역사 속
숨은 공로자들과 사라진 역사의 호출(발굴)이었다.
그들의 고통과 연대가 모여져 하나의 불씨로써 우리의 역사의 변화가 이뤄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독서로 말미암아 처음 접하게 된 사람들이 많았던 것은 소득이었다.
먼저, 책이 귀했던 조선시대 책벌레들에게 책의 소통을 맡았던 인물이 있었으니 '책쾌 조생'이다.
그는 '한양에서 조신선을 모르면 '간첩'이란 말이 돌 정도로 한양을 무대로 활약한 최고의 책쾌였고,
정약용도 "박식한 군자와 같다"고 할 만큼 조생은 지식과 학식을 갖춘 인물이었다고 한다.
조선후기 대표적인 금서인 '명기집략(인조반정을 부정하고 광해군을 옹호한 내용)'파문이 일어나
조용히 사라졌지만 그의 활약을 짧게나마 이 책에서 만났다는 사실은 참으로 새로운 발견이었다.

또한 노비신분임에도 그 어려운 한시를 쓰고 아까운 한 생을 마친 여춘영의 노비 '정초부'의 얘기는
참으로 신선했다. 시대의 탄생이 아쉬운 사람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당대 지식인이었던 여춘영의 배려로 양인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나무를 하며 한시를 짓고 살았다 한다.

조금만 생각하면 현재 우리는 문명의 혜택과 언론의 자유가 있는 세상에 살고있음에도 과거 속 인재등용의
평등에는 배울점이 많은 것 같다. 조금 느리고 소통의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인권에 대하여선 과거의
사람들은 평등했다고 생각이 든다. 조선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 의식이 없었다.
함께 어울려 살아갔고, 국가도 장애인의 자립과 사회 참여를 위한 정책 수립과 운영에 적극적이었다.
조선후기에 한쪽 시력을 잃은 장애인 화가 최북. 언어장애인 서예가 조광진, 한쪽 눈을 잃고도 노래. 춤. 악기에
두루 능했던 기생 백옥, 두 분을을 실명하고 아쟁에 몰입해 입신의 경지에 올랐다는 김운란등 그들은
당대 스타 예술가였다. 신체적 장애는 있었으되 사회적 장애는 없었던 것이다.

본문의 내용이 참으로 부끄럽게 만든다. (아래 인용문 참조)


나라의 인권 수준을 보러면 장애인에 대한 처우가 어떠한지 살피라는 말이 있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차별받거나 기회나 권리를 제한받지 않도록 사회가 힘쓰고 있는지 여부에 따라
그 사회 구성원이 합의한 인권의 수준을 알 수 있다는 의미다. 21세기 한국 장애인 전체 70~80퍼센트 실업자,
50퍼센트이상은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
장애인이 전체 인구의 10퍼센트에 이르는데도 여전히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자신과 다른 사람으로 여기는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또다른 편견을 낳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장애인이 아니라 나는 편견에서 자유로운가 생각해 봤음 좋겠다.
우리사회는 학력, 지연, 부와 빈에 대한 편견으로 사회적 간섭에 취약하다.
이러한 편견은 또 지배층과 피지배층이라는 소통의 벽에 부딪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기득권층에 있는 사람들이 먼저 자신을 내려놓아야 소통의 시작은 열린다고 생각한다.
최고의 농업 실용서인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의 작성과정을 보면서 그런 것을 느꼈다.
또한 정약용의 행로는 귀감이 되고도 남는다. 천주교를 믿었고 정조의 사람이라는 말로로 유배지로 향했지만
그는 현실에선 죄인이지만 다음 세상에선 제대로 평가받고자 붓을 붙들고 수많은 책을 써냈지 않은가.
그의 경세유표, 흠흠신서, 목민심서등 503권의 책들은 그의 집중력과 지식인의 제대로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2012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등제된 것이 그 증거다.

인용된 본문처럼 민본주의(백성을 주인으로 보는 사상)만이 역사의 제대로된 행로가 아닐까 싶다.
기록된 역사물 병풍 뒤에는 수많은 가려진 조연의 백성들의 외침이 있다.
이 책의 테마 중 3부에 기록된 ‘시대의 맥박, 살아 있다’에는 우리가 역사책에서 비록 배우진 못했지만
감춰졌던 뜨거운 사람들의 역사가 숨겨져 있다. 3.1 운동에는 부엌에서, 남자뒤에서 서있던 여자들도
뛰쳐나왔다. 남녀 가릴 것 없이 민족의 바른길을 바라는 마음은 같은 것이다.






덧글

  • 푸른미르 2014/08/24 23:15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언제나 건강하시고 지혜로우신 김정수 여사님!

    오랜만인지라 좀 오버스런 인사를 했습니다.^^;;

    그나저나 인권의 수준을 보려면
    장애인에 대한 처우를 살펴봐야 한다는 글귀에 인상이 깊었습니다.

    그리고 진보한 의식이 다음 시대에는 오히려 퇴보하는 것도... 다른데 많이 본것 같네요. 그중 하나가 암흑시대가 되겠군요.

    지식은 아니고 인생경험으로 배운게 못난 사람에 대한 관용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자신에 대한 관용이 타인에게도 적용이 되더군요.

    아마 이순신 장군도 임진왜란이라는 비상시국이 아니었다면 최소한의 의무를 다하는 사람에게는 인정을 베풀어주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김정수 2014/08/25 09:57 #

    여사님 그러니까 왜이렇게 오글거릴까요? ㅋㅋㅋㅋ

    장애인에 대한 처우는 어찌된 일인지 갈수록 퇴보되는 것 같네요.ㅜ.ㅜ
    문명의 발달과 비례되는 우울한 통계죠.
    역사적 그 시기의 상황을 지금 현 시대와 비교하는 자체가 어패가 있을 수도 있지만 '온고지신'의미처럼
    극복하고 되새기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거든요.

    그리고 말씀처럼 누구든 장애인이 될 수 있다고 전 생각해요.
  • 푸른미르 2014/08/24 23:37 # 삭제 답글

    가만 다르게 생각해보니

    조선시대에 장애인들이 평등하게 대우받은 것은
    정상인들이 잘못하면 장애인이 될 정도로
    의식주나 사회환경이 굉장히 열악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단순한 질병이나 기생충라도 적절히 치료를 못하면 죽지 않더라도 장애인이 될수 있으니까요.

    조선시대에 후천적으로 장애인이 될 확률이 높아서
    인구비율이 20~30%이상이라면 그만큼 장애인이 친근해질수 밖에 없고 나도 장애인이 될지 모른다는 공포심으로 보험차원에서 장애인에게 잘해주게 되겠군요.

    .... 음 이건 먹고살기 좋아지다 보니 오히려 의식이 퇴보한 사례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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