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로 사과를 먹다. 엄마가 읽는 시





칼로 사과를 먹다


-황인숙


사과 껍질의 붉은 끈이
구불구불 길어진다.
사과즙이 손끝에서
손목으로 흘러내린다
향긋한 사과 내음이 기어든다.
나는 깎은 사과를 접시 위에서 조각낸 다음
무심히 깔끝으로
한 조각 찍어올려 입에 넣는다.

"그러지 마. 칼로 음식을 먹으면
가슴 아픈 일을 당한대."
언니는 말했었다.

세상에는
칼로 무엇을 먹이는 사람 또한 있겠지.
(그 또한 가슴이 아프겠지)

칼로 사과를 먹으면서
언니의 말이 떠오르고
내가 칼로 무엇을 먹인 사람들이 떠오르고
아아, 그때 나,
왜 그랬을까.....

나는 계속
칼로 사과를 찍어 먹는다.
(젊다는 건,
아직 가슴 아플
많은 일이 남아 있다는 건데.
그걸 아직
두려워한다는 건데.)



..


젊음이 아름다운 건 가슴 아플 많은 일들을 두려워 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또 그러기에 두려워하지 않는 젊음은 두려운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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