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_무라카미 하루키. 책읽는 방(국외)






쓰쿠루는 새로 마음을 연 친구에게 자신에 대해 온갖 것들을 정직하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러나 나고야의 네 친구에 대해서만은 조심스럽게 감추었다. 간단히 입에 담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입은 마음의 상처는 그때까지 너무도 생생하고 심각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 연하의 친구와 함께 지내는 동안은 대체로 네 명의 일을 잊을 수 있었다.
아니, 잊는다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자신이 네 친구에게서 노골적으로 거부당한 아픔은
그의 마음속에 늘 변함없이 존재했다.



본문 中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긴 제목과는 사뭇
다르게 정리하자면 간결한 내용을 담고 있다.
어쩌면 긴 제목에서 줄거리의 구체적인 암시를 고스란히 표현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하루키가 여태 쓴 소설에서 느껴지는 전반적인 느낌은 죽음과 연관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어느 인터뷰인지 기억이 정확히 나지 않으나 하루키는 소설을 쓸때 죽음을 늘 생각한다고 말했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죽지 않을 것처럼 대부분 살아가는데 그는 늘 죽음의 심연 속에서 사는 것이다.
그런 그의 색체는 소설에도 여지없이 녹아있다.
그리고 이 책의 첫 장의 첫 문단 역시 '죽음을 생각한다'라는 문단으로 시작되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누구나'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똑같은 사건에도
각자 느끼는 기억의 그림은 각기 다르고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또 지나치게 밝은 사람이 밝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의 뒷면에 그림자로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아카(赤)','아오(靑)','시로(白)','구로(黑)'는 쓰쿠루의 가장 아름답고 순수했던 고등학교시절
다섯 명의 그룹의 친구들이다. 이름에서 비쳐지듯이 그들의 색체(성격)는 이름만큼이나 적절했다.
그들은 교외 봉사활동을 통해 이루워졌지만 이후 견고한 관계를 유지하며 지역신문에도 날만큼 가장
모범적인 봉사활동을 유지했고 공부한 친구들 모임이었다.
그들은 다섯 손가락처럼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단언하듯 서로 믿었다.

그들은 모두가 나고야에 있는 대학을 고수했지만 쓰쿠루만이 도쿄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을 결정한다.
하지만 그들의 우정에는 한동안 변함이 없었다.  대학 2학년 여름방학 전까지는 그랬다.
그러던 어느 날, 명백히 견고했던 그들의 관계가 아무 이유도 없이 쓰쿠루에게 절교선언을 하게 된다.
아무런 설명도 타협도 없이 선고를 수용한 쓰쿠루는 그들에게서 버림받았고 가장 순수했고 가장 유일한
친구들이었던 그들에게 받은 상처는 그에게 죽음만이 유일한 선택임을 각인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 삶이라는 존재를 받아드리게 되고 새롭게 태어나게 된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지만 심한 상처를 받은 기억은 새로운 일상 속에서도 간간히 턱밑까지 찾아서
숨을 멈추고 과거로 회향시킨다. 쓰쿠루가 그 네명의 친구 이후에 마음을 연 연하의 친구 '하이다(회색)'와
완전한 관계를 이루지 못한 이유도 그 상처 때문이고(하이다가 말없이 네 명의 친구처럼 절교하듯 그의 곁에서
사라진 이유가 그것일지도 모른다고 난 생각해본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연상의 여인 '사라'와의
사랑에도 제대로 결합하지 못하는 것은 그 내면의 큰 상처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일침은 그에게 과거로의 순례를 시도하게 만든다.

"자기 안에서 뭔가가 아직도 소화되지 않은 채 걸려 있고, 그 탓에 본래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막혀 버린거야."

인간은 인간때문에 상처받고 또 인간으로부터 회복되는 존재가 틀림없다.

인간은 누구나 그만의 색체가 있다.
색체가 없다고 생각한 쓰쿠루는 여러 색체를 띤 친구들을 아우리는 완벽한 색을 가졌었다.
네 명의 친구들은 그가 있음으로써 완전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네 친구 모두 그를 사랑했다.

인간이기에 누구나 상처를 받고 살아가는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 상처는 그사람의 컴플렉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고비를 직면하지 않고 피하다보면 늘 힘겨워하는 자신과 싸워야 하는 고통이 따른다.

하루키는 쓰쿠루를 통해 상처를 직면하는 것이 얼마만큼 자신을 성장하게 하는 가 하는 점과
힘들겠지만 상처의 딱지를 뜯어내서 골음을 짜내는 과정을 받아드리는 과정을 통해 진짜 제대로된 삶을
바라볼 힘을 갖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하루키가 여러 소설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죽음의 경계선. 죽음의 사색들을 마주하다보니
나도 하나의 결론을 얻게 된다.
인간은 여러겹의 자아가 모여진 인격체이며 그로인해 자신의 불편한 생각들을 마주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며 경지로 나아가는 단계라는 것을..
그 사실을 직면하느냐, 피하느냐는 순수한 자신의 힘으로 결정되어 진다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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