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의 의문_도플갱어(주제 사라마구) 책읽는 방(국외)




영화 '에너미'의 한 장면


속지마, 상식이라는 건 너무 흔해서 사실 양식이 될 수 없어.
그냥 통계학 책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모든 사람들이 항상 자랑스레 꺼내 보이는, 그런 책 말이야.





본문 中



영화 '에너미(Enemy)'의 원작 '도플갱어'를 뒤늦게 주말에 읽었다.
주제 사라마구의 워낙 유명한 작품이긴 했지만 내용을 이미 도서평들을 통해 알고 있었던 터라 독서목록에서
제외하려 했는데 영화까지 최근 나오고나니 독촉받는 기분이랄까. ^^;

늦은 독서의 핑게를 대자면 일단 주제 사라마구의 문체는 워낙 독특해서 정독해서 읽어야하는 독자의 태도를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늘어져 최대한 휴식속에서 독서하는 요즘 내 습관을 고쳐야 하는 불편함 정도?
그의 작품들은 각오(?)하지 않고 시작하거나 잠시 딴청을 피울때엔 감상의 맥을 놓치기 십상이다.

제 3자의 눈으로 소설을 끌고 가다가 화자의 입장으로 어느순간 독백하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작가 자신의 입장으로까지 선회하며 언어의 유희의 끝을 달린다. 이어달리기식 그의 문맥의 연결은 가히 최고다.
잠깐 본문의 내용을 인용하면 이렇다.


막시모 아폰소가 신호를 기다리며 가사도 없이 노랫가락에 맞춰 손가락으로 운전대를 두드리고 있을 때 상식이
차에 올라탔다. 상식이 말했다. 누가 너더러 여기 타라고 했어, 운전자가 보인 반응은 이랬다.


하지만 저자는 막무가내식 도입은 하지 않는다.
이 책의 주제인 '정체성'의 본론을 따지고 들어가야하는 중요한 부분 '상식'에 대한 도입부분을 드닷없이 등장한 것이
아니라 사실 서두부터 보여줬기 때문이다. 막시모 아폰소의 동료 수학교수의 통화내용이 그렇다. (인용문 참조)

주인공인 중학교 역사교사 '막시모 아폰소'를 어떻게 설명할까.
그는 가장 상식적인 것을 내면 깊히 논리적으로 따지며 사는 강박관념적 운명론자다.
그에게 어느 날 동료 수학교수가 권한 영화를 보다 영화 속 단역배가 자신과 너무나 똑같은 5년 전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한다.

똑같다는 것.
두 사람의 혈관, 주름살, 털, 손가락, 지문까지.. 그리고 생후 생긴 상처까지 같다면 누구나 끔찍할 것이다.
영화배우 안토니어 클라로가 막시모 아폰소보다 삼십일 분 먼저 태어난 것 말고는 유일한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영화배우는 조롱섞인 말로 자극한다.

우리가 오늘 보았듯이 정말로 서로 똑같다면,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정체성의 논리에 의해 당신이
나보다 먼저 죽게 될 거라는 거죠. 정확히 나보다 삼십일 분 먼저,
그리고 그 삼십일 분 동안 복사본이 원본의 자리를 차지해서 원본이 되는 거예요.
당신이 그 삼십일분 동안 개인적이고 절대적이며 배타적인 정체감을 즐기길 빌어드리죠.
앞으로 당신이 즐길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을테니까.


자신이 복사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대단히 논리적이고 병적인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역사교수에겐 엄청난
불편함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자신의 정체성의 논리에 치명적 오류를 인정하는 것과 같을 테니까 말이다.
그것은 타인지향적인 사람이 상식이라는 잣대로 규정짓는 것과 다를게 없다.

존재의 불안함은 극을 향해 달리고 소설의 결말도 무서리우만치 잔인하다.
역사교수와 영화배우와의 조우가 너무 길어져 다소 지루했다가 결말에 빠르게 진행되서 솔직히 막판에는 소름이 돋았다.
아무튼 소설의 내용은 너무나 간단하지만 내용의 실체는 독자 각자가 상상할 수 있는 대비의 끝이 느껴지기에
충분하다고 느낀다.

소설을 통해 대부분의 독자들은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외모로 누가 원본이고 누가 복사본이라는 낙인에 앞서 인간 각자 본연의 기억과 주변사람들의 인식만이 정확한 정체성의
확립이란 사실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열쇠가 없는 문에 갇힌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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