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거리에서_오쿠다 히데오. 책읽는 방(국외)







"맞아. 거의 집단 폭력 수준이야. 어른이라면 눈을 돌리고 안 보면 그만이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제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는 못 배기지. 혼자라는 선택지가 없어.
중학생이란 생물은 연못 속의 물고기 같은 존재라, 모두 같은 물을 마실 수밖에 없어."



본문 中




'오쿠다 히데오'씨의 신작 '침묵의 거리에서'는 첫 장을 덜치는 순간부터 2권의 마지막 장을
덮을때까지 이야기의 전개가 흥미로워 일상에 지장을 줄 정도로 궁금했다.
저자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소재로 삼으면서도 그만의 쫄깃하고 사람의 마음을 꿰뚫는 듯한 문체로
독자를 만족시키는 힘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번에는 '중학생 왕따'를 다루고 있다.
일본의 조그마한 마을, 학교지붕에서 떨어져 죽은 중학생 소년(나구라)의 사건으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중학생 왕따를 다룬 이 소설은 죽은 아이의 부모와 죽은 아이의 주변에서 지목된 테니스부의 네 아이,
그리고 학교의 모든 아이들의 숨은 이야기가 하나씩 펼쳐지면서 '왕따'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강연을 나가는 강사들이 가장 꺼리는 나이대를 물어보면 한 입을 모아 '중학생'이라고 답을 한다.
그들은 어른과 아이의 중간상태로써 외모는 성숙해 어른과 헷갈릴 정도지만 정신상태는 어른도 애도 아닌
날것의 중간상태여서 단정지어 소통하기가 애매하다는 것이다.

즉, 이해수준을 맞춰 대화하기가 가장 어려운 나이가 중학생이란 얘기다.
이 소설의 주제인 어른들의 세계에서 금기사항의 일들이 그들에겐 게임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는 것은 참으로
무섭고도 어른 입장에서 대안을 가져야할 그들만의 가치관이기도 하다.
소설 속에 이런 내용이 있다. 어른들은 왕따를 심각성하게 받아드리지만 아이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왕따는 결국 게임이잖아요. 다음에는 너다. 도령도 1학년들 데리고 기절 놀이를 했다니까
결국에는 돌고 도는 거라고요."



소설에서처럼 입학의 긴장감과 고교진학의 부담이 없는 가장 자유로운 시절은 중학교 2학년때다.
그런데 그 시절에 부모와 학교에서는 어른들의 말귀를 이제서야 알아듣고 자아가 정립된 시기로 착각한다.
어찌보면 가장 빈틈이 크고 미성숙된 아이들인데 말이다.

그 시기의 아이들은 정립되지 않은 영웅심으로 범죄사실을 은폐하는데 서슴치 않고, 어른들의 사실확인을
잔소리로 치부한다. 그들의 결속은 어른들의 추궁에 더 단단히 감춰지고 우정으로 승화되는 것 같다.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 확실해지고 그네들만의 우정을 확립해 나간다.
약한 친구를 괴롭힌다는 것이 나쁘다는 사실을 알지만 누군가가 먼저 시작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동조하고 무리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자신도 폭력에 가담하게 되는 것이다. (위 인용문 참조)
아이들이 생각하는 우정을 지키려는 침묵은 무서울 정도로 냉정하다.


책에도 나오지만 당시의 아이들은 너무나 선명히 그네들 사이에서 부류를 긋는다.
인기가 많은 아이,인기가 없는 아이,인정을 받는 아이,무시당하는 아이로 나뉘어져 있는데,
자신이 어느 그룹에 속하느냐에 따라 중학교 생활이 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읽으면서 그 과정을 몇 년전에 거쳐온 내 아이들의 과거시간들을 기억 못하는 내자신이 아찔했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왕따'의 기준이 있을까.
소설의 피해자 '나구라'는 키도 작고 연약하며 부잣집 도련님에 비쩍 말라서는 얌전해 보이기 까지 한다.
어린시절 유약하게 자란데다 위, 아래로 유산된 형과 여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안 뒤로는 혼자 독백하며
죽은 형제와 노는 모습을 보여 주변 아이들이 이상하게 생각한다.
또 보통 아이들과 다르게 고급 옷과 학용품, 비싼 테니스라켓과 용돈은 부모의 사랑의 표현 일지는 몰라도
아이들에게는 놀림감과 셔틀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나치면 안될 것은 '왕따'를 당하던 아이는 또다른 '왕따'대상을 찾고 있다는 점.
분풀이라고 해야 하면 적당할까? '도령'으로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던 나구라도 1학년 아이들에게
기절놀이와 여자아이를 때리는 일을 서슴치 않고 했다.

이 소설은 어쩌면 세대간의 인식의 차이가 주는 벽을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상식적인 선을 넘어서면 자기중심적으로 바라보는 오류를 범하는데, 특히 범죄사실에 있어서는
그 성향이 확실히 두드려 지는 것을 느끼게 한다.

그러고 보면 확실한 처사란 과연 있기나 한걸까?



 





덧글

댓글 입력 영역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화이트)

744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