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힐 수 없는 거리 확인하기. 일상 얘기들..





세상은 참 넓고도 좁다.
우리 아파트 그것도 같은 동, 옆라인에 시어머니가 처녀시절 친동생처럼 지냈던 고모조카님이 살고계셨다.
토요일, 식구들과 보신차 오리백숙외식을 나가던 길에 우연히 아파트 입구에서 어머니와 조우한 고모조카님은
아파트가 떠내려갈 듯 반가워하셨고(아아.. 두 분 다 난청증세가 있으시다.ㅡ.ㅡ;),
일요일엔 서울에 분포(?)되어 소식이 뜸했던 어머니 친지분들을 수소문하셔서 방문을 하셨다.

다음주에 어머니 생신이 있는터라 나는 소심하게 담주에 모이시면 어떻겠냐고 의견을 내놨지만 나이 드신분들에게
기다림의 배려는 없었다. 그래서 일요일 아침부터 시장을 두 번 다녀오며 점심 상차림을 서둘렀다.
하지만 숙성된 세월의 무게는 그리 쉽게 대화의 종결을 보지 못했다.

나이드신 분들의 대화에 끼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불합리하거나 비논리적인 대화라 할지라도 그렇다.
그것은 고음이 주는 대화흐름의 불편함도 한요소로 작용하지만, 내용에 있어서도 그 틀을 깨기가 벅차기 때문이다.
그저 눈웃음으로 그들의 의견에 동의를 표하고 타이밍에 맞춰 떨어진 음식 보충해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또한 적당한 거리에 앉아서 외면하지 않는 듯한 자세도 필요하다.

그 분들의 대화는 언제나 한 두가지로 귀결된다.
운명과 숙명에 대한 믿음이다. 듣다보면 그렇게 판단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다 싶다.
후견지명의 잣대는 보는 시각에 따라 맞춤형 구슬의 연결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에 모든 상황들이 정해졌던 그 길로 갈 수 밖에 없었다면 '노력'을 통해 자신을 극복한
많은 사람들의 희망의 메세지들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과 맞는 사람과만 대화하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욕구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운명과 숙명으로 귀결시키고 '너는 될 놈, 너는 안될 놈'이란 이분법으로 세상을 편하게 잣대하는 것은
너무나 무서우리만치 위험하다.
나는 어머니세대와 나의 생각의 접점은 생각보다 엄청 넓다는 것을 새삼 확인한다.

평정심을 갖고 합리적인 어른으로 늙어간다는 것은 그래서 그만큼 무겁고 책임감을 동반하는 것이다.




덧글

  • 토드리 2014/07/14 16:01 # 답글

    ㅎㅎ갑자기 음식 장만하고 대접하기 힘드셨겠어요. 고생하셨습니다.
  • 김정수 2014/07/15 09:56 #

    감사합니다.
    ㅎㅎ 어머니가 즐거우셨으면 된거죠. 뭐.
  • wkdahdid 2014/07/14 18:44 # 답글

    정말 그릇이 크신가봅니다.. 이런 글을 읽으면 반성됩니다..^^
  • 김정수 2014/07/15 09:56 #

    무슨 반성씩이나요..ㅡ.ㅡ;;
    다 자기만의 사는 방식이 있는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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