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모든 눈송이와..단 하나의 눈송이_은희경. 엄마가 뽑은 베스트셀러







때때로 그해 여름을 떠올리곤 한다.
엄마는 늘 텔레비젼 볼륨을 높였고 집안의 모든 전등을 밝혀놓았다.
소리를 크게 한다고 영어를 더 잘 알아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불을 켜놓는다고 해서 삶이 명쾌하게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엄마는 자기를 둘러싼 어둠에 최소한이나마 저항의 신호를 보내야만 했다.
그때 엄마와 한편이 되어준 것은 불행한 여인의 식탁과 초대받지 못한 처녀의 파티 드레스,
그리고 잊혀진 작가의 후회스런 젊은 시절 등 행복 바깥의 것들이었다.



- T아일랜드의 여름 잔디밭 본문 中




그녀는 생각했다.
하지만 낯선 곳에 가야 한다고 해서 저렇게 흐느껴 우는 건
아직 인생이 예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모르기 때문이야.
매순간 예상치 않았던 낯선 곳에 당도하는 것이 삶이고,
그곳이 어디든 뿌리를 내려야만 닥쳐오는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어.
그리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꿈만이 가까스로 그 뿌리를 지탱해준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도 되는 건 아닐 테지.



- 프랑스어 초급과정 본문 中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다소 긴 여운을 주는 책제목은
이번 책에 수록된 단편소설 중의 하나다. 그러니까 여섯개의 단편 소설의 대표주자로 손 꼽혔다는 것.

소설에서 제목이 주는 의미는 크다고 생각한다. 특히 은희경씨의 작품 속에 제목은 쉽게 지나치면 안된다.
그것은 최근 읽었던 그녀의 산문집(생각의 일요일들)을 통해 확고해 졌는데 그녀는 탈고를 하기 까지
글에 대한 결벽증과도같은 자신만의 완벽함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편집실로 보내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의 고통이 독자들에겐 완벽한 성찬과도 같은 작품을 만나게 해준다는 의미기도 하다.

2009년부터 작년까지 발표되었던 이번 단편소설들의 목차를 보는 순간 모두 읽은 기억이 없어 독서의욕이 생겼다.
그리곤 내가 그녀의 작품을 얼마나 알고있나.. 새삼스럽게 읽기전에 기억을 더듬어 보게 되었다.

나는 은희경씨를 우리나라 여성작가분들 중에 가장 소설같은 삶을 그리는 유일한 작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여곡절을 겪지 않고 인생을 지내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것을 단지 글로써 담아내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만큼.. 또는 알고싶은 만큼, 비쳐지는 대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을 감안했을 때
그녀는 작품 속 인물들에게 인생을 꺼내고 생명을 넣어준 그녀만의 인생의 각도와 시선 해석에 감탄한다.
그것이 가능하게 한 것을 곰곰히 살펴보니 그것은 '고통'의 전이였다.

사람이 상대에 대한 이해를 하고 싶을때 느끼는 가장 첫번째 감정은 '연민'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삶은 고통의 연속이며 그 고통 속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 의미로 해석했을 때, 이 책의 제목으로 꼽힌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는
나만의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뭍혀 잊혀질 눈송이들의 이야기인 셈이다.

나는 아줌마라 그런가 '프랑스어 초급과정'이라는 단편소설과 'T아일랜드의 여름 잔디밭'이 유독 여운이 남았다.
그 상황들이 내 신혼때와 권태기때와 너무나 흡사해서 읽는내내 과거를 들킨양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론 그것을 극복해내고 견디어 온 내 자신에게 단단한 믿음마져 든 시간이었다.

생각해보면 모든 독자들에겐 그녀가 글로 만나게한 이 소설의 이야기들의 한 장면을 어느 부분이든
거쳐오지 않았을까 의심이 된다.
그것은 가장 평범하고 가장 눈여겨 보지 않는다면 지나칠 '하나의 눈송이' 일테니까 말이다.

그녀의 작품들이 엄마나 딸이나 대를 이어 사랑받는 것도 그 이유의 하나일 거라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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