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는 힘이 있는 자의 몫_역린. 엄마의 산책길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 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 정조(현빈)의 물음에 답하는 상책(정재영)의 중용 23장 내용 中



'역린'은 정조대왕 즉위 1년, 왕의 암살을 꾀했던 '정유역변'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다.

영화를 보기전엔 하루 동안 긴박하게 벌어졌던 궁중(존현각)내 사투를 그렸다길래 다소 억지스럽고 지루하게
스토리가 이어지지 않았을까 예상을 했는데, 막상 영화를 보니 그 사건 내부에 수많은 조직적 비밀이 시간적 계산과 함께
체계적으로 잘 꾸며져 있었고 영화를 다 보고 일어 설 때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정조역활의 현빈의 연기는 물론이고(절제된 눈빛과 말투는 가히 일품이었다고 칭찬해 주고 싶다),
어린 상책으로 세자시절 살수로 잠입해 키워온 정재영(정조를 죽이려 들어왔지만 지키는 사람으로 변하는)은
이 영화의 흐름상 큰 역활을 해준 것 같다. 

정조는 자기 침전에서 잠들지 않았다고 한다.
책을 워낙 좋아해서기도 했지만 노론의 암살 위협에 늘 두렵고 무서워서 였을 것이라 짐작한다.
정조일기에는 '두렵고 불안하여 차라리 살고 싶지 않았다'라고 써있었다 한다.
사람이 공포 속에서 자신을 단련하고 상황을 극복하려고 힘을 기른다는 것을 말처럼 쉽지가 않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영화적 상상력인 픽션을 가미해 훌륭하게 완성 되었다고 생각이 든다.

사극을 볼때 나는 관객들이 시간을 내서라도 역사적 사실을 파악하고 관람하길 원한다.
그렇게 되면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감독의 기교를 즐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영화 '역린'의 역사적 사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정조는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혀 죽은 불행한 세자다.
문. 무가 뛰어났고, 소론을 지지했던 사도세자의 성장은 노론의 입장에서 불안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노론파들은 영조에게 끊임없이 사도세자를 비난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성격이 불같은 영조의 결정으로 뒤주에
갇혀 죽게 된다. (이에 많은 역사적 글들이 많지만 어찌되었든 뒤주에 죽은 세자의 결말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역적逆鱗(살아있는 임금을 죽이려고 모의한 가장 큰 죄에 해당된다)으로 죽은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는 당연히
세자가 될 수가 없는데, 후손이 없는터라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시켰고 효장세자의 아들로서 적통을 잇게 되어
옥좌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정조는 옥좌에 오르자마자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라고 노론대신들 앞에서 공표를 하고 만다.
이는 그들과의 전면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영화는 위의 내용을 전반적인 관객들 지식으로 깔고서 시작한다.

정조 즉위 1년째 되는 해, 득실거리는 노론대신들은 자신들이 뿌리내린 권세와 대대손손 안위가 걱정되어
정조를 호시탐탐 죽이기를 옅본다.
영조가 80년을 넘게 살았으니 노론의 길고 뿌리깊은 권세는 감시자들을 키우기에 충분했고 궁녀를 비롯하여
내시, 상궁, 장수등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라 짐작하고도 남는다.

정조는 홍국영인 금위대장(박성웅)과 어렸을 적 같이 성장한 상책(결국 그도 어린살수였지만)만 의지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본인 스스로 살기위해 몸을 단련함은 물론이고 앞으로 조선의 미래에 대한 국가적 짐을 짊어져야했던
힘든 군왕으로 시작한 것이다.

영화는 많은 대사로 관객을 이해시키기보다 다시 긴박했던 상황의 이해를 연기자의 눈빛과 의미있는 짧은 대화를
통해 많은 의미를 전달하고자 노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영화 초반엔 다소 많은 프레임이 바뀌어 흐름이 엉키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중반부에 들어서면서 모든 스토리가
만나고 커져서(?) 몰입도를 완성시킨 기분이 들었다.

살아야 하는자(정조 현빈)와 죽여야 하는자(살수 조정석), 그리고 살려야 하는자(상책 정재영)로 변한 그들이
하루의 마지막 정점에서 결말을 맺을 땐 가슴속이 방망이질을 당한듯 마구 뛰었던 것 같다.

역사극은 이미 결론을 알고 보기 때문에 사실여부를 간음하는 잣대로만 평가받는 심심함이 있는데,
이번 영화는 픽션과 논픽션을 적절히 가미해 그 긴장감과 당시의 정조의 고독을 충분히 전달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왕의 입장에서만 그려진 기존의 사극에서 고통으로 견디는 백성의 입장을 다뤘다는 것은 의미가 있었다.

명군으로 칭송받는 정조와 폭군으로 역사의 뒤안길에 서있는 연산군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포용(덕)'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역적 노론파들을 단숨에 제거할 수 있는 절대절명의 사건 앞에서
그는 그들을 품는 덕을 베푼다.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를 놀렸던 구선복장군(송영창)까지 품는다)
아버지의 원수와 싸우는 것이 아닌 권력의 탐욕과 부정부폐의 처단을 바라본 것이 그것이다.
가장 힘이 모아져 단숨에 적들을 벌할 수 있을 때 용서를 한 것이다. 
힘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정조는 하나씩 천천히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풀어나가 조선의 성군으로 자리매김 한다.
정조가 탁상공론만 일삼는 노론대신들에게 '중용 23장'을 외우느냐고 질의했을 때 그 진심이 있는 것이다.

이번 영화는 이번 세월호 침몰사건과 묘한 대비를 주는 기분이 든다.
이제 우리 어른들은 많은 반성과 사회전반의 모든 것들을 작은 것부터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대충 듬성듬성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놓치고 있는 것이 없는지 가장 밑바닥부터 시작해 결국은 자기 자신의 덕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좋은 영화란 생각이 든다. 
못보신 분들은 꼭 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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