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처럼 살고 싶구나_바보ZONE_차동엽. 책읽는 방(국내)




김수환 추기경의 자화상 '바보야'



대지약우 大智若愚!
'큰 지혜는 어리석음과 같다' 라는 의미의 이 문구는 송나라 팔대문호의 한 사람 소식蘇軾에 의해
세간에 알려졌지만, 본래 노자의 말에서 유래했다.

"너무 큰 음은 소리로 안 들리고 너무 큰 상은 형이 없다. (大音希聲 大像無形)" 그런즉,
"큰 지혜는 어리석어 보이는 법" (大智若愚)

결국 같은 것을 얘기하고 있는 셈인이 세 사자사문은 인간 인식구조의 한계를 명쾌하게 지적하고 있다.
인간의 귀는 '큰 소리'를 들을 수 없고, 인간의 눈은 '큰 형상'을 볼 수 없다.
그러니 인간의 머리로는 '큰 치혜'를 알아듣지 못하여 그것이 꼭 바보스럽게 여겨짐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어리석어 보이는 사람이 결국은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이다'라는 얘기가 된다.




본문 中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은 오히려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인다는 대지약우(大智若愚)의 본문 내용처럼
지혜로운 사람이 세상에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지혜로운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저자 차동엽신부님이 본문에도 재차 말씀하시듯이 '척하는 바보'이거나 '처세술적 바보'처럼 개인의 영달을 위한
바보가 아니라 책에서 바라고 설명하는 바보는 '자발적 바보' 곧 '현자적 바보'를 일컫는다.
지혜를 베푸는 삶을 말한다.
책을 읽다보면 많은 사례와 우화들을 곁들여 진정한 '바보'의 의미를 전달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그렇다면 '자발적 바보들'의 삶은 어떠한가.
원리 원칙을 준수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믿은 일에 대한 원칙에 흔들림이 없다. 그리고 결과에 대한 믿음으로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가 불과 몇 년전에 '망상'으로 불리던 수많은 발명품들이 현실화된 것들을 생각해보라.
그것은 모두 자발적 바보들이 노력하고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실천력이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한 사례를 본문에서 옮겨본다.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에게 한 남자가 찾아왔다.

"위대한 예술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블레이크가 대답했다.

"많이 생각하십시오."

한 달 뒤, 그 남자의 아내가 블레이크를 찾아왔다.

"선생님을 만난 후 남편은 종일 누워서 생각만 하고 있어요."

블레이크가 그 남자의 집에 가서 남자에게 말했다.

"자가 깜빡 잊고 말하지 않은 게 있군요. 행동하지 않은 사람의 생각은 휴지조각과 같습니다."

"일단 망상을 품었으면, 이제 곧바로 실행에 옮겨라! 그러지 않으면 망상은 말 그대로 미친 생각이 된다."


바보는 얻고자하는 일에 미친듯이 몰두하고 믿음에 대해 의심이 없다.
또한 바보는 베푸는 셈법을 가지고 있다.
김수환추기경님의 삶을 생각해보면 '바보'라는 의미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쉽게 수긍이 갈 것이다.

긴 줄의 지루함을 견디며 승차를 기다렸는데 새치기한 사람 때문에 자신의 차례를 놓쳤다면 허탈할 것이다.
그것이 반목되고 변칙이 상습적이 되면서 사람들은 점점 마음의 문을 닫고 이기적인 자세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바보같이 나보다도 주변의 사람을 생각하고 함께라는 마음가짐을 갖는것이 건강한 사회의 기초가 된다.

참 좋은 글들이 많아 담고 싶은 글들이 많은데, 행복한 바보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중동의 성자 나스레딘의 일화를
옮기며 리뷰를 마친다. 마음이 정화되는 책이다. 많은 분들이 바보의 길에 입문했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한 남자가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거든 첫째는 내가 갖고 있는 낙타의 반을 가져라.
그리고 둘째는 3분의 1을 갖고, 막내는 9분의 1을 가져라.
대신 한 마리도 죽이지 않고 나누어 가져야 한다."

그런데 그가 가지고 있던 낙타는 17마리였다.
세 아들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답을 구할 수 없었다.
바로 이때 나스레딘이 지나가며 그들의 말을 들었다.

그리곤 자신의 낙타 한 마리를 그들 낙타 속으로 밀어 넣었다.
낙타는 이제 모두 18마리가 되었다. 나스레딘이 말하였다.

"첫째는 반을 가져야 하니까 9마리, 둘째는 3분의 1이니까 6마리, 막내는 9분의 1이니까 2마리를 가지면
모두 17마리가 되지요? 그러면 한 마리가 남는데, 이것은 알다시피 내 낙타니 도로 가져가겠소."

나스레딘은 유유히 자신의 낙타를 타고 길을 떠났다.

꼭 '숫자 놀음' 같지만 이 이야기에는 '심리 게임' 이 숨겨져 있다.
그 과정을 곰곰 추적해보면, 재미있는 심상이 드러난다.

첫째 아들이 자신의 몫인 '절반'을 계산하려고 17을 나눠보니 딱 1마리가 모자란다.
둘째 아들과 셋째 아들이 제 몫을 챙기려 해도 딱 1마리가 문제가 된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문제를 풀 수가 없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스레딘이 계산해봐도 1마리가 모자란다.

바로 이 대목에서 자신의 1마리를 보탠다는 발상은 일반인들은 알면서도 못한다.
아니, 안 한다. 왜? 일단 자신의 것을 잃는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움찔해지는 순간 아닌가.

하지만 바보 나스레딘은 안타까운 생각에 자신의 낙타를 그들에게 '줄' 요량으로, 과감하게 1마리를 넘겨준다.
그러고서 계산을 해보니, 마지막엔 다시 1마리가 남는다. 그는 주어서 착한 일을 하고 큰 기쁨을 얻었을 뿐 아니라,
덤으로 다시 1마리를 얻는 횡재를 만난 격이 된다.

희한하게도 계산은 저렇게 해서 똑 떨어지게 되지만, 심리상 한 마리를 '그냥 주겠다'는 마음을 품지 못하면
누구도 이 난해한 문제를 해결해줄 수가 없다. 그러기에 나스레딘의 바보 셈법은 더욱 귀하고 위대한 것이리라.
어쩌면 이 이야기 뒤에는 아버지의 속 깊은 의중이 깔려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식들에게 '바보 셈법'을 익히게 해줌으로써
화목하고 행복한 삶의 길을 가르쳐주고 싶었던 심상 말이다.

만일 우리가 바보의 저 셈법을 익히 구사할 줄 알았다면 오늘 이 세상은 보다 풍요롭고 살 만해졌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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