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은 사랑입니다_높고 푸른 사다리(공지영) 책읽는 방(국내)






진정한 세속이야말로 진정한 천상일지도 몰랐다.
하늘나라에 대해서만 말하는 종교인들처럼 세속적인 사람이 없다는 것을 교회는 2000년동안
몸소 실천으로 가르쳐왔다. 중세의 타락한 교회는 세상의 로또가 아니라 하늘나라로 가는 입장권을 팔았다.
"예수는 이미 하늘나라는 일찍이 너희들 사이에 있다고 선언했잖아."
미카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미카엘 그런 거였어?

.....온몸으로 문득 전율이 지나갔다.




본문 中



공지영씨의 소설은 읽기 시작하는 순간 빠르게 이야기 속으로 흡수시키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그녀의 소설은 뭐랄까.
어느 한편의 진한 드라마나 영화를 본 듯한 기분이 들어 한동안 그 스토리잔상으로 가슴이 먹먹하다.

'높고 푸른 사다리'란 제목을 무슨 뜻으로 지은 것일까.
난 이야기의 후반을 달릴때까지 그 의미를 몰랐다.(워낙 소설을 빠르게 읽는 편이라 짐작을 못했을 수도..)
예상했다면, 단지 신부 서품을 앞둔 W수도원의 젊은 수도사가 하느님이라는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평생
정결을 맹세했던 것을 파기하고 한 여자를 사랑하는 욕망으로 변하는 과정..
그것도 사랑의 한 방편이라고 입장정리를 해주는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다 다시 하느님에게로 돌아오는.. 그정도?
하지만 이 소설은 스케일이 그 정도가 아니었다.

W수도원은 신품 서품을 받기 위한 젊은 수도사들로 가득하다. 그 수도원의 존재는 명확하다.
'일하라 그리고 기도하라'
직접 삽을 들고 땅을 파고 땀을 흘려 열매를 거두는 것이다.
단순히 열심히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진리를 찾기보다 자급자족의 고통도 몸소 실천하는데 그 뜻이 있다.

주인공 요한 곁에는 절친의 수도사인 미카엘과 안젤로가 있다.
늘 그렇듯이 주인공 요한과 더불어 그들도 세속을 버리고 수도원으로 신부의 길을 걸으러 들어왔지만
과거의 시간들은 그들을 단절시키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유혹과 더불어 연결을 시도한다.

정해진 사회적 틀안에서 기도하기를 거부했던 곧은 성격의 미카엘과 너무나 착한 미소의 소유자 안젤로는
세속의 버려진 사람들(창녀, 미혼모, 불의한 권력앞에서 싸우는 힘없는 근로자)을 위해 수도원을 이탈하다 죽는다.
주인공 요한이 아빠스 조카인 아름다운 소희와 사랑의 일탈을 꿈꿀때 일어난 사건이라 요한의 죄책감은 엄청나다.

여기까지의 요약한 내줄거리는 아마도 이 소설의 2/3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이만큼의 분량을 읽을동안도 소설의 제목이 내포하는 의미를 몰랐다.
그런데 이후 포물선을 가르는 스토리들은 그간의 디테일한 감정의 소화과정을 훅 뛰어넘어 전쟁터미의
포탄처럼 정신없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극적으로 6.25전쟁시 살아남아 남한에서 자수성가한 요한의 할머니가 등장하고,
요한의 할머니가 비련에 빠진 손자 요한에게 위로차 들려준 한국전쟁과 흥남 부두 폭격사건은 처절했다.
또 미국 뉴튼 수도원을 인수하러 간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의 마리너스 수사에게서 들은 14,000명의 한국인을
구조한 기적적인 이야기.. 그 스토리안에 살아있었던 스무살의 요한의 할머니 사연과의 만남들.
그리고 북한에서 순교한 요한 신부님을 회고하는 토마스 신부님까지..
너무나 순식간에 많은 이야기를 뱉어내면서 주인공 요한처럼 날 놀래켰다.

난 이러한 스토리 전개를 읽으면서 공지영씨가 이 소설에 감정이 많이 격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흥남 부두 폭격사건의 일화는 약간의 각색만 있었을 뿐 대부분 실화라고 했으니 그녀의 감정이 흔들릴만도 하지만
극적요소를 주기위해 요한의 할머니가 조금 일찍 등장했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요한이 신부가 되려고 결심하게된 토마스신부의 스토리가 조금이라도 빨리 등장했다면..

아무튼 한 젊은 수사의 사랑과 그가 머문 수도원의 존재까지에는 과거의 처참했던 한국의 전쟁,
전쟁을 견뎌낸 차분하고도 냉정한 한국인의 국민성이 담겨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말하고자 했던 진정한 사랑의 의미들까지도.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의도는 충분히 이해한 느낌이다.

사람은 시련으로 성장하고 내면의 고독들의 질문들을 진심으로 받아드릴때 성찰의 길로 들어서는 것 같다.
힘없는 국민들은 고통으로 견뎌낸다. 지나온 우리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 고통의 밑바탕에는 사랑이 아니면 해석하기 힘들 것이다.

저자는 그 사랑의 해석을 천주교라는 신앙으로 해석해 놓았다.
예수는 이미 하늘나라는 일찍이 우리들 사이에 있다고 했던 미카엘의 말로 해석된다.(인용문 참조)

시련을 악이 아닌 사랑으로 견뎌내는 것.
그것이 바로 높고 푸른 천국으로 가는 사다리라는 뜻일테다.







덧글

  • 2014/06/11 15:4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6/11 16:2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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