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엄마가 뽑은 베스트셀러








중국집을 찾는 또 다른 이유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우울을 떨쳐내기 위함이다.
찬거리를 장만하는 오후의 시장이나, 새벽의 수산시장에 가보시라.
악다구니 같은 삶의 전쟁터를 보면서 '다들 저렇게 살려고 애쓰는데'하는
경외감과 부러움이 샘솟게 된다. 나의 우울이 얼마나 가당찮고 에고적인지 뼈저리게 된다.
(중략)
건강한 육체 노동자들의왕성한 식사 현장을 훔쳐 보는 것이다.
대개 그들은 곱빼기를 시킨다. 속으로 조용히 읽어 보시라. 곱빼기. 이 말에 복 있으라.
짜장면을 양껏 젓가락으로 말아 올려, 입가에 소스를 묻히며 후루룩 소리도 요란하게
한 다발의짜장면을 넘기는 장면...
나는 거기서 생명의 힘을 느낀다. 우리가 뭘 먹는다는 행위는 진정 숭고한 것임을
깨닫게 한다. 우리가 햄버거를 그렇게 먹는다고 할 때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감정이어서,
중국집이란 더욱 소중해 진다.


본문 中



이 책은 저자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음식과 관련된 추억을 꺼내 담아낸 음식이야기다.
저자 박찬일씨는 나와 연배가 비슷하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어찌나 공감이 가던지 기분이 참 좋아졌다.

뭐랄까.
난 셋째 딸로 태어나 반갑지 않은 딸자식이라는 눈총을 고스란히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인정하며 자라야 했다.
또 밑으로 남동생의 태어난 후로는 온 집안 식구들이 나 때와는 달리 남동생의 후한 대접을 지켜봐야 했던
나는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유년시절이라는 단정이 생기곤 했다.
그 이면에는 먹는 것이 커다랗게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뒤 느낌은 드디어 제대로된 나의 추억을 상기시켜주고 돌려받은 기분이랄까.
더이상 편애 가득했던 유년시절은 잊으리라. 하핫.
사람이 자신의 손에 있는 행복보다 남의 행복이 커 보이듯이,
나는 내게서 박탈당한 유년시절의 음식의 추억만 고집스럽게 억울한 기분으로 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이후에 내가 경험했던 수많은 음식과의 추억은 잊고서..

책을 읽으면서 세프 '박찬일'씨의 글솜씨가 탁월하다고 느꼈는데 알고보니 중앙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잡지기자로 활동까지 했단다. 역시 눈에 쏙쏙 들어오게 감칠맛 나는 쫄깃한 문구며
요리의 표현을 이리 자세히 군침돌게 하는 이유가 있다. 사진 한 장 안보여주고도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꼬막의 표현을 보시라.(아래 인용문)

꼬막의 맛은 뭐랄까. 바다의 맛이라는 진부한 표현을 벗어나는 무엇이 있다.
잘 삶은 꼬막은 살이 터질 듯이 팽팽한데, 도도한 살집 밖으로 한껏 부푼 막 같은 것이
하나 더 있다. 이 막 속에 짜고 고소하며 감칠맛 도는 '액체'가 들어 있다.
바닷물과는 사뭇 다르고, 그렇다고 미더덕이나 멍게 속의 체액 같지도 않은 어떤 것이다.
그 액체는 약간의 비린 맛이 있어서 혀를 휙 감고 돈다.
아릿한 맛이 뒤에 저 개펄의 뒷맛을 전해준다.


얼마나 끝내주는 표현인가.
나는 꼬막을 무침에도 쓰고 된장찌게에도 넣기도 하고 술안주로도 쓴다.
좋아하는 이유 중에 푸짐하게 씹는 맛도 한 몫을 한다. 내가 좋아하는 꼬막이면서도 그 표현을 제대로 못써서
늘 미안했는데 책을 읽다가 그만 캬~ 하고 감탄이 절로 나왔다.^^

저자는 또 나의 추억과 함께 하고 있었다. 
돈가스, 정식요리를 시켜놓고 에티켓을 몰라 웨이터가 수프와 샐러드를 걷어갈때 아쉬워했던 대목을 읽을 땐 
피식 웃음이 터졌다.  나의 부끄럽지만 즐거운 추억의 상자를 열어줬다고나 할까.^^

공감이 갔던 글 중에 하나를 더 옮겨보면, 국민학교(지금:초등학교)운동회 표현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정말 킥킥대고 웃었다.
그동안 아름답게 묘사했던 운동회들이여 안녕~ 더이상 속지 않으리.
나의 추억은 이제 생생하게 살아났거든? (아래 인용문)


학교나 학부모마다 고역이긴 마찬가지였다. 좁아터진 운동장에 그것도 2부제로 치러도
사람들로 넘쳐나고 프로그램도 졸렬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운동회의 분위기가 나지 않았다.
언젠가 시골 출신의 친구가 운동회의 '아름다운 추억'을 말하는 걸 듣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운동회는 군대 말로 하면 '사역' 같은 거였다.


맞다.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나의 추억을 살려준 저자에게 감사를.
그리고 이제 내가 살아갈 인생 앞에 놓일 수많은 맛의 추억들과도 만나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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