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사랑 변천사. 일상 얘기들..






주택에 7년간 살다가 아파트로 이사왔을때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면 애완견 사랑의 이해였다.

엘레베이터안에서 주인의 손에서 온갖 치장을 한 강아지를
볼때마다 내가 어렷을적 키웠던 개들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기 때문이다.

내가 어렸을적, 개들에 대한 기억은 생계유지를 위한 부업이 더 목적이었다.
어려운 살림을 연명(?)하기 위한 방편으로 엄마는 개들을 선택하셨다.
직장생활을 하시던 엄마는 내게 개들을 맡기셨는데,
다행히 동물을 끔찍히 아끼던 나는 주저없이 선택을 했다.

개들은 무럭무럭 자라주었지만, 먹이는 것에 대한 고충은 이루말할 수가 없었다.
중국집에 짠밥통이란 것을 온갖 애교끝에 갖다놓고서 학교가 파하면 그것을 들고 오는데,
나무젖가락, 이쑤시개들이 섞여있기때문에 가려놔야하며, 그것으로 부족할때면 시장에 가서
생선대가리를 얻어와야하며, 것두 부족하면 사료와 밀가루를 섞은 완존히
짬뽕국물같은 것을 연탄불에 끓여서 줘야한다. (냄새가 아주 구토증세를 유발한다 -.-)
그렇게 식욕을 자랑하듯 개들은 한두마리에서 열마리 이상 는적도 있다.

그렇게 학비조달을 하며 성장을 했던 기억이 있다.
단지 학비조달을 위해 개들을 키웠지만 일명 '개장수'에 개를 넘길때와 아버지의 몸보신을 위해
키우던 개가 희생될때는 개들과 정들었던 기억으로 가슴이 아파 많은 동정의 눈물로 밤을 지샜었다.

하지만, 지금 호강속에서 귀지를 파거나, 발톱청소를 하기위해 동물병원에 가는
강아지들은 진정 사랑으로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들 밑에서 자라는지는 과연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우리 아파트 주위에도 귀속에서 골음이 나와서 버려진 이름모를 애완견들이 있으며,
절뚝거리며 사람들을 공포스럽게 바라보는 애처로운 애완견들을 종종 발견하기 때문이다.
저 개들이 정말 사랑을 받았던 개들인가 싶을 정도로 안스럽다.
그 모습이 마치 하나의 장난감정도로 치부된 결과가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뉴스에서 가끔 버려지는 애완견 실태를 볼때면 나의 걱정은 주위에서 보는
애완견들의 상태에 덧부쳐 지기도 하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서 생계를 목적으로 개를 키우는 사람들은 보신탕업종에
관련된 사람들에 국한되어 있다.

개들의 맹목적인 주인사랑에 매료되어 애완견을 키우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말이 있다면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주려는 마음부터 갖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만 한다면 주위사람들의 환경적으로 느껴지는 불편도 마져 생각해 줄것이기 때문이다.



덧글

  • Dot3 2004/03/24 13:44 # 답글

    정말 가족이 필요한 걸까. 대용품이 아니고?
    ...라는 생각도 가끔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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